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이 수상을 했습니다. 한국에도 올 2월 개봉을 했지만 개봉 당시 보지 못했지만 항상 궁금한 영화였습니다. 무슨 영화이기에 아카데미가 선택을 했을까요?
2차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생지옥을 담은 영화 <사울의 아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2월 당시엔 알았어도 그새 까먹었네요.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초점이 나간 영상이 보입니다. 아웃포커스된 화면 속에서 몇몇 사람이 삽질을 합니다. 잠시 후 주인공이 점점 카메라 앞에 다가오더니 선명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아마도 조리개를 개방한 후 초점을 바로 앞에만 맞게 했나 보네요. 그런데 이때부터 영화는 놀라운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촬영 기술이고 또 하나는 영화가 담고 있는 곳입니다. 먼저 영화가 담은 시대적 배경과 장소가 경악스러운 곳인 2차 대전 당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입니다.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을 열차로 실어나른 후에 가스실에 넣어서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곳입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은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지옥을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사울(게자 뢰리히 분)은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은 시체를 나르고 소각하는 일을 하는 존더코만더입니다. 존더코만더는 부역을 하지만 자신들도 몇달 후에는 똑같이 죽음을 당하는 바람앞에 촛불같은 존재입니다. 영화는 놀랍게도 이 소각장에서 일어나는 생지옥과 같은 일을 묵묵히 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표현은 거부감이 들기에 영화는 주인공 사울만 초점을 맞추고 그 뒤에 있는 배경으로 담기는 시체들을 다 아웃포커싱으로 날려버립니다. 따라서, 영화 자체가 담는 공간에 대한 최대한 부드럽게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흐려진 배경에 담기는 생지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아주 영리한 영상화법입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영상을 끄고 한 숨을 쉬면서 봤습니다. 정말 보는 것 자체가 견디는 것이라서 기분은 한 없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류가 저지른 거대한 범죄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담고 제대로 담은 영화도 많지 않습니다.
주인공 사울은 아우슈비츠 곳곳을 다니면서 이 공간의 구성이나 생지옥의 곳곳을 보여줍니다. 영화 내용은 단순합니다. 가스실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다가 가스질식으로 사망하면 존더코만더들이 들어가서 토막이라고 불리는 시체를 소각장으로 나릅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그 지옥에서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가 마지막 숨을 끊어버립니다. 사울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부검을 하기 위해서 부검실로 옮기라는 말에 자신이 직접 그 죽은 소년을 들고 부검실에 갑니다. 그리고 부검실의 폴란드 의사에게 말합니다. 이 죽은 소년은 내 아들이라면서 아들은 꼭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아들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사울이 랍비를 찾아서 종교의식을 치루후에 묻어주려고 하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롱테이크와 근접 초점으로 담은 생지옥
이 영화는 독특한 영상화법을 가진 영화입니다. 먼저 근접 초점을 사용해서 주인공의 얼굴만 화면 가득 나오고 주변사람들은 배경이나 대화를 할 때만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는 2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하나는 주인공 사울의 태도입니다. 사울은 매일 끌려오는 동족들이 가스실에 넣는 것을 돕는 부역자입니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낄 만도 하지만 자신의 바로 앞만 보고 삽니다.
자신들도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그런 연민을 느끼기엔 현실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안위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주인공은 바로 앞만 보고 삽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뿌옇게 봅니다. 감독은 이런 사울의 심정을 대변하듯 모든 것을 흐리게 처리해 버립니다. 아웃포커싱을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시체들이 즐비한 잔혹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대신. 소리와 장소가 주는 경악스러움으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후반에 구덩이라는 곳은 지옥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롱테이크가 기본적인 영상 화법입니다. 한 번 롱테이크를 가면 5분 이상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길게 찍고 근접촬영으로 촬영을 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촬영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니 보조자 2명이 카메라 맨을 이끌고 다녔네요. 필름 크랭크 같은 것이 보이는데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을까요? 영화 <사울의 아들>은 촬영 기술도 무척 뛰어난 영화입니다.
그 소년이 정말 아들이었을까?
영화는 무척 불친절합니다. 사울이 아들을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루어지기 위해 수용소를 종횡무진하지만 누구하나 제대로 막지 못합니다. 또한, 사울을 잘 아는 여인을 만나지만 그게 누구인지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기밀주의를 지향하는지 어떤 상황인지만 보여줄 뿐 제대로 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사울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죽은 소년이 정말 아들일까?라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울은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로 아들을 제대로 묻어주기라는 미션을 죽음을 무릅쓰고 진행하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아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소년을 통해서 있지도 않는 희망을 느껴보기 위한, 생존을 위한 환상 아니였을까요?
누구나 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어떤 곳인지 압니다. 누구나 다 그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압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담은 영화는 없었습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은 그 공간을 제대로 담습니다. 비록 아웃포커싱된 모습이지만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을 스크린에 모두 담았습니다. 마치 내가 그 공간에 함께 있다는 느낌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역겨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유대인들은(감독이 유대인임) 이 2차 세계대전의 생지옥을 영화로 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아픈 역사를 꾸준하게 담으구나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또 하나의 폭력은 눈감는 모습에는 또 하나의 역겨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독특한 영화 촬영과 영화의 의미는 잘 알겠는데 목도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분이 한 없이 추락하게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보라고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제대로 느끼게하는 <사울의 아들>이라는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하네요
별점 : ★★★☆
40자평 :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생지옥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