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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는 미국 케이블 TV 방송으로 명작 드라마를 잘 만드는 방송사입니다. 우리에게 HBO 드라마 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는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시리즈가 있습니다. 지금 봐도 2차 세계대전을 가장 잘 담은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왕좌의 게임>도 이 HBO 드라마입니다. 

이 HBO 드라마 하나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 시청률을 뛰어넘은 이 드라마의 이름은 <체르노빌>입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태의 진실을 담은 드라마 <체르노빌>

많은 사람들이 태양광 발전을 비난을 합니다.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이 산을 깎고 발전을 한다고 비난을 합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무리하게 태양광 벌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한국은 일조량이 낮아서 태양광 발전이 크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태양광 발전 효율이 좀 더 좋아지면 그때는 적극 고려해야죠. 

태양광 발전을 반대하는 건 이해하는데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가장 싼 가격에 발전을 할 수 있어서 전 세계국가들이 핵발전소를 만들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발전소가 파괴되면 엄청난 재앙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이 아직도 복구되지 못하고 계속 방사능을 유출하고 있고 언제 복구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가성비 좋은 원자력발전이지만 발전소가 폭발하거나 파괴되면 엄청난 재앙이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은 핵발전소를 줄이거나 앞으로의 건설 계획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1986년입니다. 1986년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있던 소련의 체르노빌 발전소가 수소 폭발을 일으켜서 방사능을 유출합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냉전을 벌이고 있었던 상태라서 자신들의 실수이자 치부인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밝히기 싫었습니다만 방사능은 국경을 쉽게 넘어갔고 스웨덴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미국 정찰 위성이 체르노빌 발전소가 파괴된 것을 알게 되자 마지 못해 인정을 합니다. 이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가 바로 <체르노빌>입니다. 


러시아가 아닌 미국에서 다룬 핵발전소 사고를 재현한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45초에 체르노빌 발전소는 폭발을 합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현재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소련에서 일어난 초대형 인류 재앙급 사고라서 러시아에서 다뤄야 할 소재를 놀랍게도 미국에서 제작을 합니다. 이 소재 자체만 봐도 이 드라마가 왜 미국에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이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자신들의 치부로 여깁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고 그걸 경험으로 축적해서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합니다. 이 바탕이 되는 것이 자존감이죠.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없다 보니 조그마한 실수나 잘못을 창피함으로 연결해서 절대로 잘못을 인정 안 합니다. 

러시아가 그랬습니다. 당시 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감추기 바뻤습니다. 이런 행동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원전 처리를 철저히 비밀로 부치고 전 세계에게 거짓말로 현재 위기를 모면하기 급급한 일본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와 천안함 사건을 온갖 거짓과 은폐를 하고 방해를 했던 한국이라는 나라도 있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철저히 반성하고 분석하고 재발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게 시스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죠. 이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 다룬 이유는 러시아가 여전히 이 사건을 껄끄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러시아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현 러시아 정부의 입김에 맞게 제작을 했을 겁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언론통제가 심한 나라이고 아예 정보국이 암살을 하는 나라이니까요. 

 미국이 이 체르노빌 사고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미국에서 만든 것은 이 사고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잘 다룰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다만 1986년 구 소련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하려면 무척 어려울 것으로 보였습니다. 미국이 아닌 적국이었던 소련의 장비와 군복 도시와 발전소 등등을 실제로 재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오히려 환희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5부작 <체르노빌>을 보면서 1986년 소련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정교한 재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어색했던 점은 요즘 많이 쓰는 이동식 크레인 장비가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웠는데 그 크레인만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낄 정도로 정교하게 재현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소련 여성과학자 울라나 코목이라는 인물만 가상 인물이고 대부분이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의 대처를 담은 체르노빌 1~4부

드라마 <체르노빌>은 어떤 전조 현상이나 대재앙이 발생하기 전의 이야기를 담아서 뜸을 들이지 않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체르노빌 원전이 폭파된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만 대형 폭발을 직접적을 보여주지 않고 건물 잔해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상태로는 원자력 발전기가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이에 발전소의 부사장이자 폭발의 원인이 된 원자로 실험 가동을 지시한 디아틀로프은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휴대용 간이 방사능 측정장비가 3.4뢴트켄만 가르키고 있다면서 별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3.4뢴트켄은 그 간이 방사능 측정장비의 최고 측정치이지 실제로 방사능이 3.4뢴트켄이 아닙니다. 

체르노빌 원전이 터진 이후에 발전소 소장과 책임자가 납으로 차폐된 공간에서 긴급대책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처리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큰 사고가 아니라고 상부에 보고를 하고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에게까지 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를 받는 자리에는 흑연감속비등경수로(RBMK)를 설계한 러시아 과학자이자 교수인 발레리 레가조프도 함께 있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현장 보고서를 유심히 살펴보던 발레리는 한 소방관이 흑연으로 추정되는 돌맹이를 집고 화상을 입은 것은 원자로 안에 있어야 할 흑연이 분출되었고 이는 원자로가 폭발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고위층인 보리스 세르비나와 함께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를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현장으로 찾아간 발레리 교수와 보리스 위원은 체르노빌 발전소장의 말과 달리 폭발을 해서 엄청난 방사능을 내뿜고 있는 체르노빌 원전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후 발레리 교수의 조언에 따라서 보리스는 이 일을 수습하기 시작합니다. 

수습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방사능은 모든 것을 통과 하기 때문에 사람이 근접할 수 없고 근접했다간 수일 또는 수개월, 수년 후에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군인을 동원해서 헬기로 원자로 핵물질의 반응 속도를 낮추게 하는 붕소와 함께 모래를 공중 투하 합니다. 이 수습 과정이 <체르노빌> 드라마 1~4부까지 이어집니다. 

 

사고는 기성세대가 치고 수습은 젊은이가 하는 전쟁의 비극을 느끼게 한 체르노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의 수습 과정을 과감 없이 담은 드라마라서 극적인 내용이나 반전이 있는 그런 드라마가 아닌 사고 당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재현을 목적으로 한 드라마라서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화려하지 않음이 이 드라마에 푹 빠지게 합니다. 

원전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몇가지 느낌을 적어보자면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는 그들을 보통 책임자라고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발전소장과 부소장이 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소장은 실험 가동의 책임을 져야 하지만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사태를 더 키웁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어른스러운 어른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 드라마의 3명의 주인공입니다. 이 엄청난 재앙을 수습하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발전소 하단에 있는 물탱크의 물을 빼내야 더 큰 폭발로 수백만 명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방사능이 나오고 있는 원자로 밑을 누가 들어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는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자발적인 영웅들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넘어갑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원자로 밑에 열교환냉각기를 설치하는 작업을 위해서 소련 석탄장관이 인근 탄광소의 광부들에게 국가의 부름이라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총으로 위협하면서 강제로 연행하듯 끌고 가려고 하자 광부들의 팀장이 자발적으로 가면서 석탄 장관를 어린애 취급하듯 툭툭 취는 모습은 뭉클함이 저절로 흘러 나오게 합니다. 물론 이 장면은 과장되고 연출된 장면이지만 소련 광부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더 커지지 않고 수습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한 청년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지금 후쿠시마에서도 하는 일로 방사능 오염지역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즉살하고 묻는 작업을 하는 청년의 눈으로 이 사태를 조망합니다. 사고는 원자력 마피아들이 치고 수습은 군인과 국민이 하는 모습을 통해서 전쟁은 기성세대가 일으키고 정작 전장터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청년들이 피를 흘리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폭발과 총소리가 안 났지 작은 전쟁같이 느껴졌습니다.

세계 역사가 그렇습니다. 전쟁은 윗대가리들이 하고 그 피해는 국민들과 백성들이 받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그걸 넘어서 백성들이 왜군을 물리치고 침략자와 싸우기도 많이했죠. 국가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드마라가 <체르노빌>입니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죽이는 나라" 3명의 주인공 중 여성 과학자인 올라나 코목이 한 대사입니다.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아이를 죽이는 나라라는 비판은 현재의 독재 국가 또는 자존감이 없는 나라 또는 숨기는 것이 많은 기밀성이 풍부한 국가들을 향한 독설이자 비판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국가와 싸우는 과학자들의 진념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체르노빌>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 수 있나?

진실에 대한 희망조차 버리고 꾸며낸 이야기에 만족할 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드라마 체르노빌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통해서 자신들의 체통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국가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찾고 그 진실을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 2명의 순진한 과학자들의 대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자력 마피아라고 하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외부의 간섭과 비판과 시선을 모두 거부하는 도쿄 전력이라는 거대한 원전 마피아 때문에 일어났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한국도 한전의 산하 그룹인 수력원자력이 마피아가 되어서 자기들끼리 해먹고 운영하다가 최근에 큰 일을 낼뻔 했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고인물이 많으면 물이 썩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고인물들 모두 기득권자이고 큰 이익을 취하고 있기에 외부 비판과 외부 인력이 들어와서 고인물을 퍼내지 못하게 원자로 용기만큼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습니다. 

소련은 더 심합니다. 국가 산업이라고 해서 KGB가 국가의 수치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사고 수습을 하고 있는 발레리 교수가 원인 파악을 위해서 울라나 코목에게 발전소 직원들이 방사능 피해로 죽기 전에 모든 내용을 기록하라고 모스크바로 보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외부로 알려지고 기록되어지는 것을 싫어했던 KGB는 이들의 진실 찾기 노력을 방해합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조명하는 동시에 왜 이런 대형 재난이 일어나게 되었는 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진실을 찾아서 사고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레리, 울라나 두 과학자의 신념과 국가의 수치라고 여기고 모든 것을 덮길 원하는 소련 당국 간의 다툼이 그려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주인공이 보리스입니다. 소련의 고위층인 이 보리스는 원자력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수습하면서 원자력에 대해서 알게 되고 발레리 교수가 부탁하는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들어주고 따릅니다. 이런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기에 체르노빌 사고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서서히 수습이 됩니다. 물론 당시 자신을 희생한 수 많은 당시 소련 국민들의 헌신적인 희생정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보리스라는 인물을 지켜보다 보면 반성하는 꼰대는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임을 알게 됩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원인을 집중 조명하는 5부

드라마 <체르노빌>은 5부에서 원전 폭발 사고 이전 12시간을 보여주면서 왜 폭발이 일어났는 지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5부에서는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데 이 재판에 3명의 주인공이 증언을 합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친절하게 설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레리는 과학자의 소명의식으로 진실을 폭로합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또 다른 RBMK 원자로들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진실을 법정에서 말합니다. 이게 과학자의 진실된 모습이자 우리가 과학자들을 우러러 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엔 발레리나 울라나 같은 양심이 있는 과학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을 가르키고 있고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명예와 돈을 위해서 정권에 빌붙어 있는 과학자와 교수들이 엄청 많습니다. 한국만 해도 4대강 사업 찬성한 그 많은 교수들을 보세요. 진실 찾기 보다는 자신의 앞길만 찾는 인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오늘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 직언과 진실을 말하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국가 권력이 만들어내는 거짓과 통제를 과학자의 진념과 신념어린 노력으로 진실을 전 세계에 말하는 대결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이런 구도가 공감이 가는 이유는 현재도 이런 일이 세상에 비일비재 하다는 겁니다. 권위에 굴종해서 엄청난 재앙을 겪게 하는 일들이 많죠. 대형 재난 사고들을 살펴보면 합리적인 검증과 비판이 없고 독재자 같은 한 사람의 오판이 불러온 재앙들이 많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 권위가 생산한 거대한 재앙이었습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아주 화려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었던 인재의 과정을 명확하고 공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진실을 외면할 때 그 진실에 대한 부채가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채는 거대한 인명과 물리적 피해액을 담은 영수증으로 돌아옵니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제대로 파악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 지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특히 한빛 원자로 사태를 겪은 한전 산하 수력원자력 직원 모두가 강제 시청해야 할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 <체르노빌>은 현재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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