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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한국인들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일리 있는 지적

by 썬도그 201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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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는 일탈이자 환상입니다. 서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항상 쉼과 낭만, 그리고 여행의 느낌이 가득 드는 곳이죠. 도시에서 셔틀을 타고서 책과 문화와 예술의 도시에 안착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재미를 줍니다. 작년에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파주출판도시의 가을 축제인 '파주 북소리 축제'에 다시 갔습니다.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절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절 이 지경에 만든 사람 소개는 잠시 후에 하고 먼저 파주가 출판사들의 보금자리를 넘어서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단지 1단지는 출판사 건물이 가득하고 2단지에는 영화사와 영화 스튜디오, 특수 촬영 회사와 영상자료원 파주보존고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이 되었던 종로구 누하동에 있었던 명필름이 파주로 이전했습니다. 파주를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요.



 파주북소리 축제에서는 '무비로드버스토크'를 3일간 진행했습니다. 첫날인 금요일에는 배우 김태우, 둘째 날은 명필름 대표가 그리고 어제 마지막날 일요일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1시간 정도 강연을 했습니다. 

네 맞아요.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영화 평론가 정성일'입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진중하게 보는 재미는 몰랐습니다. 그냥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끝나면 집에 숨겨 놓은 과자처럼 오전에 시험 마치고 종로 극장가로 나가서 배트맨이나 다이하드 볼 궁리만했죠. 당연히 저의 영화 선택 기준은 재미! 딱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주로 흥행 영화나 대중성 높은 영화만 보다가 재미는 없지만 삶의 시선을 좀 더 풍요롭게 해주는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자주 듣고 있는 MBC FM 영화음악에서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매주 1편의 영화를 아주 맛깔스럽게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그때가 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나운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 출연해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줬고 그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전 다양한 영화를 보는 영화 매니아가 되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말을 참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가 그랬습니다. 무슨 언어의 마술사 같이 다 듣고나면 그냥 그런 이야기도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마치 스릴러를 연출하듯 다음 이야기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마법사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이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만들어낸 시네필들이 꽤 많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반석이 된 시네필들의 태반이 이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양산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한국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는 추앙 받고 있는 영화평론가이기도 하죠. 매번 영상과 목소리로만 듣다가 직접 얼굴을 보게 되었네요. 막 부산 영화제에서 올라왔다는 정성일 평론가는 열정적인 강의를 1시간 넘게 했습니다. 원래 1시간 강의였는데 2시간 이상 강의를 하고 질문 하나 하나를 다 받았습니다.

정말 말도 잘하고 말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시네요. 이 2시간 짜리 강의에서는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구분영화 재미있게 보는 방법과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추천하는 영화 10편을 소개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을 하고 이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그러나 한 번 집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떻게 1년에 1천만이 넘는 영화가 2편이나 나올 수 있나?

영화 베테랑과 암살이 모두 1,000만 명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전 두 영화 모두 그닥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흥행은 대박이지만 영화 자체로만 보면 둘 다 영화 별 3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냥 그런 킬링 타임용 영화로 보이더군요. 

뭐! 영화 1천만 관객이 영화의 절대적인 잣대가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1천만은 영화 자체도 좋아야겠지만 영화 배급사의 농간이 더 큰 영향을 주니까요. 또한, 영화들이 팝콘 같이 입에 들어가면 달콤하나 손에 팝콘 기름이 묻는 찝찝한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영화들이 늘고 있네요. 딱, 팝콘 먹으면서 보기 좋은 영화들이 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잠시 딴 짓을 하고 화장실에 갔다 와도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어떻게 1년에 1천만 명이 넘는 영화가 2편이 나올 수 있냐면서 한국 사람들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거 아세요? 한국 연간 영화 관람객 수가 2억 명이 넘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한국인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연간 4.12회입니다. 이는 영화의 발원지인 유럽과 영화 공장이 있는 미국을 뛰어 넘는 숫자입니다. 무례 세계 1위입니다. 안 좋은 1위인지 좋은 1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1인당 가장 영화 많이 보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는 한국인들이 뭐가 나쁘냐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이런 모습을 젊은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서 영화관을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을 했습니다. 서양의 20대들은 모이면 여행을 가고 교외로 나가서 놉니다. 그러나 한국의 88만원 세대들은 여행을 가고 싶어도 교외로 나가서 놀고 싶어도 가진 차도 없고 돈도 없어서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가까운 영화관에 간다고 합니다. 

이는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전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좋은 영화라면 찾아가서 보거나 아니면 다운로드해서 보는데 영화관을 가보면 주말 관객의 8할은 20,30대 데이트족이나 친구들과 온 관객이 많습니다. 가족 관람객도 있긴 하지만 영화관의 주 소비층은 20,30대입니다. 제 20대를 돌아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20대 때 주로 간 곳이 영화관이었네요. 다만, 그때는 영화 한 편 보려고 종로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영화 말고 따로 뭘 같이 할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남자 친구들과 만나면 당구 치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이성 친구들과 만나면 영화 보고 커피숍에 가거나 술자리에서 술먹고 끝. 정말 갈 곳 없는 청춘이었네요. 지금은 그 90년대보다 갈 곳도 많고 즐길 것이 많아졌지만 가장 만만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는 영화관입니다. 특히나 슬리퍼 끌고 가도 될 정도의 지근거리에 있는 복합상영관은 변두리 재개봉관과 비디오 가게를 싹 몰아내고 전국 곳곳에서 영업을 하면서 영화 관람객을 흡입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런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했더니 지방은 영화관도 많지 않다고 하소연을 하시는데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관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닌 영화관만 가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영화관 말고 여러가지 대안은 많습니다. 돈만 있으면 쏘카 렌트해서 동해 바다 보고 올 수도 있고 돈만 있으면 하룻밤에 20~30만원 하는 경기도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낚시배타고 섬에서 낚시할 수 있죠. 

그런데 20대들이 돈이 어딨습니까? 가장 싸고 만족도가 높은 영화관 가는 것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죠. 물론, 영화관도 연인끼리 가면 영화표 가격보다 비싼 팝콘과 콜라 사서 보면 주말에는 약 5만원 이상 지출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활동보다 시간당 들어가는 돈이 적게 드는 곳이 영화관입니다. 영화관 주말 입장료가 비싸긴 하지만 누가 돈 다주고 보나요? 신용카드 할인에 쿠폰에 이리저리 할인해서 보면 저렴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1천원이라도 아끼려고 조조관람을 하는 젊은 층도 꽤 되죠. 이런 형태의 영화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나라가 또 있죠. 바로 인도입니다. 인도 영화가 뜬끔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이유는 인도인들은 집에 TV는 없어도 영화관은 동네마다 있는데 유일한 유희꺼리가 영화 관람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점점 인도와 닮아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도 영화를 참 많이 보지만 한국은 정말 영화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사람들이 영화를 아주 쉽게 찾아서 봅니다. 분명 이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2차 시장인 비디오나 DVD 대여 시장이 붕괴했고 IPTV나 다운로드 시장이 열렸다고 하지만 영화관들이 시설이 너무나도 좋아져서 조금 더 돈을 내고 외식도 할 겸 하나의 주말 놀이 문화로 정착된 느낌입니다. 

따라서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하는 대박 영화를 보기 보다는 일단 주말에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고 가장 볼만한 영화를 찾는 문화도 점점 퍼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렇게 젊은 층에서는 돈 때문에 영화관을 가고 아이들이 있는 30,40대들은 영화 관람 문화가 정착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젊은 사람들이 갈곳이 없어서 영화관을 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네요. 영화관 말고 갈 곳이 많은 나이인데 영화관 에어콘 바람 밑에서 2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했습니다. 분명, 이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100% 저도 공감할 수 없다고 해도 유의미한 지적은 분명합니다. 

생각을 더해보면 주말에 한국의 10,20대들은 영화관에 가고 30,40대들은 아이들과 놀이동산이나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을 따라가고 50,60대 이상은 전국 산이란 산에 다 올라가 있는 모습. 세대 별로 가는 곳이 다 다른 모습이 한국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다시 말하지만 영화관 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영화관 밖에 갈 곳이 없는 한국의 현실, 특히 20대들이 영화관만 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입니다. 인구 5천만인 나라에서 1년에 영화관에 2억명이 가는 나라. 우린 그런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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