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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X세대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회 X : 1990년대 한국미술

by 썬도그 2016.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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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라고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X세대라고 합니다. 제가 20대 초반 나이에 졸지에 X세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10,20대들은 X세대가 뭔지 잘 모를 것입니다. X세대는 캐나다 출신의 더글라스 코플랜드의 소설 <X 세대>라는 책에서 튀어나온 용어입니다. 1961년부터 1984년이라는 그러니까 지금의 30~50대의 나이를 X세대라고 했습니다. 이 X세대가 이전 세대와 가장 큰 다른 점은 풍요입니다. 물질적 풍요가 가득했던 90년대에 누린 세대들입니다. 그러나 이혼 증가와 맞벌이라는 느슨해지고 허물어지는 가족 관계가 나오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X 세대'는 좀 다릅니다. 이 단어가 한국에서 유행한 것은 1993년입니다. 1993년 당시에 10,20대들을 말했기에 현재의 3,40대 분들이 X세대입니다.

X세대를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를 하는지도 모르고 우연히 들렸다가 아주 좋은 전시회를 봤네요



전시회는 겨울 내내 합니다. 내년 2월 19일까지 하니 방학 때 30,40대 부모님들이 아이들 손잡고 볼 수 있겠네요. 90년대 한국 미술 전시회인데 저도 90년대를 지나왔지만 그 당시에는 술먹고 담배피다가 세월 다 보내서 문화를 즐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보통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회는 사진 촬영이 허용이 되는데 이 전시회는 일부만 촬영이 허용되었습니다. 
작가 분들이 촬영을 원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소개하지 못한 전시는 글로 설명하겠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면 1998년에 전시했던 전시회를 재제작해서 전시하는 윤동천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인터렉티브한 작품입니다. 벽에는 다양한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상식이 통하는 사회", "침식제공 월수 150보장 초보환영", '다시 뛰는 한국인, 뛰는 놈만 죽도록 뛰는 한국인",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쉬고 싶다 일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독설이 가득한 문장들이 붙어 있는데 가장 공감이 가는 문장 밑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서 큰 그릇에 종이를 올려 놓으면 됩니다. 저는 이중에서 "다시 뛰는 한국인 뛰는 놈만 뛰는 한국인"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이 작품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전의 미술 전시회는 그림을 조용히 감상만 하는 풍경이 많았습니다. 미술도 '모던 미술'과 '민중 미술'로 갈라졌던 시절이었습니다. 상당히 경직되고 권위적인 시대가 80년대였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접어들자 이념의 시대에서 쾌락의 시대로 접어 듭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90년대 풍경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즐거운사라'로 구속된 것도,"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라고 노래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것도 바로 1992년의 일이었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 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 일부 발췌>

세상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죠. 그럼에도 어떤 해는 거대한 칸막이가 쳐진 해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칸막이는 1991년입니다. 1991년 이전에는 이념의 시대로 전국 대학교에서 매일 같이 정치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1년이 지나면서 이념의 시대가 저물고 쾌락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매년 고속 성장을 하던 한국 경제의 따뜻한 온기가 전국에 퍼지고 있었고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달려가던 해였습니다. 처음으로 물질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초입니다. 이런 물질적 풍요와 소비 지향적인 문화가 만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압구정 오렌지족'이죠. 


이런 쾌락주의적이고 획일화된 세상에서 탈피한 자기 개성주의가 만연한 시대가 90년대 초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아닌 '나'에 시선을 돌리던 시기가 90년대 초입니다. 80년대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나를 버리는 공동체가 우선시 되는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우리 보다는 내가 더 중요시 하던 시대였습니다.

위 영상은 1994년 MBC 뉴스입니다. X세대에 대한 보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20대보다 더 센세이션한 패션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봐도 90년대 초 당시 멋쟁이들이 참 많았어요.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니는 분들도 많았고요. 이 영상 보고 놀란 10,20대분들도 많을 거에요. 당시 이런 분위기는 풍요로운 시대이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찬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 희망이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자본주의의 거대한 시련을 맞아서 점점 사라졌지만 그 거대한 경제와 삶의 붕괴가 있기 전에는 이렇게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전시장 가운데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년도별로 분류를 한 후 그 해에 일어난 사건 사고 및 주요 전시회나 문화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를 천천히 보니 90년대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네요. 먼저 91년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동유럽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변신을 합니다. 드디어 냉전 시대가 끝이 났습니다. 거대한 공포가 사라지자 전 세계는 큰 활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중국도 북한도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달뜬 시기였고 자유 분방함은 크게 증가 했습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랩 음악이 시작됩니다. 이후 힙합이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993년 최초로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 한국도 군사 정권에서 벗어납니다. 


자유분방함은 예술계에도 스며듭니다. 90년대 초의 한 전시회에 대한 기사네요. 압구정을 주제로 한 전시회인데 광고 같은 작품에 대한 비난을 하는 관람객도 있네요. 지금은 이것도 예술이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당시는 예술이야 조용하고 고귀하고 정갈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모더니즘 개념은 예술가 사이에서도 잘 정립되어 있지도 않은 느낌이고요.

이런 와중에 015B가 나오니 뭐라더라? '포스트 모더니즘' 그룹이라고 칭송하는 뉴스 기사도 생각나네요. 
모더니즘도 제대로 모르는데 '탈 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뉴스 기사에 썼던 시절입니다. 저는 그것도 제대로 모르고 우와! 역시 서울대 출신 그룹은 용어도 고귀하구나 떠받들었네요. 


이게 압구정을 주제로 한 전시회의 한 작품입니다. 마치 건축 설계도나 평면도 같아 보이지만 이것도 예술 작품으로 전시 되었습니다. 


80년대 90년대 미술에 항상 등장하는 이름이 '박불똥'작가입니다. 이름이 독특해서 금방 외워버린 작가이지만 작품도 쉬우면서도 명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미지를 잘라서 붙인 몽타주 작품입니다. 


한국 사진 문화를 거론할 때 항상 거론이 되는 획기적인 전시회가 2개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1988년 5월 18일부터 6월 17일까지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 새 시좌'전시회입니다. 이 전시회는 해외 유학파 사진작가들이 주축이 되어서 전시를 했는데  구본창, 김대수, 이규철, 이주용, 임영균, 최광호, 하봉호, 한옥란 작가가 참가했습니다.

이 사진적이 획기적인 사진전이 된 이유는 이전의 사진전과 달리 최초로 연출 사진을 전시하는 전시회였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사진전은 스트레이트한 다큐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은 리얼리즘 사진이 전부였는데 이 리얼리즘을 벗어난 연출 사진이 등장한 게 이 전시회입니다. 


 또 하나는 1992년 장흥 토탈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사진의 수평전'입니다. 이 사진전도 재현 사진이 아닌 연출 사진을 선보여서 큰 변환점이 됩니다. 두 사진전에 구본창 사진작가가 참가한 것도 재미있죠. 구본창 사진작가는 한국에 메이킹 포토라는 연출 사진을 선도적으로 선보인 작가이죠. 

지금이야 연출 사진, 다큐 사진이 혼재되어 있지만 9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이 재현 사진이었습니다. 별거 아닌 변화지만 한국 사진계에서는 큰 변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연출 사진의 메이킹 포토와 재현성의 중요한 다큐 사진은 같은 사진 매체를 사용할 뿐 문법이 아예 다른 장르라서 아예 구분해서 보려고 합니다. 연출 사진은 미술 회화 쪽이고 재현 사진인 다큐 사진은 현실을 복제한 복제 예술로 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전시회 자체는 아주 화려하고 볼 것이 많거나 하지 않습니다. 평범하고 재미가 크게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와 같이 그 시절의 추억이 많은 분들에게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도입니다. 90년대 예술 전시 풍경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지만 작품들 자체는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가장 놀란 작품이 몇 개 있었고 그중에서 가장 놀란 작품은 이재용 감독의 '한 도시 이야기'라는 비디오 작품입니다. 영화 <죽이는 여자>, <두근두근 내 인생>, <여배우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로 알려진 중견 감독인 이재용 감독이  1994년에 만든 '한 도시 이야기'는 1994년 6월 9일 700명을 동원해서 6월 9일 하루를 비디오와 사진으로 채집합니다. 

사진 7만 컷, 엄청난 비디오 촬영 분으로 1천만이 사는 서울의 하루를 스캔했습니다. 사진학과 학생들과 여러 도움을 통해서 350대 카메라가 동원된 이 대규모 기록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04년에 완성이 됩니다. 

이 어마어마한 기록물은 1994년을 기억하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서울 곳곳을 촬영한 영상과 유명인들의 인터뷰, 일반인들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이 영상물은 보면서 내가 1994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1994년 당시 경찰복, 버스, 패션, 연예인, 익숙한 풍경들이 가득 펼쳐지네요. 


이형주의 <기억 채집>이라는 작품도 재미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는 카페 문화가 막 태생하던 시절이고 이 카페에서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80년대는 다망과 커피숍 문화가 혼재 되었다면 90년대가 되자 수족관이 있고 다방 문화가 저물고 밝은 쇼 윈도우가 있는 환한 커피숍 문화가 정착됩니다. 

여기에 다양한 콘셉의 카페들이 늘어가죠. 이벤트 카페, 퍼포먼스 바, 라이브 클럽 등의 이색적인 카페들이 증가합니다.
이형주 작가는 올로올로(1991), 오존(1991), 발전소(1992), 곰팡이(1994)라는 카페를 재구성합니다. 


아쉽게도 전 이런 카페들을 가본 적이 없네요. 주로 강남이나 종로에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신촌에 있는 카페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신촌 상권이 죽고 홍대와 상수동 쪽이 떴지만 90년대는 신촌 상권이 더 컸습니다. 

화려한 전시회는 아니지만 1990년대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전시회네요. 돌아보면 촌스럽고 유치함도 느껴지지만 사람들의 의식 전환의 시기이자 쾌락의 시대인 90년대를 환기할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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