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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정보성 글만 써서 이제는 개인의 이야기를 적는 일기와 같은 개인 이야기 보다는 정보를 생산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미천한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블로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녹여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내가 죽으면 제 유언장을 대신할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가끔 아니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적는 글을 많이 적어볼까 합니다. 

故 신해철 형의 1주기를 맞아 10월 27일 자정 제가 해철형 노래 중에 가장 좋아했던 그의 1집 중 '고백' 을 리메이크해 월간윤종신 Special 이란 타이틀로 공개합니다.수익금은 전액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신해철 #고백 #월간윤종신

Posted by 윤종신 on 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이 글을 봤습니다. 故 신해철 형님의 1주기가 다가오네요. 잠시 멍했습니다. 벌써라는 말과 함께 여전히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이승은 암흑이네요. 

신해철 형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것은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 그 사실을 인지는 했지만 인정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후 서서히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부재가 현실로 다가오더군요. 그가 남긴 수많은 노래도 노래지만 전 그가 남긴 말들이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서글픔이 밀려들어오자 페이스북 검색창에 윤종신을 검색했습니다. 제가 가장 따르고 존경하고 제 멘토이자 롤모델이자 닮고 싶은 사람이자 몇 안 되는 어른 같은 어른이자 연예인 중에 최고의 이타주의자였던 신해철 형님과 친분이 있고 뮤지션이자 엔터테이너인 윤종신 형님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처음으로 윤종신 형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신해철 형님 몫까지 오래 살아 달라고 했습니다" 


윤종신 형님이 신해철 형님 1주기에 신해철 1집 중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노래 '고백'을 리메이크한다고 하네요. 윤종신 형님의 감수성이면 고백이 딱이죠. 


이 노래는 덜 알려진 노래지만 제 애간장을 녹여주는 노래였습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짝사랑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했는데 그 가슴앓이의 심한 진동을 새벽에 잠 재워주던 노래였죠. 개인적으로는 신해철 형님의 노래 중에 발라드 곡들이 참 좋습니다. 음색도 메탈 음악보다 발라드에 적합했고요. 그러나 뭐 제 바람대로 뮤지션이 음악활동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전 신해철 1,2집과 무한궤도와 넥스트 1집이 좋습니다. 



제가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을 멘토로 삼은 것은 신해철 2집부터였습니다. 1987년 고도성장기의 끝물이자 대학가요제의 정점을 찍던 그 시절에 무한궤도는 부러움 반 시샘 반이었습니다. 부러움은 무한궤도 멤버들이 학력이 어마 무시했잖아요. 서울대, 연대, 서강대라는 in 서울대 중에 하늘을 나는 대학 출신들이 뭉친 엘리트 그룹이었잖아요. 동시에 또래 여학생들의 시선을 다 흡입해서 시샘도 했습니다. 여동생이 산 듯한 무한궤도 카세트 테이프를 노량진 학원을 가는 버스 안에서 미니 카세트플레이어로 많이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무한궤도 유일한 앨범의 노래들의 가사들이 팍팍 꽂혔습니다. 

당시 80년대는 히트한 노래 가사들이 죄다 정말 모조리 사랑타령이었습니다. 무한궤도의 앨범에도 사랑타령이 있었지만 사랑타령이 아닌 노래가 꽤 있었습니다. 무한궤도 1집 타이틀 곡인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부터 사랑 타령이 아닌 젊은이의 세상에 대한 고뇌가 가득했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우리 생이 끝나갈 때 중에서>


20대 초반 청년이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나요? 지금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노래 말고도 끝을 향하여도 사랑이 아닌 삶 그것도 미래의 삶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이때부터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에 반했습니다. 사랑이 아닌 삶을 노래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입니다. 그 차별성이 절 혹하게 했나봅니다. 신해철 1집은 대마초 사건으로 건너 뛰게 되었고 신해철 2집을 비닐 LP판과 테이프 모두 샀습니다. 


타이틀 곡인 '재즈 카페'는 사랑 노래가 아니였습니다. 당시의 서양 문물에 대한 사대주의(지금도 마찬가지지만)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노래였습니다. 솔로 독립 후에 지방 공연을 다니다가 지방 호텔의 재즈바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곡인데 이 노래는 빅 히트를 하게 됩니다. 신해철 2집에는 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때 알았죠. 이 뮤지션은 다르다. 신해철의 노래에는 세상엔 사랑만 있는 게 아닌 수 많은 가치관이 있다면서 탈 사랑주의 노래가 가득했습니다. 즉 삶을 노래로 만드는 가수였죠. 이런 모습은 서양 뮤지션에는 가득합니다. 60~80년대 히트한 팝송 가사 보세요. 사랑 노래보다는 사랑 노래가 아닌 노래가 더 많을 걸요. 

그런 자유로운 소재와 주제의 노래를 신해철 형님은 불렀습니다. 돌이켜보면 80년대는 정말 문화적으로 궁핍했습니다. 한국 영화는 애로 영화만 만들고 노래는 죄다 사랑타령입니다. 이게 다 전두환 군부독재가 만든 살풍경이죠. 사람들이 세상을 비판하는 것을 금기시 했고 세상 비판은 빨갱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사랑 같이 이념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쾌락인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해철은 돌연변이였습니다. 정태춘과 신해철과 강산에 같은 몇몇 뮤지션만이 사랑이 아닌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윤종신 형님도 사랑 노래만 불렀고 지금도 대부분이 사랑 노래만 부릅니다. 그래서 좋아했습니다. 사랑 노래가 아닌 삶을 노래했으니까요



그러나 신해철이라는 사람에 반하게 된 것은 그의 라디오 방송(많이 듣지 못했지만)과 그의 사회에 대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마왕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낸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은 자신의 권력을 십분 활용해서 사회 비판적인 거침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의 생각이나 사상이 좋았습니다. 충분히 누릴 것 누릴 수 있는 인기 뮤지션. 사회적 발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대변하고 보호막에 사용했습니다. 

"사회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다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사회와 음악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이 이상해진다"

"스타는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는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자기가 빛을 반사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소수 계층에 힘을 주어야 한다. 

얼마 전 대중들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한 연예인의 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연예인들 중에 가끔 박수 쳐주는 관심은 감사하게 넙죽 넙죽받아 먹으면서 악플이나 안 좋은 시선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 좋은 관심도 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합니다. 연예인이라서 받은 그 연예인DC같은 혜택이라는 혜택은 다 누리고 좋은 관심만 바라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죠. 

물론, 악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비판도 받지 않고 모든 비판을 악플로 매도하고 화를 내는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니죠. 신해철은 달랐습니다. 악플도 관심이라면서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특히나 그 어떤 연예인보다 악플을 많이 받았던 신해철이었습니다. 연예인  특히 가수 중에 가장 활발한 사회 활동을 했던 가수였고 서슬 퍼런 80년대 90년대에도 사회 비판 적인 가사를 많이 썼던 신해철입니다. 이런 사회 참여 활동은 항당 적을 만들게 되고 그 적들은 신해철을 많이 공격했습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세상에 저항했고 비난했고 비판했습니다. 그 비판이 억지나 무논리의 주장이 아닌 자신의 기득권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을 보여주면서 이렇게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항상 제시해주셨어요. 

그 유명한 대마초 합법화 이슈도 문신 합법과 이슈도 자신에게 분명 심한 비난이 올 줄 알면서도 방송에 나가서 자신의 소신을 밝혔죠. 이런 연예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항상 자신의 주관을 밝히고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잘 풀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수 신해철이 좋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말들이 좋았습니다. 그의 말과 생각, 그의 사상이 좋았습니다. 특히 사회 약자를 향한 배려나 변호를 보면서 영원한 이타주의자 영원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해철 형님의 죽음이 그래서 그 어떤 사람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사망 소식을 들었던 당시는 그냥 덤덤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신해철 형님의 부재가 사무치게 느껴져서 형님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쓰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앞으로 그의 노래와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신해철 형님을 대신할 뮤지션은 없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작년 가을 단풍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아마도 신해철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그 이유로 작년 가을 내내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이 엄혹한 세상, 하루 하루가 지옥과 같은 세상이 펼쳐지는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등불이 꺼졌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라는 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지만 신해철 형님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세상 모든 암초 위에 등대를 달아서 이곳은 위험한 곳이니까 돌아가!라고 말을 해줬습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이게 옳다고 할 때. 그게 왜 옳으냐면서 이것도 옳다고 주장하는 분이었습니다.

다원화 시대의 총아였죠. 한국 같이 하나의 가치만 추종하는 획일화 사회에서 몇 안되는 세상은 여러 가치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해주던 분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제 블로그 독자 분 중에 제 시선과 주장을 다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을 자주 보여서 좋다고 하네요. 

네 저도 그게 좋습니다. 일부러 다른 시선을 찾아보고 그 시선이 논리적이고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으면 적극 발굴해서 소개합니다.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은 남들이 사는 방식과 시선을 따르면 됩니다. 군중에 섞이면 얼마나 포근한데요. 자기 편도 많고요. 하지만 자기 시선은 사라집니다. 

신해철 형님은 다른 시선을 수시로 내보이면서 모두가 이게 맞다고 할 때 정답은 1개가 아닌 여러 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했습니다. 사랑 타령만 부르던 80년대 가요계에 삶에 대해서 노래를 했습니다. 그런 색다른 시선이 너무 좋았고 그 시선을 추종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따르던 사람이 되었네요. 

저 하늘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밤샘 토론을 하고 있을 듯 하네요. 그가 떠난 세상은 한 층 더 어두워졌습니다. 1년 전보다 지금이 더 참혹스럽습니다. 견제가 없는 절대 권력은 표독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헬지옥이라는 단말마만 지르고 있습니다. 그건 문제 해결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려면 행동을 해야 합니다. 투표를 하던 모여서 주장을 하던 뭔가 해야 합니다. 영원한 행동주의자 신해철 형님이 그래서 더 더욱 그리워지네요. 올해도 가을이 왔지만 봄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무채색 잿빛으로 보이네요. 이 험한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지네요.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라면 신해철 형님이 남겨 놓은 고스트 스테이션 팟 캐스트입니다. 가끔 한 편씩 꺼내서 듣는데 개구진 웃음 소리에 가끔은 이 세상에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네요. 그런 착각도 좋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환상이니까요

먼 훗날 언젠가 저도 저 세상으로 가는 날이 오면 전 신해철이 만든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입국 허락해주세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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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손명훈 2015.10.29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글로 미뤄잠작 신해철씨 보다 한참 높은 연배의 50대 중반 이상을 예상했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격동의 세월을 지난 세대신줄 알았습나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5.10.29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셨을까요? 뭐 과거야 직접 겪지 않아도 겪을 수 있는 도구가 많아서 그랬을지도요. 신해철 형님과 같이 40대입니다.

  2. Favicon of https://this-song.tistory.com BlogIcon _Sophia 2015.10.30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29살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학생 시절부터 신해철님 음악을 참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짧은 가사를 읊조리며 세상을 드문드문 짚어내는 일을, 신해철님이 도와주신 거나 마찬가지죠. 나중에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신해철님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된 것 같아요.
    왠지 세상을 떠나 새로 튼 둥지에서도, 직언을 뱉고 노래를 하며 지내고 계실 것 같아요. 그곳에선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5.10.30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보다 10년 이상 터울이 나지만 신해철 형님을 보는 시선은 동일하네요. 저는 어땠겠어요. 삶이 막막하고 앞이 안 보일때 신해철 형님의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데요.

      큰 어른이었어요. 아니 동네 형 같았죠. 아니 신해철 형님 같은 동네 형 한 명 있었으면 했어요. 처음에는 강남 도련님으로 생각해서 시기했는데 이 형님 그런 사람이 아니였어요. 정말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인격이 만랩 같은 분

  3. Jonas 2015.11.03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할 때마다 참 만감이 교차하고 아쉬워요. 독설가이면서 따뜻했던 사람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