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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특종:량첸살인기, 한국 언론의 병폐를 코미디와 스릴을 섞어서 잘 빚어낸 수작

by 썬도그 201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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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뭄이 전국을 노랗게도 아닌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로수들은 낙엽이 아닌 말라 죽어가고 있네요. 이런 가뭄은 영화관에도 찾아왔습니다. 매주 영화 1편 씩은 꼭 보는데 지난 주는 정말 볼 영화가 없어서 건너 뛰었습니다. 이번 주도 딱히 눈에 들어오는 영화들은 없네요. 그럼에도 한 편은 보고자 의지를 가지고 영화관에 도착해서 쭉 둘러 봤습니다. 마션은 이미 봤고 더 폰은 별로 땡기지 않아서 입소문이 그래도 좀 더 좋은 '특종 : 량첸살인기'를 골랐습니다. 물론, 이 영화도 큰 기대는 되지 않았고 그냥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습니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

허무혁(조정석 분)은 흔한 케이블 방송사의 열혈 기자입니다. 다른 언론 기자들과 특종을 따기 위해 심한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이 보도한 기업의 비리 사건에 심기가 불편해진 기업 광고주가 광고를 다 빼버립니다. 이에 방송사는 허무혁에게 정직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졸지에 해고 위기에 놓인 허무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임신한 만삭의 아내를 집 앞에서 기다리지만 아내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과 밖에서 오갈 곳이 없는 허무혁은 정직 전에 연쇄살인범에 관한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이 생각나서 제보자의 주소지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선배와 함께 술 한잔을 걸치고 제보자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연쇄살인 현장에서 목격자들이 봤다는 빨간 승용차를 보게 됩니다.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제보자를 만난 허무혁은 제보자가 용의자로 지목한 집에 몰래 들어가게 됩니다. 방에는 온통 살인에 관한 신문 스크랩과 살인 한 후에 쓴 듯한 일기들이 보입니다. 일기의 한 부분을 찢은 후에 떨린 가슴을 부여잡고 112에 전화를 걸어서 익명으로 신고를 합니다.

집에 돌아온 허무혁은 자신이 가져온 용의자의 살인 일기 한 조각과 경찰들의 이동을 넘겨 집어서 연쇄살인범 기사를 써서 자신이 몸담았던 CNBS 케이블 방송사에 보냅니다. 이 기사를 보고 받은 백 국장(이미숙 분)은 오전 뉴스 톱뉴스로 이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 특종 한 방에 다시 복직이 된 허무혁은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그렇게 아침 방송에 연쇄 살인범으로 추측되는 용의자가 쓴 살인일기 일부를 공개하게 되고 CNBS는 시청률 대박이 터집니다. 다음날 허무혁은 경찰의 움직임이 너무 조용해서 어젯밤에 찾아간 용의자의 집에 다시 찾아가게 된 후에 자신이 헛다리를 집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허무혁이 들고 나온 그 용의자가 쓴 살인일기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유명 작가가 쓴 '량첸살인기'의 일부이고 그 용의자는 연극 배우였습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한국 언론의 추악스러움과 병폐를 주요 소재로 쓴 웃음을 계속 자아내게 합니다. 


허무혁이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은 이유가 아주 가관입니다. 광고주 심기를 건드리는 기업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고 해당 기자를 정직 처분을 내리는 모습은 현재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광고주라는 물주의 눈치를 살살보는 언론의 생리를 블랙코미디 형태로 담습니다. 

허무혁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이 만든 오보임을 인지한 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사직서를 쓰고 언론사를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백 국장과 문 이사는 후속 보도를 내라면서 돈을 찔러줍니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떠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운 허무혁은 자신의 오보를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기사들이 정말 모든 것이 진실일까요? 대부분은 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이 진실로 포장된 채 유통되는 기사도 많을 것입니다. 가장 흔한 것이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진실을 재편집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거짓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의 의견을 전체의 의견으로 포장하는 행태가 가장 흔하죠. 허무혁은 자신의 거짓말을 세상에 밝히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고 언론이라는 백그라운드를 등에 업고 진실을 캐내려는 경찰과 맞짱을 듭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경찰들이 살인범을 제보한 제보자를 내놓으라고 하자 문이사(김의성 분)은 경찰과 거래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렇게 경찰과 언론의 대립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두 진실을 추구하고 밝히는 두 권력집단의 이전투구를 극명하고 간단한 도식으로 잘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려는 허무혁은 백 부장에게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하지만 백부장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라는 말로 진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사람들이 믿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청률 지상주의에 찌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언론의 시청률 지상주의는 영화 '나이트크롤러'와 비슷합니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 '나이트크롤러'가 더 빼어난 영화지만 '특종:량첸살인기'는 특유의 재기 어린 방법으로 코미디와 스릴러를 아주 잘 비벼 놓습니다. 한 편으로는 '더 테러 라이브'의 코믹 버전 같기도 하네요


영화는 후반에 가면 진짜 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코미디를 줄이고 스릴을 더 키웁니다. 또한, 입장이 바뀐 경찰의 궁색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입장이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진실 보다는 '가오'가 중요한 현세태를 풍자합니다. 얼마 전에 신입 여경이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거짓말 논란을 받았던 경찰들의 모습이 이 영화에도 담깁니다. 

언론의 생태와 진실이 어떻게 재조립되고 조작되는 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계속 펼쳐집니다. 기레기라는 쓰레기 언론을 무척 싫어하는 분들은 이 영화 꽤 질 좋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를 감히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아내 수진(이하나 분)에 대한 스토리는 싹 도려내는 것이 영화에 집중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아내 이야기는 잘 녹아들어가지 않네요


약간 힘에 부치는 듯한 주연과 든든한 조연의 활약

조정석 좋아합니다. 납득이 아주 좋아합니다. 다만, 조정석이 영화의 주연으로 하기에는 아직은 티켓파워가 약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연기를 못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난감해하는 표정들은 조정석의 특기일 만큼 연기 아주 잘합니다. 다만, 뭔가 좀 주인공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네요. 선명한 이미지가 아직 없어서 그런지 그런 배우 자체의 이미지가 약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이는 조정석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완성되는 배우의 아우라가 아직은 약해 보이네요. 


대신 백 국장을 연기하면서 가장 유의미한 대사들을 치는 이미숙의 연기는 강단이 아주 좋습니다. 역시 중견 배우이자 영화 참 많이 찍었던 배우의 아우라가 가득하네요. 여기에 이경영 뒤를 잇는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악역 전문 배우가 되어가고 있는 김의성과 오 반장으로 나오는 배성우의 연기도 좋습니다. 



후반이 약하다고? 결말이 맘에 안든다고? 난 오히려 더 좋았다

평론가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후반이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그 지적 전 공감이 안 갑니다. 전반부는 블랙코미디로 잘 착상된 유머가 후반에는 스릴러로 변합니다. 웃기면서도 무서운 이 2개의 느낌을 한 영화에서 잘 녹여내기 쉽지 않습니다. '끝까지 간다'가 그나마 두 이미지를 잘 섞어서 호평을 받긴 했지만 전 '끝가지 간다'에서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저와 잘 맞지 않았나 봅니다.  반면, '특종:량첸살인기'는 저와 아주 잘 맞았습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블랙코미디 톤을 유지하면서 스릴도 섞어서 보여주는데 두 이미지가 아주 조화롭게 잘 담깁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한 목격자가 잠시 잠깐 본 상황을 마치 그게 진실인 양 인터뷰에서 떠벌립니다. 
이는 사진의 맹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그게 마치 진실처럼 생각하죠. 하지만 순간의 이미지는 모든 정보를 담지 못합니다. 따라서 삶도 사건도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봐야 합니다. 사진은 맥락을 담지 못하거든요. 
한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손을 흔드는 사진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진을 가지고 그게 만나서 반가워서 흔드는 손인지 헤어짐을 아쉬워해서 흔드는 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둘 다 똑같은 포즈니까요. 그러나 동영상으로 담으면 점점 두 사람이 멀어지면 헤어지는 것이고 가까워지면 만나는 것이죠. 

그 장면도 꽤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결말 부분은 불쾌할 수 있지만 전 오히려 현실을 잘 반영한 것 같아서 아주 보기 좋네요. 기대를 안 하고 봐서 더 재미있게 본 것도 있고 제가 언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더 재미있게 본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평균의 재미로 보자면 이 영화 그냥 그냥 볼만한 정도의 영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이 영화를 언론을 비꼰 언론 비판 영화의 수작으로 느껴지네요. 

볼만한 영화였고 얼떨결에 큰 물고기 낚은 느낌이네요. 노덕 감독의 명성이 더 높아질 듯하네요. 오랜만에 본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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