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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by 썬도그 201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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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대 받는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특히, 자기 자식이라고 사정없이 폭력을 가하는 가정 내 폭력은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사라진 곳에서 가정 폭력은 더 빈번하고 커진다

최근 아동 폭력으로 사망한 사고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합니다. 인천 초등학생이 부모의 구타와 음식을 주지 않아서 16kg 몸으로 화장실 쇠창살을 통해서 탈출한 사건은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장기 결석한 초등학생을 전수 조사한 교육 당국은 부천에서 아들을 구타해서 사망하게 한 사건도 발견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는 가출한 여중생이 아버지로부터 5시간 동안 구타를 당하다 사망한 사건으로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에 이어서 이제는 가정 폭력까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여러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라네요. 군대가면 군대 안에서의 폭력도 배우겠죠. 

가정 폭력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저 어렸을때도 밤마다 옆집에서 부부 싸움 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부부 싸움이 날 때 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는 옆집에 들어가서 싸움을 말리곤 했습니다. 반대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면 옆집 아저씨가 말리곤 하셨죠. 

가정내 폭력은 이렇게 옆집이 적극 개입을 하면서 크게 번지지 않고 쉽게 아물곤 했습니다. 이 가정 폭력으로 인해 울고 있는 아이들은 다른 집에 잠시 머물면서 피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개딸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덕선이나 성보라를 팼다면 주인집인 성균과 치타 여사가 내려와서 적극 말렸을 것입니다. 

이웃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알던 1980년대는 골목 문화라는 인정과 교류가 흐르는 강이 있었습니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집은 우리 집의 확장이었습니다. 따라서, 형이 없는 집 아이는 옆집 형을 친형처럼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촘촘한 마을에서는 어떤 결손이 생겨도 그걸 잘 매꿀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급한 일이 생겨서 두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갈 때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갔습니다.  실제로 제가 부모님이 안계시는 동안 몇 일 동안 옆집에 동생들과 함께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을 잤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골목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웃집과의 교류는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옆 집에서 큰 소리가 나도 무관심합니다. 한 번도 교류가 없으니 큰 관심도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특히, 가정내 폭력 중 가장 심각한 아동 폭력은 아이들이 큰 소리도 내지 못하기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기 힘듭니다. 80년대에도 가정 내 아동 학대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나 엄마가 때렸다는 것을 이웃집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타이르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좋은 방향으로 풀어주었습니다. 

또한, 폭력을 가하는 부모도 이웃집에게 소문이 날까 봐 심한 아동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눈치보기가 촘촘하던 시절이 1980년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을 의식하는 눈치보기가 싹 사라졌습니다. 마을 공동체도 사라졌고 이웃의 눈길을 의식하거나 눈치를 보는 외부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삶은 커지고 공동체의 삶은 축소 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의 삶이 붕괴된 자리에서 아동폭력은 더욱 빈번해지고  폭력의 강도도 커졌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예전엔 학교에 누가 등교하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했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기 전에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에게 왜 등교하지 않았는지 알아보라고 지시를 하죠. 그래도 알아오지 못하면 학교 하교가 끝나고 집까지 찾아가는 가정 방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학생이 장기 결석을 하면 학교 선생님이 적극 나섰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인천 초등생 탈출 사건도 그렇고 부천 초등생 살해 사건도 여중생 구타 사망 사건에서 학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메뉴얼에 따라서 전화와 서면 통보를 하고 자기 할 일 다했다고 방관을 했습니다. 

물론, 일부 교사의 행동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저도 교사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게 3건의 아동 폭력 사건에 단 한 번도 학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소리가 없나요. 

원천적인 문제는 교사에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한다고 해도 부모가 거짓말을 해도 실종 신고를 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는 법으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을 해야 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도시락 싸서 점심을 먹던 80년대에는 점심 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도시락 속의 반찬이 많아야 2~3개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과 모여서 먹는 것이 다양한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습니다. 

경제학적으로도 이런 것을 위험 분산이라고 할 수 있죠. 마찬가지입니다. 네트워크가 촘촘한 사회는 한 사람이 큰 상처를 받아도 그 피해를 한 마을이 그 상처를 보듬어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품어줄 수 있었습니다. 예전 마을 공동체가 그랬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졸부인 치타 여사가 덕선이 엄마 몰래 덕선이 수학여행비 챙겨주는 장면이 바로 마을 공동체의 좋은 점이었죠. 

우리가 인터넷에 악플을 달고 못된 말을 쓰는 이유가 뭘까요? 인터넷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이기에 평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못된 짓도 못된 말을 많이하죠. 그러나 마을은 아는 사람들의 연속이기에 하나의 평판이 존재합니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옆집 부끄러우서 마을 사람들 보기 민망해서 못된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못난 짓을 하면 바로 소문이 쫙 퍼지니까요.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익명 게시판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을 공동체도 학교 공동체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익명 게시판에는 악플이 가득 가득 합니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 한국이라는 마을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능력과 시스템이 존재할까요? 내 새끼만 잘 크길 바라는 내새끼리즘만 가득한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내가 낳지만 내 아이들은 마을 속에서 사회 속에서 커갑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려면 그 사회가 깨끗해야 합니다. 과연 한국은 깨끗한 어른들이 많은 마을일까요? 이 질문에 전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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