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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국내사진작가

사진은 삐딱함이다. 삐딱함이 가득한 육명심 사진작가의 사진들

by 썬도그 201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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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올해 처음 사진전을 보러 과천 현대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먹은 술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려서 갈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딱 보고 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전철에 몸을 싣고 과천 현대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때마침 셔틀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어서 편하게 도착했습니다.


현대미술관에 오면 이 노래 부르는 거대한 조형물이 인사를 합니다. 정말 멋진 작품이에요. 메아리처럼 산을 향해 계속 노래를 부릅니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_사진 : 육명심

제가 현대미술관에 새해벽두부터 간 이유는 육명심 사진작가의 사진전 때문입니다. 
현대미술관은 아직 살아계신 각 장르별 원로작가를 20명 정도 모시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사진분야 전시회가 진행되는데 이 사진분야 대표로 육명심 사진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사진전 포스터가 거대하게 붙어 있네요. 


사진전은 3층에서 전시되는데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육명심 사진작가를 무서워했습니다. 참 사람 단순하죠. 제가 이 사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눈에서 광선이 낙는 듯한 포스에 압도 당했습니다.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무서운 인물 사진은 첨 봤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못보는데 포스트를 쓰면서 계속 보니 이제 좀 익숙해지네요.

이 사진은 철원 지역에 있는 대무당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단순하게도 전 이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 육명심도 비슷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의 기운을 받아내려면 사진작가도 엄청난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전 기운 강한 사람이 부담스러웠고 그 이유 때문에 육명심 사진작가를 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날 우연찮게 육명심 사진작가의 실제 모습을 뵙고 마음이 싹 바뀌었습니다. 



매일 1회 하는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전을 관람했습니다.
육명심 사진작가는 1932년 태어나셔서 연세대 영문학과에 입학합니다. 영문학도였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예술 강좌를 많이 들었습니다.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 배재중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가 됩니다. 

육명심 사진작가가 사진을 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아내가 결혼하면서 가져온 카메라를 가지고 신혼 여행 때 사진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교사를 그만두고 사진작가가 됩니다. 이때 나이가 30이 넘은 나이인 1964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진계는 보도사진이라고 하는 리얼리즘 사진과 그림 같은 예쁘게만 담으려는 탐미적인 사진인 샬롱사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리얼 또는 샬롱 사진계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 육명심 사진작가입니다. 육명심 사진작가가 사진작가가 되기 전 사진은 그냥 흔한 샬롱 사진 같은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천착하게 되면서 외국에서 나온 사진 관련 원서를 직접 읽고 그 책을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합니다. 누구보다 해외 사진 사조에 대한 정보와 철학을 먼저 접하고 탐닉한 육명심 사진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 세계를 구축해 갑니다. 



초기 사진입니다. 남산의 김구 동상 밑에 학생들의 얼굴 바다가 흐릅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헤어 스타일이 마치 해변가의 자갈 같네요. 그 뒤로 김구 선생 동상이 미래를 향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 한 가운데 "반공의 선봉되고 통일의 초석되자"가 써 있습니다. 전 이 사진에서 깊은 우울이 느껴졌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우익 테러조직인 백의사의 자살특공대원이었던 안두희에 의해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반공분자의 총에 쓰러진 것이죠.  

그런데 여학생들이 반공의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반공이 나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반공을 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자를 살해한 이승만 정권이 나라 사랑을 외치는 모습이 역하네요. 이런 역학 관계까지 알고 보면 사진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모르고 봐도 흥미롭고 구도가 좋은 사진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육명심 사진작가는 정치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시더군요. 



사진은 중심을 텅비게 담은 '인상' 시리즈


위 세 사진의 공통점은 뭘까요?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대번에 아실 것입니다. 사진 중간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냥 땅바닥,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도장의 빈 공간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피사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배치가 되어 있는데 피사체의 일부만 담아 있습니다.

보통 이런 사진을 우리는 B컷 또는 잘못 찍은 사진이라고 폄하를 하죠. 특히 기록 사진 입장에서 보면 이 사진은 잘못 촬영된 사진입니다. 그러나 1960년대 당시 예술 사진 개념도 잡히지 않았고 예술이라고 하면 정확한 구도를 중요시하는 살롱 사진 문화에서는 이 사진은 오류 같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당시에는 이게 무슨 사진이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육명심 사진작가는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찍던 방식을 버리고 나만의 시선으로 사진을 촬영하게 됩니다. 왜 피사체를 가운데에 넣어야해? 왜 피사체를 구석에 배치하면 안돼?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이 바로 '인상'이라는 사진 시리즈가 됩니다. 


가운데가 텅 비었지만 비었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엔 '텅 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웃음도 잘 담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삐딱선을 잘 타시는 기질이 강하셨고 정동 배재중고등학교 설립자인 아펜 젤러 동상 제막식에서 이 사진만 찍고 가셨다고 하네요. 대단한 기백입니다. 누가 이런 사진을 내밀면서 제막식 사진이라고 하겠어요. 그러나 육명심 작가는 했습니다. 이런 반골 기질은 그가 다른 사진작가와 다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70년대의 <예술가의 초상>시리즈

인물 사진은 참 촬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 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사체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촬영한 사진에 대해서 고마워하거나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눌 수 있죠. 그러나 한 사람을 한 장의 사진에 넣는 다는 것은 여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인물 사진가들이 모델이 되는 인물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그가 쓴 책이나 활동이나 인터뷰를 챙겨보고 촬영을 하러 갑니다. 촬영 장소에 가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인물의 특징이나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어떻게 촬영한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을 보면 육명심 사진작가는 대단한 인물 사진가입니다. 


미당 서정주를 촬영한 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이 조선에 와서 신기하게 본 것 중에 하나는 조선 사람들이 어디서나 쭈구려서 잘 앉는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쉬는 시간이 있으면 쭈그려 앉아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고 하죠. 그러고보면 우리는 참 잘 쭈그려요. 요즘은 그런 모습 쉽게 볼 수 없지만 쭈그려서 수다 떠는 아주머니들 많이 봤었어요

아마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겠죠. 먼저 예전엔 포장도로가 없어서 비가 좀 내리면 진창이 된 길이 많았습니다. 그럴때 쭈그려 앉으면 좋죠. 또한 저 자세가 푸세식 화장실의 자세이자 변이 잘 나오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양변기가 보급되면서 저런 자세 할 일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미당 서정주의 저 쭈그려 앉은 자세에 탐복을 했습니다. 한국인이 잘 취하는 자세. 여기에 한복과 저 멀리 어느 산인지 모르겠지만(사당동에  사셨으니 관악산 일듯)한국의 산이 보입니다. 이런 사진을 찍은 분이 육명심 사진작가입니다. 



이외수, 운보 김기창, 신경림 시인 등 다양한 예술인들의 초상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특히 위의 울음이 나올 듯한 천상병 시인의 모습은 깊이 기억에 새겨질 듯 하네요. 군사정부에서 맞은 고문을 받았던 천상병 시인이 앓고 있는 시대의 우울이 느껴집니다.  이후 육명심 사진작가는 평생에 남을 사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바로 백민 시리즈입니다. 



전국의 무명씨를 카메라에 담은 '백민(白民)'시리즈

한참을 봤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위셨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잘 알죠. 딱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입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 모습. 근엄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람을 낮춰보는 권위 그 자체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 손에는 소주잔이 들려 있는데 약주 한 잔 하시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근엄하고 고지식하고 권위적으로 보여도 이렇게 할머니와 마실 나온 듯한 모습이 두분이 다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육명심 사진작가는 하나의 사진 시리즈를 하면 대략 3년에서 5년 이상 작업을 했습니다. 80년대에는 백민(白民)시리즈는 육명심 답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백민 시리즈의 백민은 관직이 없는 평범한 백성을 말합니다. 무명씨라고 할 수 있죠. 전 사극을 안 봅니다. 예전엔 즐겨 봤는데 육룡이 나르건 말건 안 봅니다. 영화도 사극은 좀 꺼려합니다. 제가 사극을 안 보는 이유는 온통 왕 이야기만 합니다. 사대부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유명인 주변 이야기만 하죠. 그래서 제가 추노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무명씨로 살았던 필부필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잖아요. 

세상의 주인공이 백성이라는 민주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공인 민주주의 시대에 살지만 정작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조선 시대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뜬 구름 같은 국민 여론은 권력자들의 술책에 획획 변하는 모습이 짜증나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주인공은 국민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도 카메라는 권력자에게 향합니다. 정치인, 연예인, 대통령, 스포츠 영웅 등등 유명인들로만 향하죠. 그나마 언론을 벗어나면 사진 SNS에 평범한 우리들의 얼굴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80년대은 어땠겠어요. 소풍가서 기념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평범한 우리를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김기찬 사진작가처럼 골목안 풍경을 촬영한 사진이 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스치듯 촬영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있었어도 지방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을 촬영한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백민 시리즈는 그분들을 찍었습니다. 80년대라는 변화가 마하급으로 진행되던 시대에 무명씨를 촬영했습니다. 




80년대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접어들던 시기였습니다. 서양으로 말하면 산업혁명이 70년대 시작해서 80년대 정점을 달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이미지와 한국의 이미지가 섞여 있다가 점점 조선의 이미지가 사라지던 시기였습니다.

육명심 사진작가는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옛 풍경들을 보면서 빨리 촬영하지 않으면 다 사라지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무명씨를 촬영했습니다. 위 사진은 80년대에 철원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들은 유형학적인 사진처럼 인물들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증명성과 기록성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정면을 바라보게 하고 촬영했습니다.

이는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와 비슷합니다. 증명사진 같아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위 사진은 소까지 정면을 쳐다 보네요. 



대부분의 인물들은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갓에 쓰는 우산인 도롱이를 쓴 촌로도 보이네요. 80년대 농촌이라는 것이 놀랍네요. 저도 그 시대를 살았는데 지방에 갈 일이 없으니 이런 풍경인지 몰랐습니다. 기록 사진에도 서울과 도시만 기록하지 농촌은  풍경 사진의 도구로만 활용하지 그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육명심 사진작가는 이 사진을 촬영할 때 아주 기분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할머니인데 사진 촬영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모델이 된 할머니도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인물과의 교감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육명심 사진작가. 맞습니다.

인물과의 교감이 없으면 인물 사진 제대로 나오기 힘듭니다. 경제의 눈빛이 아닌 사진작가를 친한 이웃으로 여길 때  마음의 경계가 풀어지고 그 표정이 얼굴에 담기게 됩니다. 이 사진은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로 빛이 너무 좋네요. 저렇게 강한 빛이 뒤에서 오면 피사체가 검게 나올텐데 노출도 좋고요. 





순천 선암사의 법정 스님 같은 분의 사진도 보이네요. 



마침 이날 육명심 사진작가를 뵐 수 있었습니다. 왜소한 몸에 인심 좋은 할아버지 얼굴이시네요. 


작품 설명을 아주 열심히 해주시네요.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기억이 전혀 바래지지 않으셨는지 어떤 사진도 척척 설명을 하십니다. 




백민 시리즈를 촬영하다가 전국에 있는 장승을 보게 됩니다. 나무로 된 장승도 있지만 육명심 작가가 눈여겨 본 것은 한국인의 곰살궂은 장승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장승 시리즈는 백민에 이어서 진행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80년대 민중 미술과 연계를 하려고 합니다. 육명심 사진작가 본인은 단지 소재가 민중을 향한 것이지 민중 예술에 연계나 영향은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올해로 여든이 넘으신 나이지만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덕담이 많이 들려오네요. 어떻게 보면 80년대 한국 사진의 기틀을 다진 분이십니다. 사진작가이자 사진 이론가인 육명심. 전시회에는 총 190여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6월 6일까지 전시를 하니 천천히 보셔도 됩니다. 


반골기질이 육명심을 만들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의 관습을 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를 현대미술관에서 모신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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