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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사진이 없는 사진에 관한 책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by 썬도그 201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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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뭐람" 이 좋은 풍광을 뷰파인더나 액정으로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났습니다. 
이 짜증은 금방 해결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 놓고 실컷 풍경을 질릴 때까지 즐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멋진 풍경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 머리 속 기억이라는 암실에 필름처럼 남았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하고 풍경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런 회의가 들떄가 많습니다. 이 좋은 풍경을 뷰 파인더로만 봐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죠.  특히 아빠들은 가족들 사진 찍는다고 사진을 엄청나게 찍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머리 속 기억에는 뷰파인더를 통해서 본 풍광만 기억날 뿐 눈으로 본 풍광은 별로 없습니다. 사진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찍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작가 숀은 며칠을 기다린 눈표범을 발견합니다. 망원렌즈를 통해서 윌터에게 보여주죠. 그런데 이상하게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이에 월터가 묻습니다. 

"안 찍으세요?"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사진이 세상 모든 순간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세상 최고의 사진은 누군가의 머리 속에 있지 않을까요? 그 담지 못한 순간들 또는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을 모은 책이 바로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입니다. 


사진이 없는 사진에 관한 책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사진에 관한 책을 서울도서관에서 뒤적이다가 신기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에 관한 책인데 사진이 1장도 없습니다. 이 독특한 시선이 너무 근사했습니다. 그래서 냉큼 읽어 봤습니다. 

이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는 사진가 겸 작자인 저자 월 스티어시가 주변의 사진가들에게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순간을 담은 글을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진작가와 사진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보내왔고 이 경험을 엮은 책입니다. 책 속에는 수 많은 찍지 못한 아쉬운 순간과 찍을 수 없는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중에서 소개할 만한 몇몇 순간을 소개합니다. 


에드 카시라는 사진가는 친구인 감독 믹과 함께 파키스탄 취재를 하고 돌아오다 파키스탄 시내에서 끔직한 교통사고를 목격합니다. 그 교통사고로 한 아이가 크게 다쳤습니다. 머리가 깨졌고 장기나 나온 상태여서 사람들은 가망이 없다고 여기던 순간에 감독 믹은 아이에게 심폐 소생을 하고 응급 조치를 취하고 차에 태워서 병원까지 데려다 줍니다. 

아이는 병원에서 죽게 되었고 오열하는 어머니를 진정 시켜주었습니다. 에드 카시는 이 광경을 보고 난 후 
"나는 사진을 찍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다"라는 생각에서 "나의 사진은 나의 기억이다"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흔한 교통 사고이기에 별 관심도 없지만 관심을 가지더라도 사진을 촬영했을 자신과 달리 감독 믹은 아이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큰 생각꺼리를 던져줍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진을 찍고 구할 것인가?라는 딜레마를 가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사진가란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것이 본업이기 때문에 사진을 먼저 찍고 그 다음 인도적인 차원에서 사람을 구합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사진보다 생명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사진가, 사진기자들의 불문율입니다. 물론, 사진기자나 사진가마다 판단은 다르겠죠. 
그러나 찍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들이 밀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진기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아버지의 폭력으로 사망한 후  백골 시신이 되어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여중생 뉴스 보도를 보는데 그 옆에서 계속 카메라로 촬영하는 카메라 기자를 봤습니다. 순간 X새끼라는 욕이 나오더군요.  그게 국민의 볼 권리일까요?  

분명히 기록해야 만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 사진으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확신이 선다면 사진을 먼저 찍는 것 적극 지지합니다. 그런데 그런 확신도 없으면서 자극적인 영상이나 사진을 담은 사진기자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이런 행동은 남의 고통에 낄낄 거리는 공감 능력이 사라진 소시오패스와 다를 게 없습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2001년 루마니아의 한 가난한 마을 촬영기입니다. 미스티 카슬러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닌 여행 중간에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본 한 술취한 술주정뱅이 아빠가 3살 5살된 딸 아이를 벽에 부딪히면서 이런 아이들의 고통과 가난을 촬영하라고 소리 소리 지릅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그 건물을 빠져 나옵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의 무심한 카메라 셔터질 때문에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의 분노가 잘 들어나 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추억 돋는다면서 80년대 풍경이라고 히히덕 거리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 사람들이 간과한 것은 그 동네는 민속촌도 7080 테마파크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동네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생활 공간을 무슨 테마 파크 구경하는 듯하는 모습은 불쾌하고 불결한 행동입니다. 



감동스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소녀는 삼촌으로부터 에이즈까지 옮겨지게 됩니다. 여기에 잘못된 치료로 병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영국 사진가는 이 소녀를 만나 에이즈의 심각성을 알리는 사진 촬영을 하려고 했습니다. 소녀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하염 없이 흐르는 눈물이 흐르던 중 지역 자선 단체 소속 소녀들이 방에 들어와서 합창을 하기 시작합니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그 순간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지 않고 그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광경을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만약 사진을 촬영했다고 해도 그 슬픔이 사진에 오롯하게 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진가의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정말 너무 슬프거나 너무 아프면 그걸 사진으로 담을 힘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웃기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한 사진가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타고 온 리무진을 발견하고 리무진 근처에서 두 유명인 부부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미터 앞에 있는 톰 크루즈를 보게 되었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려고 하자

"그러시면 안됩니다"라는 톰 크루즈의 말에 사진가는 마치 사이언톨로지교의 주술이 걸린 듯 이런 대답을 합니다
"맞아요. 그러면 안 되죠"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립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수 많은 사진을 촬영하지 못한 순간들을 담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눈길을 끄는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별 시덥잖은 내용도 많습니다. 여기에 사진가들이라서 글을 못 쓰는 건지 아니면 번역이 허투루인지 글이 잘 읽지지 않는 내용도 많네요. 그래서 추천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무척 좋네요. 한국의 사진기자나 사진가 또는 사진작가들에게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결정적 순간을 담은 책이 나와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사진을 촬영해서는 안되는 곳에서 한국의 사진기자들은 촬영을 합니다. 클릭을 유도하는 저질 인터넷 기사를 쓰는 기자들만 기레기가 아닙니다. 장례식장에서 하객 사진 찍는 사진기자들도 기레기이죠. 좋은 사진기자가 되려면 찍어야 할 때와 안 찍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는 카메라를 드는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그넘 세대 이후의 보도사진가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흔히 '포기한 사진'의 범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성을 택할 것인가와 사진을 촬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빚어지는 선택의 결과로...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서문 중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딜레마는 각자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적어도 기레기나 악덕 사진가가 되지 않으려면 찍지 말아야 하는 상황을 항상 가슴에 품고 찍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다른 사진가들의 사진을 촬영하지 못한 또는 안 한 순간들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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