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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음악창고

아이유 제제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천박한 비판 의식들

by 썬도그 201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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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1교시 수업 전에 약 10분 간 소설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책 한 권 돈 주고 사보기 힘든 시절 선생님의 고운 목소리로 들려주던 그 책 내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10분 씩 들려주던 책의 이름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입니다.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브라질 작가 '조제 마우르 지 바스콘셀루스'가 1968년에 발표한 책으로 한국에서는 1985년에 베스트 셀러에 오른 책입니다. 선생님이 읽어 주시던 때는 책이 한국에 막 소개된 시기였습니다. 선생님이 읽어 주시던 그 책 내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인공 제제는 5살 짜리 어린 악동으로 매일 학대를 받고 사는 소년입니다. 이 소년이 유일하게 기대는 곳은 집 뒤에 있는 라임 오렌지 나무입니다. 밍기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 놓죠



그러다 진짜 아버지 같은 뽀루투까를 만납니다. 자동차 스페어 바퀴에 올라타서 학교로 가다가 뽀루투까에게 걸린 제제는 그렇게 인연을 맺고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뽀루투까에게 받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뽀루투까가 죽자 구토를 하면서 슬퍼합니다.

상처 받은 아이의 영혼을 아주 잘 그려낸 작품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입니다. 지금도 아동 문학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죠. 아무래도 이 작품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많았던 80년대여서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은 폭력적인 아버지 많지 않잖아요. 



제제를 음탕하게 만든 아이유?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세상

솔직히 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은 한국에서나 많이 읽히지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읽히는 작품이 아닙니다. 또한 엄혹한 80년대가 아닌 지금 읽으면 딱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도 아닙니다. 차라리 '어린 왕자' 같은 책이 좋죠.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만큼 매혹이 수백 년이 지나도 흘러 넘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이 팔리는 책이죠. 이 책의 후속작이 방랑자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잠깐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사람들이 재미 없다고 안 읽더라고요. 저도 안 읽었죠

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은 아이유가 자신의 노래 Zeze에 이런 가사를 씁니다. 


"꽃을 피운 듯,
발그레해진 저 두 뺨을 봐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이 가사 이외에도 잎사귀에 입을 맞춰 등등 약간의 성적 느낌이 나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유가 제제의 양가적인 모습에서 섹시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아이유는 악마 같은 악동의 이미지와 구두닦이를 해서 아버지에게 구두 선물을 하는 착한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제제에게서 섹시함을 느꼈나 봅니다. 

그럴 수 있죠. 아이유는 어쩌면 우리보다 제제에 더 깊은 몰입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유 어린 시절은 좋은 환경은 아니였습니다.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서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환경이라면 아이유는 우리 보다 제제에 더 깊은 몰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좀 심했다고 봅니다. 제제 하의를 벗겨 놓고  스타킹을 신기고 핀업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제제를 확실하게 성적 의미를 강하게 부여하는 것이네요. 머리엔 고깔 모자를 씌워서 아이의 순수함을 아래는 성인 이미지를 섞었네요. 양가적인 이미지를 심었는데 그럼에도 이건 좀 과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전 이번 아이유의 제제라는 곡을 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유의 이런 시선과 내 시선이 달라서 싫은 것이지 아이유가 제제라는 곡을 폐기 처분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냥 아이유의 가사 내용도 별로고 색다른 시선임은 알겠지만 아이유라면 좀 더 깊이 있는 가사가 나올 것 같은데 시선만 색다를 뿐 여중생이 일기장에 낙서한 수준의 가사라서 별로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래를 만드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이유를 저는 안 좋게 보지만 누군가는 좋게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뮤지션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각자의 판단이니까요. 문제는 내 판단을 상대에게 강요할 때 발생합니다. 


아이유의 제제 가사를 읽은 들녘 출판사는 제제는 학대 받는 5살 아이라면서 섹시한 이미지와 핀업걸 포즈의 그림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때 처음 이 사태(?)를 알았습니다. 사실 저런 아이유가 제제를 재해석한 부분은 각자 알아서 판단합니다. 그리고 논란이 일어날 것이 없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난 재미 없다고 하는데 친구가 자긴 재미 있게 봤다면서 저에게 넌 왜 재미 없냐고 묻고 따지면서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한 분노일까요? 물론 그런 것은 있습니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몰이해로부터 나온 감상은 몰이해를 이해로 바꾸고 다시 생각하게 할 수는 있어도 감상 자체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내 생각이 옳다고 느끼면 그걸 마치 바른 신념인 양 남에게 주입하려고 합니다. 
들녘 출판사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저자도 아니고 저자라도 괜찮다 아쉽다라는 코멘트는 할 수 있어도 출판사가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사가 섹시 코드가 있어도 그렇게 문제 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들녘 출판사가 비난을 하자 사람들은 제제에 가사를 요리조리 뜯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로리콘 코드를 발견하고 물어 뜯기 시작하고 결국 곡을 폐기하라는 서명 운동까지 나왔습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곡과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들녘 출판사의 입장(?) 발표에 발끈한 입담꾼인 허지웅과 진중권은 자신의 SNS에 험한 소리로 들녘 출판사를 비난합니다.
전 진중권이나 허지웅의 비판도 과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비판을 반대하거나 너나 입닥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별거 아닌 아이유 제제의 논란은 무슨 거대한 우주 이론에 대한 갑논을박 전쟁도 아닌데 마치 엄청난 논란이 되어 버렸습니다. 논란 일어날 게 없습니다. 그냥 서로의 비판을 그냥 받아 들이면 됩니다. 

아이유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을 읽고 제제라는 곡을 통해서 색다른 시선을 담은 것은 아이유 마음입니다. 그 아이유 마음대로 만든 곡인 제제에 대해서 옹호를 하고 저 같이 인상을 쓰던 그건 곡을 소비하는 사람들 마음입니다. 그 제제라는 곡 가사에 대해서 들녘 출판사가 비판을 하는 것도 들녘 출판사의 마음입니다. 그런 들녘 출판사의 오버액션을 비판하는 진중권 허지웅도 그 사람을 마음입니다.

여기서 충돌할 게 없습니다. 그냥 인신공격 하지 않고 비판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 마음이 다 다르듯 그냥 자기 마음을 내보이면 됩니다. 문제는 인신공격이 문제입니다. 또한, 자기의 의견과 다른 사람에게 왜 넌 그렇게 생각하니라고 묻고 따지는 행동이 문제입니다. 

이게 무슨 수학 문제입니까? 정답이 있나요? 그냥 다 수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게 없어요. 0 아니면 1이에요. 내편, 니편만 있죠. 그래서 내 의견과 동일한 의견만 검색을 통해서 긁어 모아서 봐라! 내 의견이 정답이라고 외칩니다. 참 못난 행동이빈다.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내편, 니편 갈라서 싸우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이유의 제제가 로리콘으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는 그냥 섹시한 느낌이구나 또는 별 느낌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아이유에게 곡 폐기 하라는 것도 무례해 보입니다. 뭐 미풍양속을 해치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법에 호소해야지 우리의 일방적 시선으로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비판하는 저를 양비론자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저 양비론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비판 적극 수용하고 제가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비판에서 끝내야죠. 그걸 너 같은 놈은 원래 그 따위였다느니 너 같은 인간이 가장 비열해라는 식으로 의견이 아닌 인간에 대한 모독까지 하는 비난은 집어 치워야 합니다. 

그럼 비판에서 끝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비난으로 흐르고 있네요. 
게다가 자기 의견과 비슷한 글만 끌어 모아서 SNS에 공유하고 소개하는 행동도 좋아 보이지 않네요.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아이유가 제제를 섹시 코드로 해석한 것을 반대 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최근에 아이유가 합성 사진에 법적 대응을 한다고 발표 했습니다. 저도 우연찮게 그 사진을 보고 단박에 합성이구나 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는 아이유를 봤습니다. 당연히 고소 먹겠구나 했는데 역시 아이유 측에서 고소를 했네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이유가 제제를 재해석한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데  합성 사진을 만든 사람이  아이유가 이번 앨범에서 담고 있는 섹시코드를 더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뭐 그 판단은 고소를 때렸기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이 판단을 하겠죠.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고 각자 알아서 비판을 하면 됩니다. 단 한 사람이 하나의 시선을 가지고 비판을 하고 판단을 하던 그 시선이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일관성이 없으면 그 사람은 신뢰를 잃습니다.

점점 아이유 사태는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흐르네요. 그리고 이게 뭐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각자 알아서 판단 하시고 마음에 묻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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