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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고흐 죽음의 엑셀레이터를 밟다.(고흐3편)

by 썬도그 2007.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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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9 - [미술작품] - 고흐와 고갱 색이 다른 두 천재가 만나다
2007/09/09 - [미술작품] - 빈센트 반 고흐 그 우울한 무채색 하늘의 시기

위의 두 글에 이어서  고흐가 생의 마지막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고갱은 고흐의 귓불을 자른 사건을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동생에게 티끌의
부담도 주기 싫었던 고흐로써는 고갱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합니다.

테오는 고흐를 살피고 테오가 고갱과 함께 파리로 돌아간 후 테오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고갱에게 편지를
몇 통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고요.  고갱은 고흐를 미워했을지 모르겠지만 고흐는 고갱을 그래도 친구로
여기고 죽기 전까지 서신을 보냅니다.

나중엔 고갱도 고흐의 그런 모습에 마음을 열지만요


고흐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갔다 나온 후  다시 붓을 잡습니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하지만 미치광이로 낙인찍힌 동네 사람들을 그를 감금시켜 버립니다.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어야 했던 고흐
그런 사정을 동생에게 말합니다.  간질병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가 간질병을 앓았을 때 했던 행동들을
고흐는 기억 못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똑똑히 봤습니다.

탕기 영감의 초상
탕기 영감의 초상

고흐의 화풍도 아를에서 많이 변합니다.  파리에서의 짧은 인상파화가들과의 교류가 그에게 화풍의 큰 변화를
가져오죠. 어둡던 고흐의 그림에 밝은 색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쇠라의 점묘화법도 그의 그림에서
눈에 비칩니다. 그리고 일본판화의 강력한 원색 또한 고흐의 동경이 대상이 됩니다.
태양의 화가라는 것은 그의 그림에 노란색 아니 황금색이 넘실거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흐는 황금색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해바라기 연작을 보면 그 강렬한 황금색이 나옵니다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3종류의 그림이 있습니다. 4송이, 10송이, 12송이 해바라기 그림이 그것이죠.

고흐는 아를사람들의 원성을 못 이겨  생레이미로 요양을 갑니다. 그곳에서 병을 치료받습니다.
또한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한 마음과 항상 생활비를 동생에게 의존해야 했던 형으로써의 죄책감이
그를 더 옥죄입니다. 하지만 동생테오는 그런 형을 오히려 더 못마땅해합니다.   형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생 테오 그림 한점 팔리지 않지만 형의 그림이 발전하고 있다고  힘을
넣어주던 테오..  그런 동생이 있었기에 고흐는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갑니다.

남들이 지나갔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색을 찾으려고 그는 자신의 색 찾기에 몰두합니다

올리브 나무와 노란 태양이 있는 하늘
올리브 나무와 노란 태양이 있는 하늘

그는 생레이미 요양원에서 나와 동생의 권유로  세잔의 친구이기도 한 닥터 가세박사의 집으로 이사 갑니다.
닥터 가셰는  정신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입니다. 그는  고흐의 그림을 알아봅니다

가셰박사의 초상
가셰박사의 초상

몇 년 전 일본의 제지회사 회장에게 팔린 이 그림은 그 팔릴당시 최고가액으로 판매된 그림입니다.

그러다 1년 만에 똑같은 날에  다시 간질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간질병이 있을 당시 고흐는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의 물감을 짜서 먹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고  테오마저 직장을 잃게 될 것 같은 불안감과   테오와 조안나의 결혼소식은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고흐에게는 동생네 가정에 자신이  짐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아들 이름에  형의 이름을 붙여줍니다.  

고흐의 그림이 20인 전에서 첫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고흐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붉은 포도밭을 그린 유화가 처음으로 팔립니다.  사람들은 고흐그림이 딱 한 점만 팔렸다고 아는데
사실은 유화 중에서만 한 점만 팔렸고 수채화는 몇 점 팔린 적이 있었습니다.

양귀비가 있는 들판
양귀비가 있는 들판
꽃이 활짝핀 아몬드 나무
꽃이 활짝핀 아몬드 나무

가셰박사가 있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에 도착한 고흐는 가셰박사의 정신적인 도움과 치료에 점점 병이
나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발작은 더 자주 일어나게 되고  동생 테오와 돈문제로 심하게 다투기도
합니다. 테오도 가정이 있는 몸이니 그전보다 돈이 더 필요했을 듯합니다.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의 그림 중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주 나오는 이유도
그 길다라게 벗 지게 뻗어 올라간 나무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듯합니다.

고흐는 돈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병에 대한 한탄을  편지로 테오에게 자주 알립니다.
고흐는 그 당시 영국에서  화가집단을 만든 라파엘전파(예전 라파엘시대의 그림으로 돌아가자는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모임)를 본보기로 들며  인상파화가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림소유권을 공동으로 두어
한 화가의 그림이 팔리면 그 수익을 같이 나눠 가지게 하는 것을 꿈꿉니다.   그러면 화가들이 돈에 찌들지
않고 어느 정도 수익을 받고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이상적인 꿈을 꾸지만  프랑스는 영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도 수포로 돌아가던 어느 날 고흐는  권총자살을 합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유작입니다.  동생 테오는 충격을 먹게 되고  그 또한 병에 걸려 6개월 만에
형을 따라갑니다.   처음에 두 형제의 무덤은 다른 곳에 있다가  나중에 이장하여 고흐의 옆자리에 안치했습니다.

역사상 이런 끈끈한 형제애가 있었을까요?

죽을 때까지 고흐는 유명한 화가축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테오의 아내 조안나와 그의 아들 고흐는 
고흐의 그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고흐가 죽고 15년이 지날 때쯤 고흐의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세계 최고의 화가의 반열에 오릅니다.

만약 조안나와  테오의 아들 고흐가 없었다면 고흐의 그림은  이리저리 헐값에 팔려서 어느 이발소의 그림으로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고흐의 후손들은 지금 네덜란드에  고흐 박물관을 만들어서  고흐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안나와 조카 고흐가  그 그림을 다 팔아버렸다면 고흐 박물관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흐가 죽기 전에 그림 몇 점만 팔 수 있었다면  고흐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빠르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동생 테오에 대한 미안함이  그에게 죽음으로
가는 액셀을 밟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프로방스엔  고흐가 황금으로 묘사했던 햇살들이 내리쬡니다.  고흐도 저 하늘 위에서
그 빛을 감상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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