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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과 화학의 산물인 사진이 세계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26년에 만든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 사진입니다. 사진을 공부하다 보면 꼭 배우게 되는 사진 발명가이자 사진입니다. 

<1827년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 본 조망>

이 사진은 1827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가 자신의 집 창가에서 무려 8시간의 노출을 줘서 촬영한 세계 최초의 사진입니다. 8시간 노출이라서 창 밖 건물 왼쪽과 오른쪽 벽 모두 환하게 담겼습니다. 태양이 왼쪽, 오른쪽 건물 모두 비추어서 양쪽 건물 벽이 환하게 담겼습니다. 

혹자는 다게르 사진이 세계 최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다게르 사진보다 11년 전에 촬영한 니엡스의 사진이 1952년 런던에서 발견된 이후 많은 논란 끝에 지금은 니엡스 사진을 세계 최초의 사진이라고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100대 사진에 꼭 들어가는 사진이자 사진의 역사를 다룰 때 가장 먼저 다루는 사진이 니엡스 사진입니다. 

이 세계 최초의 사진이 나오기까지는 꽤 지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카메라의 원조인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은 카메라 없이도 촬영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청사진이죠. 청사진 위에 여러 사물을 올려 놓고 햇빛을 쬐면 사물의 형태가 나오는 것도 픽토그램 비슷한 것도 사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뛰어난 재현성과 묘사력의 사진과는 거리가 있죠. 세상 풍경이나 피사체를 그림보다 뛰어난 재현성으로 담으려면 광학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 광학의 힘을 담은 사진 찍는 기계가 바로 카메라입니다. 카메라의 원조는 카메라 옵스큐라입니다. 

지금은 과학보다 종교가 더 우선인 듯한 아랍이지만 10세기 경만 해도 아랍은 유럽보다 과학 기술이 발달했었습니다. 아랍사람들은 움막 생활을 많이 했는데 움막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외부 풍경이 움막의 천에 거꾸로 비추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신기한 현상을 이용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했던 아랍의 '이븐 알하이삼'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발명합니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는 화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물과 풍경과 인물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데 이만한 도구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상자 앞의 렌즈를 통해서 들어온 외부 풍경은 위아래가 바뀐 상태로 맺히는데 반사경을 통해서 이 원상태로 돌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부 풍경이 맺힌 상 위에 거름종이를 올려 놓고 윤곽선을 따냈습니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로 그려진 명화들이 꽤 많다고 하죠. 이렇게 카메라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가 나왔지만 이걸 이용해서 그림을 그릴 뿐 사진으로 담을 그릇이 없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나온 후 많은 시간이 지나도 외부 풍경을 담을 그릇을 찾지 못했습니다. 


빠르고 싼 가격으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복제 도구를 연구한 니엡스

산업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는 부르주아들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왕이나 귀족들만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으니 산업 혁명 이후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시작되고 산업혁명 이전에도 무역상들이 큰 돈을 벌자 너도나도 귀족처럼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화가들에게 돈을 줍니다. 

화가들은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림이라는 것이 수작업이라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그림을 찾기 시작했고 그게 바로 판화입니다. 판화는 정밀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지만 도장처럼 마구 찍어낼 수 있는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사진과 비슷하죠. 

 

<17세가 플랑드르 화가의 그림을 복제한 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

신흥 중산층(부르주아)들은 큰 집에 걸어둘 그림을 사기 시작했고 그런 신흥 중산층을 위해서 판화들이 많이 생산됩니다. 그 판화 기법 중에 석판화가 인기가 높았습니다. 니엡스는 싸고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니엡스 집안은 부유한 집안이자 발명가 집안으로 형과 니엡스는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니엡스는 기존 그림을 복사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동판 조각가나  석판가들이 이미지를 고정할 때 사용하는 아스팔트 타르와 유사한 역청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 역청이 빛을 받은 부분은 단단해지고 빛을 받지 않는 부분은 물로 씻겨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부아즈 추기경 동판화의 복제판>

니엡스는 동판화에 기름을 먹여서 투명하게 한 후에 역청을 코팅한 유리판 위에 그것을 얻어져 햇빛을 2~3시간 쬐어주면 초상을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형의 조언에 따라서 유리판 보다는 금속판이 좋다는 의견에 따라서 1822년 니엡스는 백랍 금속판 위에 아스팔트 타르 같은 역청을 칠하고 라벤더 기름으로 세척하는 방법을 고안합니다. 이 방법이 바로 '헬리오그래피'입니다.  위 사진의 왼쪽은 당부아즈 추기경의 동판화입니다. 이 동판화를 헬리오그래피 기법으로 복사한 것이 오른쪽 사진입니다. 

이렇게 헬리오그래피는 기존 그림을 복사하는 복사기 같은 역할만 했습니다. 게다가 헬리오그래피는 기존 그림이나 판화를 복사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그림 위에 올려 놓고 하이라이트나 쉐도우 부분을 리터치를 해야했습니다. 즉 그림 실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니엡스는 그림 소질이 없었고 밑 그림이나 리터치를 그리지 않을 방법을 고민합니다. 

니엡스는 르네상스 화가들도 즐겨 사용했던 카메라 옵스큐라를 눈 여겨 봅니다. 외부 풍경과 피사체를 그대로 담아서 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라면 그림을 일일이 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에 니엡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라는 감광제가 발린 백랍 금속판을 달아서 외부 풍경을 광학과 화학 기술을 이용해서 사진으로 담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 헬리오그래피를 융합한 니엡스는 그렇게 인류 최초의 사진이 만듭니다. 
진격의 거인 3기에서 중세 시대에 사는 주인공들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림이 너무 정밀하다면서 자세히 보는데 그건 그림이 아닌 사진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사진은 그렇게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니엡스의 이 사진이 세계 최초의 사진이긴 하지만 노출을 무려 8시간이나 줘야하고 조악한 사진 품질과 금속판 위에 사진을 담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표준화 되지 않습니다. 


니엡스는 자신이 만든 카메라 2대 중 1대의 카메라의 렌즈가 깨지자 구두 브랜드로 유명한 그러나 당시에는 안경과 같은 광학 제품도 팔았던 슈발리에를 갔다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던 다게르를 만납니다. 이 다게르는 '카메라 옵스큐라'전문가였고 니엡스는 인화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헬리오그래피라는 새로운 인화 기법을 발명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세상에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알리게 됩니다. 이 니엡스와 다게르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참고한 책 : 포토아이콘/한스 미하엘 괴츨레,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김경훈 저, 사진의 역사/보먼트 뉴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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