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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국내사진작가

산업 사회에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은 박현두 사진작가

by 썬도그 2016.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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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필요하면 직접 자작해서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이 그렇죠. 배고프면 먹이를 먹고 배부르면 먹이가 남아도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저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돈을 쟁여 놓은 자본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거대 산업화의 진행을 통해서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시절이 요즘이 아닐까 하네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영혼은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소유의 물건은 많아질수록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줄어드는 길고 지난한 외로움과 기나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굿바이 이방인2, 2007, 박현두>


<굿바이 이방인2, 2007, 박현두>


<굿바이 이방인2, 2007, 박현두>



<굿바이 이방인2, 2007, 박현두>

박현두 사진작가의 굿바이 이방인2 사진은 소외된 인간을 시각적으로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거대한 방송국 세트장에서 웃고 떠들던 모습이 사라진 무대에 한 사람이 덩그러이 놓여져 있습니다. 왜 이 사진들을 보고 외로움을 느낄까요?

그건 아마도 방송을 보고 웃고 떠들지만 결코 그 웃음이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 것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요?내가 참여하는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수용자인 우리들은 TV를 보고 울고 웃고 감동하지만 TV가 꺼지면 그 감정도 바로 휘발됩니다. 특히, 책과 달리 TV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그게 더 심합니다. 

그래서 제가 TV 시청을 줄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지만 TV를 보면 볼수록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거의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도 외로워서 TV를 보는 것 아닐까요? 특히, 드라마는 완벽한 세상을 담은 하나의 환타지잖아요. 


<굿바이 이방인, 2002, 박현두 사진작가>

박현두 사진작가의 외로움 담기는 2002년도에 시작되었습니다.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거대한 주차장 안에 한 사람이 박스에 몸을 우겨 넣고 있습니다. 도시는 참 외롭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외롭게들 삽니다. 

SNS를 해도 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시에 살면 소외감을 자주 느낍니다. 차가운 건물,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익명의 세상 속에서 외로움이 가득 담긴 사진입니다


11월 한달 내내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된 다양한 사진 속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사진은 이 사진입니다. 그냥 흔한 강남의 한 건물 같아 보이네요. 이 건물은 워낙 독특한 외모를 가진 건물이라서 아주 유명합니다. 9호선 신논현역에 나오면 바로 보이는 한스킨 건물입니다.  그런데 사진 속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품 크기가 2미터 이상으로 꽤 커서 자세히 안 보면 그냥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 양머리를 한 찜질방 복장을 한 사람이 건물을 오르고 있네요


또 다른 곳에서는 3명이 건물에 매달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포토샵 작업한 작품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보니 이 작품은 포토샵을 이용한 합성 사진이 아니라 연출 사진이네요. 

차량 통제를 하고 모델을 고용하고 건물주 허락을 받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도 <굿바이 이방인> 시리즈이자 최신 작품입니다

이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 곳곳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프린트 크기가 아주 커서 사진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봐야 사람들이 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냥 흔한 건물 사진으로 보입니다.

이는 마치 도시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도시인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냥 도시라는 사진의 하나의 픽셀처럼 느껴지죠. 다가가야 합니다. 다가가서 말을 붙이면 도시인에서 내 이웃이 되고 내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 스타일의 해외 유명 사진작가가 있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이 생각납니다. 거스키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대사회 또는 픽셀처럼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삶을 거대한 프린트의 사진에 담습니다. 박현두 사진작가도 이 거스키에게 영향을 받았을까요?

두 사진작가가 표현 방식도 비슷하고 주제도 비슷하네요. 최신작을 보면 점점 거스키처럼 규모가 커져가고 있네요. 한스킨 건물 사진을 촬영하려면 꽤 돈도 많이 들어갔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꽤 규모가 큰 사진 프로젝트입니다. 요즘 사진계도 프로젝트 단위가 커지고 있죠. 아무래도 크면 동공도 커지는 경향이 있기에 큰 사진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크다고 인기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크게 담아야 할 이유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박현두 사진작가의 <굿바이 이방인> 시리즈는 크기에 적합한 소재와 주제입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진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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