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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괘씸죄로 망한 영화 나랏말싸미, 생각보다 괘씸하지는 않다

by 썬도그 201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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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가 천냥빚을 갚지만 반대로 말 한 마디가 관객을 싹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감독의 말 때문에 망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아주 뛰어나고 감각적이로 재미있는 영화인데 감독의 말 한 마디로 망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좋은 영화, 추천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한글 창제를 스님이 도왔다는 추측을 영화로 만든 <나랏말싸미>

한글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서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보통 문자라는 것이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의 쓰다가 서서히 완성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언어 특히 문자는 발명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다릅니다. 문자 치고는 역사가 짧은 이 한글은 발명자가 또렷하게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 지금 이 글도 한글로 내 목소리를 글로 담고 있는 그릇으로 키보드로 입력하기 편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한자라는 표의문자는 타자 입력하기도 엄청 어렵죠. 반면 표음문자은 한글은 글만 봐서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어떤 뜻인지 유추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상 모든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문법은 어렵지만 한글 쓰고 읽는 법은 하루 또는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배웁니다. 

한글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명품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라고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놀라운 문자인 한글을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을까? 

조선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기록을 중시했던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의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조선을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왕조실록'에 한글 창제 과정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글 창제 과정에 대한 설이 분분합니다.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지만 워낙 뛰어난 문자라서 이걸 어떻게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냐면서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었다는 소리가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글 창제에 외부인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신미대사라는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5개 언어를 능숙하게 다룬 스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입니다. 이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도움을 줬다는 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 <나랏말싸미>입니다.



스님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괘씸하다 괘씸해!

한글을 세종대왕이 아닌 한 스님이 만들었다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발끈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괘씸하고 불쾌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입니다. 실제 이야기와 가짜 이야기를 섞어서 내놓는 팩션 드라마, 소설, 영화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에 상상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나랏말싸미>를 다큐로 보는 사람들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전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역사 다큐나 뉴스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이런식으로 비판을 하면 앞으로 나올 모든 논픽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철저하게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야지 감독이나 각본가가 조금이라도 각색하고 고치면 큰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큰 비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몇몇 장면은 각색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비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나랏말싸미>만 심한 비판을 받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괘씸하다는 이유가 컸을 겁니다. 한글 창제에 신미대사가 도움을 줬다는 것이 상상이지만 불쾌했을 겁니다. 한글을 세종대왕 혼자 창제했는데 갑자기 세종대왕 & 신미대사 공동 발명이라고 주장하니 이 영화가 괘씸했습니다.

여기에 감독이 이 상상이 진짜라는 발언을 한 인터뷰에 하면서 느슨하게 보던 사람들도 빡치게 만들었습니다. 감독이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도 많은 사람들이 감독과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이런 주장은 영화가 종영된 후에 한참 지나서 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했네요. 그 발언 때문에 느슨하게 보려던 관객마저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영화 <나랏말싸미>

많은 분들, 특히 영화를 안 본 분들이 한글을 스님이 만들었다는 영화가 <나랏말싸미>라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영화 한글을 스님이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이 했고 새종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막힌 혈을 뚫어준 산파 역할을 한 것이 신미대사라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즉 한글 창제에 숨은 조력자라는 이야기라서 세종의 위엄과 위대함을 깎아 내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퍼진 소문은 이 영화의 흥행에 큰 먹구름을 드리웠고 손익분기점 350만을 넘기지 못함은 물론 100만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전 이 <나랏말싸미>의 내용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한 사람이 창조했다는 자체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말 세종이 혼자 독학해서 만들었다면 세종은 엄청난 천재입니다. 그러나 천재라고 해도 이런 뛰어난 문자를 30년 만에 혼자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조력자인 신미대사가 세종대왕과 친했고 신미대사가 5개 언어, 특히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인 산스크리티어 등에 능통한 언어 달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상상을 펼칩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에게 유교를 전파하려면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는데 한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양반 같은 식자층에게만 유교가 전파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또한 양반이건 평민이건 능력이 좋으면 누구나 선발할 수 있게 하고 싶은데 평민들은 글을 몰랐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서 빠르면 하루  늦어도 1주일 만에 문자를 익힐 수 있는 문자를 직접 개발합니다. 

그러나 중국과 언어 관련 책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뜻글자인 표의문자인 한문을 백날 파고 연구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두처럼 음만 차용하는 표음문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참고할 언어가 없었습니다. 


마침 불교신자인 소헌왕후(전미선 분)가 신미대사를 추천합니다. 신미대사는 범어라고 하는 산스크리티어, 티벳어, 몽골의 표음문자 파스파 문자에 능통한 언어 달인입니다. 팔만대장경을 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며 찾아온 일본 스님들을 범어로 돌려 보냅니다. 

그렇게 신미대사는 궁으로 입성을 하고 세종대왕과의 첫 대면에서 불교를 천대하는 숭유억불정책을 펼치는 조선의 왕인 세종에게 절을 하지 않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설정입니다. 고려는 불교와 위정자들이 위탁해서 부패해서 망한 나라입니다. 이에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습니다. 유교 국가에서 스님을 궁에 입궐하게 하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보다 왕인 세종이 이런 것을 잘 알기에 신미대사의 입궁을 알리지 않습니다. 신미대사의 뛰어난 언어 능력에 탐복한 세종대왕은 신미대사와 함께 한글 창제를 시작합니다. 이 신미대사는 산스크리티어의 자음, 모음, 자음 3개가 한 음절이 되는 표음문자 방식을 알려주고 세종은 이 초성, 중성, 종성의 3개의 조합으로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다양한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한문에서 힌트를 얻지 못했던 세종은 신미대사로부터 막힌 혈이 뚫립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소리가 어디서 울리고 혀가 어떤 형태로 되는지도 알아봅니다. 거의 정설로 알려진 한글 창제의 원리인 목안의 혀의 형태에서 한글 자음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잠시 담기지만 그냥 누구도 쓰기 쉽게 하기 위해서 직선을 기본으로 한 간단한 문자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글의 기본 자음 5개가 만들어집니다. 이 기본 자음이 산스크리티어나 파스파 문자에서 유래 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조선의 책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나 제가 봐도 크게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기존 표음문자의 자음을 참고하기 보다는 이리저리 각이 진 직선을 그으면서 가장 쓰기 편한 글자를 만듭니다. 여기에 ㅈ과 ㅊ, ㄱ과 ㅋ 과 같이 더 쎈소리를 내는 자음을 스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 한글 창작 과정이 불쾌하거나 불편할 수 있습니다만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설인 것을 감안하면 유교학자들이 불교 스님으로 치환되었을 뿐 세종의 업적을 폄하하거나 낮추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 위대한 한글 창제 과정이 적힌 문서가 거의 없는 것에서 출발한 듯 합니다. 왜 기록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신미대사라는 불교라는 종교인의 도움을 받았기에 기록에 남기지 않을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는 생각에서 영화를 제작한 듯 하네요. 

이런 발상은 영화적으로 꽤 건강한 발상이지만 대중은 이 상상이 굉장히 불쾌했나 봅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과 김연아는 건들이면 안된다고 했는데 감독은 세종대왕을 건드렸습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영화 자체가 불쾌하다는 글들이 꽤 많았고 결국 흥행 참패로 귀결 되었네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저주 받은 걸작은 아닙니다. 한글 창제에 스님이 도움을 줬다는 발상만 참신할 뿐 영화적인 극적 재미는 거의 없습니다. <살인의 추억>의 배우 3명이 모여서 화제가 되었지만 영화적인 재미는 크지 않습니다. 

그냥 가벼운 가십거리를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기에는 소재 자체가 장편 영화로 만들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차라리 사대부라는 기득권층의 음해를 피해서 백성에게 문자를 내려 보낸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만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영화에 더 울립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인 조철현 감독이 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기획한 꽤 끝발이 있어서 이런 가십거리를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는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비난 받을 영화는 아니였습니다. 그냥 가볍게 볼 만한 영화 <나랏말싸미>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한글 창제의 의문을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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