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코엑스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 때 책을 참 많이 읽고 책도 참 많이 샀습니다. 제 방에 책장이 3개가 있고 다른 방에 책장이 2개가 더 있을 정도로 보유한 책이 1천 권이 넘습니다. 책이 많다고 내가 산 책을 모두 다 읽었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지만 다 읽은 책은 50%도 안 됩니다.
낭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유가 생길 때 다 읽을 생각입니다.
요즘은 책을 사지 않습니다. 책을 안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이지만 여러가지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책에서 구할 수 없는 지식을 유튜브에서 얻을 수 있기도 하지만 2014년 개정된 신간,구분 없이 10% 이상 할인할 수 없는 '신도서정가제'의 도입으로 책 구입을 거의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구입하는 책은 평소에 읽고 싶었지만 가격에 부담이 있어서 18개월이 지나면 가격이 50% 가까이 떨어질 때 많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8개월이 지나도 가격의 변함이 없어서 구입이 망설여집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예상한 신간 서적의 가격 하락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도서 구입 문턱이 높아지고 난 후 책 읽는 행위가 줄었고 정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립도서관에 희망도서 3권을 신청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도서관으로 변한 대형서점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라! 스타벅스와 교보문고가 이 시간 마케팅을 아주 잘 활용했습니다. 교보문고는 몇 년 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서 고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증폭하기 위해서 도서관 형식으로 변신을 합니다.
수백 년 된 나무를 잘라서 긴 테이블을 만들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좌석을 곳곳에 배치합니다. 한 마디로 도서관으로 변신을 합니다. 이런 변신을 벤치마킹한 영풍문고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서 테이블을 대폭 늘려 놓습니다.
을지로의 '아트앤북'은 책 판매 목적 보다는 카페와 빵집 등등 부수적인 공간에서 주 수익을 내고 서점을 미끼 상품으로 제공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도서관으로 변한 도서관화된 대형서점들은 문제점이 생깁니다. 책을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처럼 책을 읽고 그냥 테이블위에 놓거나 손 때가 묻고 구겨진 책이 증가합니다. 이런 부작용은 예상 되었던 일이죠. 문제는 이런 부작용을 교보문고가 부담하면 교보문고도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도서관 전략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화 된 대형서점의 파손된 책, 더러운 책의 부담을 교보문고가 아닌 출판사들이 부담을 합니다. 파손된 책은 전량 책을 제공한 출판사들이 부담을 합니다. 아시겠지만 대형서점은 절대 갑이고 출판사들은 절대 을입니다. 갑인 교보문고가 이 파손된 책 출판사들이 책임지라고 명령하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열받은 을인 출판사들이 교보문고에 책 납품을 거부할까요? 못합니다.
책 랩핑으로 교보문고에 대항하는 출판사들
시각디자인과 다니는 조카가 방학이라면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주에 만날 예정인데 그냥 만나면 뭐할 것 같아서 시각디자인과 학생에게 도움이 될 바우하우스의 교수이자 유명 화가인 칸딘스키가 쓴 '점,선,면'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려고 교보문고에 들렸습니다. 이 책은 고전책이지만 내용이 궁금해서 들쳐보기 위해서 교보문고에서 책을 꺼내서 봤습니다.
순간 놀랬습니다. 책이 랩핑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랩핑이 된 책들은 만화책이나 잡지 등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어버릴 수 있는 책들만 랩핑을 합니다. 이해합니다. 책은 안 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가는 체리피커를 방지하기 위함이죠. 그런데 이 책은 잡지도 만화책도 아닌데 랩핑이 되어 있습니다.
당혹스러웠지만 좀 이해는 갔습니다. 요즘 쇼루밍이라고 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충분히 살펴보고 물어보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소비 행태가 보편화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쇼룸이 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소비 행태가 보편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랩핑을 했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오프라인 서점의 장점이 전혀 없습니다.
이 책만 그런가하고 매대를 둘러봤습니다. 매대에 나온 책들은 쉽게 읽어 볼 수 있게 배치한 책들이 많죠. 특히 신간 서적들은 출판사와 서점의 뒷거래를 통해서 매대에 배치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마케팅 비용을 대형서점에 지불하기도 했죠.
그런데 매대에 있는 책 중에 심심찮게 랩핑이 되어 있는 책들이 꽤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내용을 읽어볼 수 있었지만 바로 위 사진의 안티프래질이라는 아주 두꺼운 책도 랩핑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한 손님이 직원에게 랩핑이 된 책에 대해서 문의 하는 내용을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랩핑된 책은 어떻게 보나요?"
"랩핑된 책은 볼 수 없습니다"
그때 알았죠. 이게 출판사의 전략이구나.
책은 안 사고 책 내용 중 내가 필요한 부분만 메모하고 몰래 사진 찍는 고객을 방지하기 위해서 랩핑된 책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이게 대형서점의 도서관 전략에 출판사들이 내놓은 대응책일까요?
확실한 건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됩니다.
대형서점 뿐이 아닙니다. 동네 서점도 랩핑된 책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이런 출판사들의 대응에 책 구매자들은 천상 책을 산 분들의 리뷰를 참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또는 책의 액세서리화에 출판사들이 자국책처럼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