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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스파이 브릿지. 이념의 시대 신념으로 세상을 구원한 한 변호사의 이야기

by 썬도그 201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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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도착하니 온통 '검은 사제들'만 걸려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배급사와 영화관이 정해준 영화만 보는 영화 노예들입니다. '검은 사제들' 본 분들이 평은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전 유일하게 공포물을 안 봅니다. 가장 싫어하는 감정인 공포를 왜 돈 내고 느껴야 할까요? 그래서 전 놀이동산가도 놀이기구 잘 타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령물은 더더욱 안 봅니다. '검은 사제들'을 지우니 볼 만한 영화가 거의 없네요. 그나마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입니다. 창피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냉전이 한 창이던 50년 대 후반 소련과 미국이 스파이 맞교환을 한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정보는 없었습니다.

얼마나 영화에 대한 관심도 정보도 없었는지 매표소에서 영화 제목을 몰라서 직원이 입으로 불러주는 영화 속에서 골랐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던 것은 깨고 부수는 액션 영화를 원했는데 드라마라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를 이유는 오로지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편 아니면 다 빨갱인 냉전 시대에 일어난 놀라운 실화를 다룬 영화 '스파이 브릿지'

1950년대는 소련과 미국이 세상을 2등 분 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우방과 소련 우방국으로 크게 나뉘어지고 이도 저도 아닌 제3세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구 전체를 이등분으로 나눈 냉전시대에는 우리편 아니면 다 적이였습니다. 이런 냉혹한 냉전은 서로롤 감시하기 위해서 스파이를 보냅니다. 

1957년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분)이 미국 CIA에 체포됩니다. 뭐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사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재판 결과는 다 나와 있습니다. 소련 스파이를 변호할  요식 행위를 할 변호사가 필요한데 그 변호사를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 분)에게 맡깁니다. 

보험 전문 변호사인 도노반은 욕 먹을 것을 알면서도 변호를 맡습니다. 그런데 이 도노반은 그냥  소련 스파이인 아벨을 대충 변호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을 해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그 공정한 룰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열혈 변호사입니다.


재판관이나 정부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은 아벨의 사형 선고만을 기다렸습니다. 빨갱이는 죽여야 맛이라고 생각하는 집단 광기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도노반의 뛰어난 활약과 영민한 제안으로 아벨이 사형이 아닌  30년 형으로 판결이 납니다. 이에 도노반은 항소 할 것이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발언을 합니다.

그렇게 도노반은 미국을 배신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의 가족은 위협을 받게 되죠. 이렇게 영화는 이념의 시대인 냉전 시대에 신념을 가진 두 사나이의 우정으로 그립니다. 


그렇게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살던 도노반 입장에서  희소식이 날아옵니다. 미국이 7만 피트까지 올라가는 고고도 정찰기인 U2를 개발한 후 소련 상공을 고성능 카메라를 달고 정찰을 하다가 소련이 쏜 지대공 미사일에 U2기가 추락합니다. 

추락한 미군 조종사는 자결하지 않소 소련 TV에 나와서 미국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도구가 됩니다. 미국민들은 자결하지 않은 이 미군 조종사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런데 소련이 은근하게 아벨과 미군 조종사 파워스를 맞교환 하자는 제안이 들어옵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협상 전략의 재미로 이어집니다.

영화 전반은 아벨을 변호하는 국가의 이익 보다 변호사의 소명의식과 신념을 다룬다면 영화 후반은 베를린에서 아벨과 파워스의 협상 과정을 흥미롭게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 두 사람의 맞교환이면 재미가 없지만 동독에서 스파이 혐의로 잡혀 있는 예일대 출신의 25살 미국 대학생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서 복잡해 집니다.


영화 후반은 도노반의 영민한 머리로 1 = 1 교환이 아닌 2 = 1 교환을 이끄는 과정의 스릴과 영특한 머리로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도노반의 대활약이 펼쳐집니다. 



21세기에 매카시 열풍이 분 한반도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스파이 브릿지'

아이들의 세계관은 이분법의 세상입니다. 아빠! 저 사람 우리편이야? 이런 질문을 잘 하죠. 아이들은 세상을 내편과 저편으로 나눠서 보길 좋아합니다. 왜냐구요? 그게 세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편리하거든요. 

아빠! 저 사람 우리편이야? 라고 물으면 아빠가 우리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야라고 하면 아이는 갸우뚱하죠. 갸우뚱이 정답입니다. 세상이 그리 쉽게 이해되는 곳이 아닌데요. 그런데 냉전 시대는 그게 가능했습니다.

아빠! 저 사람 우리편이야? 라고 물으면 응! 우리편이야. 또는 빨갱이야 아주 나쁜 놈이지라고 하면 아이는 세상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합니다. 냉전 시대는 내편 아니면 나쁜놈이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빨갱이 색출 작업을 하기 시작한 미국은 50년대에 채플린 등의 사회주의 성향 또는 그런 기질이 있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을 색출해서 사상 검증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핵폭발 장면을 시청하고 요오드가 방사능 제거나 방지에 좋다고 배우고 방공호를 파고 핵이 터졌을 때의 행동 강령을 배웠습니다. 이런 미국의 50년대의 살벌한 풍경은 1970,80년대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저 어렸을 때 북한에 대한 공포는 엄청났습니다. "때려잡자 공산당"은 아이들의 돌림 노래가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텍스트만 존재하고 얼굴은 없었습니다. 김일성의 사진 대신 그림으로 보여주던 시절이었죠. 학교에서는 핵 전쟁 대비 요령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냉전 시대를 한국은 지나왔고 남북한 화해 무드가 열리나 싶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이후에는 세계 유일의 냉전 국가이자 분단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냉전이 더 심해져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편이 아니면 다 빨갱이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하는 국민은 다 빨갱이라고 하는 소리를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서슴찮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답답스러운 냉전의 모습을 영화 '스파이 브릿지'는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미국의 50~70년대 풍경을 2015년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느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서글프네요. 모든 사람들이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피아 식별의 시대에 유일하게 적군이지만 적군이기 전에 사람이라면서 변호를 한 도노반의 강한 신념은 이념의 장벽을 서서히 녹입니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도노반 같이 강직한 신념이 세상 변화의 물꼬를 트기도 합니다. 영화는 아벨이라는 신념과 도노반의 신념이 만나서 우정의 강을 흐르게 합니다. 비록 적군이지만 그건 서로 입장의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우리가 전쟁에서 포로를 잡으면 죽이지 않잖아요. 그게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냉전이라는 짐승의 시대에 유일하게 깨어 있는 지성체이자 이성이 도노반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짐승의 소리들이 참으로 역하게 느껴집니다. 단언컨데 제가 죽기 전에 북한과의 통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나 안 나길 바랄 뿐이죠. 


역시 스필버그. 그러나 파괴력은 약하다

냉전 시대의 숨은 영웅인 도노반 변호사를 조명하는 모습은 스필버그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서 유태인의 수많은 목숨을 살려준 쉰들러의 거룩함을 담았다면 영화 '스카이 브릿지'는 모두가 예를 할 때 혼자 아니오를 외쳤던 도노반 변호사에게 조명을 비춥니다.

어떻게 보면 '쉰들러 리스트'와 링크가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드라마라서 액션 장면의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좀 지루한 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상영 시간이 2시간 20분 정도나 됩니다. 옆에서 보던 어떤 커플은 이 영화가 액션 영화인 줄 알고 보러 왔다가 드라마만 나오기에 지루해 하더군요. 더구나 냉전 시대를 겪지 않고 경험하지 않고 최근 한국의 매카시 열풍(빨갱이 열풍)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이 영화 아주 지루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력 추천하기 힘듭니다. 특히 젊은 분들은 이 영화가 그냥 협상 9단의 뛰어난 협상력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지나온 30,40대 후반 분들에게 이 영화는 서슬퍼런 냉전 시대의 광끼와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면 여의도가 물에 잠기고 서울이 물에 잠긴다는 퍼포먼스를 공영방송에서 해주던 그 새빨간 거짓말이 진실의 옷을 입고 국민을 선동하던 그 코미디 같은 세상을 지나온 분들에게 영화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 시대의 어리석음과 광끼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이념의 시대를 허문 신념

도노반 변호사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사살 당하는 동독 청년들을 기차 안에서 봅니다. 이념의 장벽을 넘으려던 청년들의 죽음을 목도한 도노반. 그는 이 거대한 이념의 장벽을 신념으로 뛰어넘습니다. 

아벨과 미군 장교와의 맞교환만 하면 끝나는 일을 25살의 청년까지 협상에 끌어 드립니다. 이념 시대의 주고 받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계산적인 협상보다 사람의 목숨은 계산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미국 대학생의 목숨을 협상 테이블레 올립니다. 도노반이 목숨을 걸면서 미국 대학생의 목숨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것은 그의 신념 때문입니다. 

이념과 국가의 이익이라는 세상의 최상의 잣대에 정면 도전합니다. 국익보다 사람의 인권이며 목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도노반. 영화를 보면서 자꾸 한국 사회의 이분법 적이고 국익 우선주의에 심한 환멸이 느껴지네요. 영화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사는 저에게 있어 영화 '스파이 브릿지'는 블랙 코미디였습니다. 아직도 외나무 다리에 서서 서로 주고 받는 화해가 아닌 전쟁 운운하면서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한민족의 광끼가 눈에 들어옵니다.

도노반 변호사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었다면 여론의 집단 린치를 받고 국민 쌍놈이 되었겠죠. 영화는 이념에 맞서서 신념으로 세상을 구원한 도노반의 인간애를 가득 그려냅니다. 전 참 재미있게 봤지만 적극 추천하기는 힘드네요.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많이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법과 질서는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도노반 변호사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지시를 하고 정작 본인은 지키지 않는 어느 나라의 한 대통령이 오버랩되네요. 
열차 안에서 담을 넘다가 총을 맞고 죽는 동독 청년과 이웃집 담벼락을 넘어 다니는 미국의 자유. 우리는 어떤 모습을 창 밖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40자평 : 이념의 시대에 국익 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고 외친 인권 변호사의 활약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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