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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잘못하지 않았지만 실패한 사람을 위한 위안 영화 <오버 더 펜스>

by 썬도그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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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영화는 한 번에 보지 못합니다. 특히나 초반이 지루하면 한 번에 보지 못하죠. 그래서 한 번에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볼 기회를 놓쳤고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다시 영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통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화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봤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초반만 잘 견디면 꽤 좋은 영화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영화를 알게 되었네요. 그 영화는 바로 <오버 더 펜스>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오버 더 펜스>

일본의 성공한 배우인 '오다리기 죠'와 최근 결혼해서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아오이 유우'가 주연한 2017년 봄에 개봉한 영화 <오버 더 펜스>는 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입니다. 결과만 보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잣대는 1개가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성공의 잣대를 큰 돈을 벌었느냐 아니냐로 따지집니다. 그런 잣대로 보면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주 잘 담은 성공한 영화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40대 시라이와(오다기리 죠 분)은 이혼 남에 백수입니다. 이혼을 실패로 보는 세상에서 직업까지 없는 2개의 실패가 낙인 찍혔습니다. 그러나 재기를 하기 위해서 직업 훈련소에서 팀원들과 목수일을 배웁니다. 직업 훈련소에는 다양한 연령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자신의 상처와 과거를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서로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직장이 없는 삶은 스스로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과거를 깊게 캐묻지 않습니다. 

이 직업 훈련소에는 정말 다양한 나이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이시마는 한량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을 착실한 40대 시라이와에게 총무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범생이 같은 시라이와는 그런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렇게 이사마와 시라이와가 술을 먹는데 괴성을 지르면서 춤을 추는 사토시(아오이 유우 분)을  시라이와가 보게 됩니다. 눈을 마추진 사토시는 시라이와 앞에 앉아서 술을 마십니다. 사토시는 술집에서 일하는 술집 여자입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는 남자들의 기분을 맞추고 낮에는 동네 동물원과 놀이동산에서 일을 합니다. 

사토시는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실패에 따르는 우울함을 가득 안고 사는 짐승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요? 사라이와 사토시는 실패한 구멍을 바라보면서 친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둘은 쉽게 친해지지 못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실패자라는 낙인을 견디지 못합니다. 둘 다 실패한 인생이지만 그 차이가 좀 있습니다. 

사토시는 실패하는 과정은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술집에서 일하는 현재라는 결과를 무척 고단하고 힘들어해 합니다. . 그러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쉽게 그만두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을 낮춰보는 눈빛에는 바로 응징을 합니다. 시라이와가 그런 눈빛을 보였습니다. 술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하대하는 그 눈빛. 

그렇게 항의하러 앉은 술자리에서 사라이와가 돌싱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과 비슷하게 상처가 많은 사람임을 압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가 있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받고 얻는 위안의 저질스러움

우리는 참 얍삽합니다. 우리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저런 사람도 살아가는데 나도 살아가야지라고 합니다.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나의 고통을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이러 시선이 문제가 되는 건 나보다 더 고통 받는 사람이 이런 내 시선을 받으면 그 사람은 더 고통스러워집니다. 

말을 안 하면 모른다고요? 사토시가 시라이와의 측은해 하는 눈빛을 보고 득달같이 달려와서 따지듯 묻는 이유가 '니가 뭔데  날 함부로 판단해'입니다. 물론 사토시의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나보다 더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지는 말았야 합니다. 고통은 등가로 제공되는 것이지 누구의 고통이 더 크고 작을 수 없습니다. 고통은 측량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물론 상대적이지만 그렇다고 편견을 가지고 고통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40대 이혼남인 사라이와와 사토시는 그렇게 비슷한 고통으로 친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강력한 펜스가 있습니다.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라이와와 자신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자격지심이 심한 사토시는 가까워지다가도 고슴도치처럼 하나의 펜스 앞에서 멈춰서게 됩니다. 


잘못과 실패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라이와는 이혼과 직장이 없는 2개의 실패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서 이혼이 실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어떤 것에 대한 실패는 자신이 내리는 것이 아닌 세상이 내립니다. 세상의 편견이로 보면 실패자입니다. 이는 사라이와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습니다. 단 이혼은 아내와 쌍방의 문제라서 오롯하게 나만의 문제는 아닙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2개의 실패 속에 살던 시라이와는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장을  보는 등 자전거로 생활을 합니다. 


이는 사토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밤에는 술집 작부로 일하는 자신을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토시는 그런 자신을 혐오하는 듯한 눈빛을 보인 사라이와에게 화를 낸 후 술자리를 갖고 친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실패의 상처의 고통을 잘 알기에 급속도로 친해집니다. 

사토시와 시라이와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실패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 실패가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잘못과 실패는 큰 연관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니가 잘못했으니까 실패했지'라는 생각을 쉽게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실패할 수 있죠.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무자르듯 구분 지어지는 일이 많은가요? 잘했어도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잘못했는데도 운이 좋아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혼은 어떨까요? 이혼은 내 잘못 떄문에 이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자가 잘못해도 이혼할 수 있습니다.

시라이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아내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뿐인데 아내가 그 긴 노동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토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면서 자신의 술집 작부일을 스스로 설득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실패한 삶이라고 두 사람은 스스로 인정합니다. 아니 좀 더 명확하게 망가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펜스를 열어주다

세상의 편견이라는 울타리(펜스)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시라이와와 사토시. 이제는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서로에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특히 시라이와는 자신의 잘못으로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사토시에게 자신의 과거를 다 털어놓지 못합니다. 솔직하지 못하다고 사토시가 힐난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만든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토시는 펜스를 열어줍니다. 자신이 관리하던 동물원 펜스를 열어줍니다. 펜스 안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사토시 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라이와도 자신의 펜스를 열어 줄까요?


편견도 상대적이지만 잘못도 상대적입니다. 난 잘못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상대방을 보고 내 잘못을 알 때가 있습니다. 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어린 아이에게 5개의 학원을 가라고 했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고 짜증만 냅니다. 그럼에도 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학원을 보냅니다. 

그러다 아이에게 학원을 다니지 못하게 하자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들고 자주 웃습니다. 그럼 이 아이에게 했던 내 행동은 무엇이 될까요?

잘못도 편견도 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울타리 안에서만 살면 난 평범하게 살았을 뿐이라고 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연인이 되려면 내 잘못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만든 펜스를 넘어서 다른 사람이 친 펜스에 들어가서 나 펜스를 바라보는 용기 또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 <오버 더 펜스>는 초반이 상당히 지루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 상처를 돌아보면서 보게 된다면 꽤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소재나 장면 없이 내가 그리고 세상이 만든 펜스 너머로 홈런을 치는 명쾌하고 상쾌한 영화입니다. 

오다기리 죠와 아오이 유우 보려고 봤다가 간만에 좋은 영화를 발견했네요. 

별점 : ★★★☆

40자 평 : 세상과 내가 만든 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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