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잡으려면 늑대를 풀어야 한다는 식의 영화는 꽤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양들의 침묵>입니다. 사건이 잘 풀리지 않자 짐승 냄새를 잘 맡는 감옥이라는 우리에 갇힌 살인마의 조언을 듣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애니 <사이코패스>가 범죄지수가 높은 전직 형사들을 사냥개처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찰서에 가면 누가 형사인지 누가 범죄인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하나 보네요. 폭력에 노출된 두 집단은 그렇게 닮아가나 봅니다.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양들의 침묵>이나 <사이코패스>의 이미지가 많이 보입니다. 다만, 이 영화가 다른 점은 좀 더 음습하다는 점이 다릅니다. 특히, 전체적인 주제나 스토리는 일본 애니 <사이코패스>와 많은 부분이 유사합니다
FBI 요원의 마약 거물 처리 작전 체험기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분)은 FBI 아동유괴 전담팀 팀장입니다. 스와트팀을 이끌고 현장에서 뛰는 현장 요원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건물을 케이트가 이끄는 스와트팀이 급습해서 일망타진합니다. 그런데 그 급습한 곳에서 수많은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큰 폭발이 나서 동료 2명이 부비트랩에 의해 희생됩니다.
동료의 죽음에 힘들어하고 있는 케이트는 이 살인 사건을 지휘한 것이 멕시코의 마약 두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침 국방부 고문이라고 하는 사람이 케이트를 지목하면서 잔챙이들이 아닌 모든 살인사건을 지시하는 멕시코 마약 두목을 처단하는 작전에 케이트의 합류를 권유합니다. 동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케이트는 CIA 작전에 투입되게 됩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잔챙이들이 아닌 두목을 처단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고 그 빠른 길에 케이트가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 작전을 이끄는 2명의 지휘관이 있습니다. 한 명은 자신을 국방부 고문이라고 말한 맷(조쉬 브롤린 분)과 멕시코 검사인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분)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작전을 진두지휘하는데 이상하게도 케이트에게 작전의 전체적인 그림과 케이트가 할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따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전에 적극적인 개입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에 케이트는 동료와 함께 상관에게 하소연합니다. 그런 케이트의 불만은 계속 쌓여만 가고 나중에 왜 케이트에게 자세한 작전을 알려주지 않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걸 알게 된 케이트는 불같이 화를 내지만 자신의 역할을 알면서도 끝까지 작전에 참여합니다.
액션은 많지 않으나 시종일관 음습함이 가득한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이 영화는 액션이 아주 많은 영화는 아닙니다. 도로에서의 총격전이 있고 영화 초반에 진입 장면 그리고 영화 후반의 동굴 침투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총격 액션을 많이 담지 않습니다. 규모도 소규모라서 액션의 쾌감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어두운 곳에서 라이트 비전이나 스타 비전 같은 야간 투시경 화면을 적극 활용해서 긴장감을 끌어 올립니다. 또한, 무인 정찰기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마약 왕 체포 작전의 긴박감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시카리오라는 영화는 음악으로 말하면 단조의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한 냄새가 잔뜩 퍼져 있습니다. 이 우울한 냄새는 영화 스토리가 피우는 것도 있지만, 음악이 피워내는 것도 있습니다. 마치 저주의 굿에서 무당이 내는 수많은 날카로운 소리가 영화 내내 담깁니다. 이 음습한 음악 때문에 별 총격전도 별것도 아닌 장면에서도 움츠러들고 으스스하게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연출을 아주 싫어합니다. 긴장감만 유발하다가 마는 식의 연출을 싫어합니다만 이 영화가 공포 스릴러 영화가 아닌 마약 사범 체포 작전의 긴장감을 위한 연출이라는 점에서 크게 쓴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과장된 음악 때문에 시종일관 인위적인 불쾌감을 담아낸 모습은 아쉽네요
악마를 잡으려면 악마가 되어야 한다
멕시코 마약 왕을 제거하기 위해 알레한드로 멕시코 검사와 맷은 불법도 서슴지 않게 저지릅니다. 마약왕의 끄나풀을 멕시코에서 잡아서 미국 국경을 넘다가 도로에서 마약 갱단을 사살합니다. 이를 지켜본 케이트는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합법의 선 안에서 해야지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면 되느냐고 항의를 하죠
케이트는 범죄자들처럼 경찰도 폭력을 사용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합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법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맷과 알레한드로에게는 케이트의 이런 주장이 현장과 현실을 모르는 애송이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법 따지가다는 거악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여줍니다.
케이트 또한, 맷과 알레한드로를 비판하지만,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마약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감독 '드니 블뇌브'의 전작 '프리즈너스'와 비슷합니다. 거대한 악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거나 법보다 강한 악일 때는 법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거대한 악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자세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악을 깨려면 악을 정면 돌파해서 우두머리를 제거해야 함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킵니다. 어떻게 보면 맷과 알레한드로는 베테랑이고 케이트는 샌님이자 초짜이자 세상 물정 모르는 경찰로 묘사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럼에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어설픈 감동이나 고리타분한 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핵심이자 세상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을 만든 어른들을 꾸짖는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방금 뉴스를 보니 탈옥했던 멕시코 마약왕이 잡혔다는 뉴스가 보이네요. 어떻게 탈옥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멕시코 같이 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간수를 매수해서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멕시코인들이 보면 화가날 수도 있습니다. 멕시코를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는 마약 사건도 많고 갱단도 많습니다. 여기에 납치 사건도 많습니다. 치안이 아주 엉망인데 놀라운 것은 경찰도 마약 조직을 돕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경찰관이 경찰차에 마약을 싣고 운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멕시코 마약 조직은 수많은 사람을 마약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매수합니다. 이 마약 네트워크는 무척 촘촘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안레한드로 멕시코 검사가 케이트에게 멕시코 경찰을 유심히 보라고 유일한 조언을 해줍니다. 멕시코의 이런 부정부패는 아이들의 동심을 크게 훼손시킵니다. 아버지와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유일한 소망이지만 그 축구 한번 못해주는 비정한 어른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축구 약속을 받은 아이는 기뻐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축구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꼬마 아이가 엄마가 보는 앞에서 공을 차는데 머리 위로 기관총 소리가 지나갑니다. 축구공 소리보다 기관총 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멕시코 국경지대의 잔혹함을 담담하게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말합니다. 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며 자라겠냐고 꾸짖습니다. 축구같은 정정당당함이 생명인 스포츠 경기와 달리 부정한 행동이 만연한 어른들의 세상을 감독은 비난합니다. 한 기자가 탈레반 마을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습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는 말합니다. "탈레반이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그 어른에게서 꿈을 찾습니다. 마을 어른이 모두 탈레반인 마을에서 아이들의 꿈은 탈레반입니다. 멕시코 같이 마약 갱단과의 전투가 계속 일어나는 동네에서 아이들은 작은 악마로 키워집니다.
여기에 내 새끼만 끔찍하게 생각하는 마약왕이나 부패한 경찰들은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이지만 그들이 행하는 행동은 다른 가족과 다른 아버지 어머니 또는 그 자식들을 파괴시킵니다. 내 새끼만큼 남의 새끼도 사랑해야 세상이 바른 세상이자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내 가족 이외에는 다 적이고 등쳐 먹을 대상으로 느낍니다. 이런 멕시코의 잔혹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잠시 한국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리고 절로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지네요. 한국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멕시코 사회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보이네요. 멕시코가 폭력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한국은 사기로 무장된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악의 일상성도 잘 담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돈 잘 벌어오는 아버지로 존경을 받지만 그 돈이 썩은 돈임을 자식들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스베이더의 포스를 가진 베니치오 델 토르
제가 영화 리뷰를 할 때 영화 배우를 잘 거론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감독 놀음이라고 생각해서 영화의 메시지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가끔 영화 배우를 소개하는데 그건 바로 영화 배우가 엄청난 역량을 보여줄 때만 소개합니다.
이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는 조연이지만 주연처럼 느껴지는 대단한 배우가 나옵니다. 바로 '베니치오 델 토르'입니다.
이 배우 보자마자 악당이 아닐까 했는데 멕시코 검사로 나옵니다. 배우는 얼굴이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하죠. 얼굴 보세요. 그냥 악당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얼굴만 봐도 오금이 떨릴 정도로 무시무시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강렬한 포스를 보여줍니다. 마치 다스베이더를 연상 케하는 초강력 악의 기운이 가득한 배우입니다.
이런 배우 만나기 쉽지 않은데 영화 전체를 이 배우 혼자 다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이 '델 토르'를 받아주는 배우가 '에밀리 블런트'입니다. 에밀리 블런트는 쉬운 연기가 아님에도 영화 끝까지 자신의 선을 유지합니다. 악마가 악마를 죽이는 최전선에서 상식으로 무장해서 이 잔혹한 세상을 직접 눈으로 목도합니다.
두 배우의 캐미가 꽤 좋네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이 두 배우만 봐도 돈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상 평화가 만들어지는 추악한 이면을 담은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시카리오는 영화 마지막에 세상 평화가 조율되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평화는 지켜지는 것이 아닌 조율되는 것이라고 낮은 귓속말로 관객에게 속삭입니다. 평화는 질서라는 룰이 있을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면서 그 룰을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과 잔혹한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그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악마를 닮은 평화 조율자가 투입됩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성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잔혹산 세상을 잔혹한 장면은 거의 없지만 잔혹 그 자체로 담았습니다. 에너지가 무척 강한 영화로 범죄 영화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암살자의 도시가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 : ★★★☆
40자평 : 액션은 적지만 잔혹함은 가득하다. 왜냐하면 잔혹한 세상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