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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아버지가 아들이 함께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사도'

by 썬도그 2015.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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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그 이유는 3가지입니다. 첫 번 째로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것입니다. <광해>나 <왕의 남자>, <관상>등이 흥행에 크게 성공했지만 최근 한국 사극 영화들 중에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TV에서도 온통 사극만 하는 듯 해서 사극이 물려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번 째는 '사도세자'의 비극은 이미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긴 역사 중에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서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수 많은 드라마가 이 소재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여기에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기야 경쟁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탁월하지만 스크린 밖의 인간 유아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주변의 평도 좋고 영화 평론가들의 평도 꽤 좋아서 봤습니다. 그리고 제 투덜거림은 감탄사로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를 놓쳤다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하는 안도감과 환희를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다음 날에도 어제의 그 전율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감히 말하자면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돌직구 연출로 돌파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서 죽게 한 비극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뭐 영화 <관상>의 결말을 말했다고 스포질이라고 지적하는 요즘 세태에서도 사도세자가 죽는다는 것을 말하면 스포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이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영화 사도는 요즘 영화들의 공통적인 재미인 후반의 반전 드라마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은 슬기롭게도 정면 돌파합니다. 먼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대부분은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는 그대로를 재현합니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9는 실제 1이 상상이라고 할 정도로 상상력 보다는 비극 그 자체를 아주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의상도 최근 사극에서 유행하는 화려한 한복이 아닌 담백하다고 느낄 정도로 톤 다운된듯한 의상을 입고 나옵니다. 제가 요즘 사극 드라마를 안 보는 이유가 양반들이 입는 도포가 흰 색이 아닌 과한 채색을 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아무리 퓨전 사극이 유행이라지만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져서 재미만 추구하는 사극은 사극이 아닌 공상물로 느껴집니다. 

반면, 사도는 역사책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현실에 닻을 깊게 내리고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면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스토리 진행은 현재와 과거를 섞어 놓았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광인이 된 사도세자가  토굴에서 박차고 나와서 칼을 들고 경희궁에 있는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 찾아가는 장면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면서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과 뒤주에 갇힌 시간을 교차하면서 보여줍니다. 7일 간 뒤주에 있는 시간 중간중간 과거 장면을 넣어서 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힐 수밖에 없는 지를 묵직하게 잘 담았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의 수 많은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에서 이 소재를 활용했습니다. 이야기의 재료 자체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슬픔이 가득 묻어 나옵니다. 그러나 이걸 조금만 잘못 요리하면 요리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사도>의 이준익 감독은 농익은 연출력으로 이 슬픔 가득한 이야기를 영화 <사도>전체에 넘치지 않을 정도의 잔잔한 눈물로 만들어 냅니다.

영화 중 후반부터 미쳐가는 사도세자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조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리면서 잔잔한 눈물이 가득 흐르게 만듭니다. 펑펑 우는 눈물이 아닌 사도세자와 영조 두 사람 모두를 이해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두 사람의 운명을 관객들이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여기에를 보는 내내 역시 이준익! 감독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이야기를 확장하거나 덧붙이지 않고 오로지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갈등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곁가지 이야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관계를 농밀하게 담습니다. 뻔한 이야기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면서 영화는 슬픔의 강을 건너갑니다. 


송강호, 유아인의 미친 연기력

스토리 자체는 매혹적이지만 익숙한 이야기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잘 이용하면 익숙한 이야기라는 친밀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 <사도>는 친밀한 이야기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두 주연 배우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연기의 춤사위를 보여줍니다. 

송강호야 A급 연기력의 소유자이고 어떤 영화를 해도 그 배역 이상을 뽑아 내는 배우인데 이 영화 <사도>에서도 미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아들 사도 앞에서 단말마 같은 애 끓는 대사들을 허공에 뿌리는 모습은 연기의 신이 아닐까 할 정도로 경이로운 장면을 단 한 명의 배우의 힘으로 만듭니다. 

이런 명배우이자 대배우인 송강호와 연기의 합을 겨루는 유아인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유아인은 또 한 번의 연기 진화를 합니다. 이전 영화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은 유아인이였지만 반항아 이미지만 보여줘서 연기가 하나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도>에서 그 갇혀 있는 이미지를 깨고 미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생모인 영빈을 모시고 허공에 칼을 휘두르면서 광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은 영화관 전체를 울음 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에 영빈 역을 한 전혜진이나 김해숙과 박원상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문근영이 혜경궁 홍씨로 나와서 이렇다 할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마케팅 차원에서 메인 조연이 된 모습은 좀 아쉽네요. 



자신의 컴플렉스를 아들을 통해서 치료하려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

한국처럼 자식의 삶이 부모의 삶이 되는 나라도 있을까요? 자신이 잘 나고 좋은 직장 다니고 돈 많이 벌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식 자랑을 하는 나라가 있을까요? 반대로 자기 자식이 못나면 모임에도 안 나가고 모임에서 시무룩하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있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자식의 삶을 부모의 삶에 강력하게 링크 시켜서 마치 몸은 다르지만 같은 삶을 사는 듯한 모습을 할까요? 이렇게 부모가 부모의 자주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자식을 극진하게 뒷바라지 하면서 부모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자식의 삶에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을 우리들은 지금까지 '부모의 희생정신'이라고 아름답게 잘 포장해 왔습니다. 

물론, 그런 삶 자체는 비난할 것이 없고 거룩합니다. 문제는 내가 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너 때문에 희생을 했는데 넌 그것도 모르고 내 기대치에 왜 못 따라오냐면서 타박을 합니다. 

"내가 니 나이 때는~~~"이라고 하는 흔한 꼰대 스타일의 말을 하면서 자식들을 비난합니다. 여기서부터 자식과 부모의 갈등은 심화됩니다. 영조가 그랬습니다. 나이 40살에 본 귀한 아들을 애지중지를 넘어서 영조의 눈에 찰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주길 바랬지만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눈에 찰 정도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니 공부가 아닌 다른 쪽으로 능력이 있었죠. 공부에는 관심 없고 강아지 그림이나 그리는 사도세자를 영조는 점점 못마땅해합니다.

못마땅함은 대리청정을 통해서 극에 달합니다. 신하들 앞에서 아들을 바보로 만드는 모욕까지 주는 등 영조의 아들에 대한 타박은 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사도세자는 점점 광인이 되어갑니다. 

우리네 주변에 영조 같은 부모가 너무도 많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과 딸에게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아들과 딸들은 당신의 아바타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자체의 삶이 있습니다. 단지 DNA가 비슷하다고 해서 기질과 성격이 같을 수 없습니다. 또한, 능력과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영조처럼 자신이 원하는 삶만 살라고 강요하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공부에 대한 재능이 없는 아들을 보고 실망을 합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난 병원에서 아들이 바뀐 것 같다는 말에 "역시"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 아들은 공부를 싫어하거나 능력이 출중한 아들인데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아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이런 식으로 우리들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자식을 아바타 취급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영화 <사도>는 그런 영조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영조는 컴플렉스가 참 많은 왕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더구나 권력의 상층부라서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죽음이라는 폐기처분을 당하는 살벌한 궁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합니다. 여기에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미천한 출생에 대한 컴플렉스도 아주 큽니다.

이런 컴플렉스를 아들 사도세자에게서 풀어 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반면, 사도세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는데공부와 예가 국시인 조선이라는 꼰대들의 나라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점점 미쳐갑니다. 각자 보는 시선이 다르겠지만 전 이 영화 <사도>를 보면서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이 되지 못하는 우리네 아들들의 괴로움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도 그 아들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그런 시선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아들을 향한 무한 사랑과 함께 전해지는 강압적인 삶의 강요를 이 영화가 거울이 되어서 아버지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 봤으면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도 살아지지 않는 게 '자식들의 삶'입니다. 따라서 전 이 영화를 부모와 자식이 함께 손을 잡고 꼭 봤으면 합니다.  

영화 <사도>는 초반에는 영조를 악인으로 그리지만 영화 후반에는 영조가 가해자 사도세자가 피해자가 아닌 모두가 피해자라는 식으로 이끌어갑니다. 가해자는 조선왕조라는 무게 때문이죠. 전 어떤 나라보다 조선왕조가 싫습니다. 제가 워낙 권위주의를 싫어하는데 조선왕조는 꼰대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실용 대신에 예에 너무 집중을 합니다. 예를 중시한 공자님도 예는 하나의 현상이지 그걸 종교처럼 떠 받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 있고 예가 있는 거지 예가 있고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도 조선은 예송논쟁 등을 보면 그 예법 때문에 당쟁을 합니다. 공부와 예가 국시인 조선에서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네 아이들 그 공부에 숨 막혀 죽는 모습이 여전하지 않나요? 한 해에도 수많은 학생이 단지 공부 때문에 정말 단지 공부 때문에 자살을 하는 현실을 보면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네요.



슬프고도 아름다운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극진했던 효자이자 조선 역사 중 가장 태평 성대한 시절을 만든 성군입니다. 
정조가 이룬 개혁이나 애민정신은 지금도 탐복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릅니다. 역대 환갑 잔치 중에 가장 성대하고 화려했다고 하죠. 

이 환갑 잔치를 재현한 공연을 몇 년 전에 봤는데 그 화려함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정교했습니다. 게다가 이 잔치에서 정조는 노모 앞에서 어린 시절 떨지 못한 재롱을 떨었죠. 정조는 사도세자가 묻힌 융건릉을 가기 위해서 거대한 화성 행차를 만들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환갑 잔치 장면을 보여주는데 생각보다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환갑이라는 기쁨과 함께 정조가 가진 슬픔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슬픈 노래가 화면 가득 피어나면서 펼쳐지는 정조의 춤사위는 오래 길게 기억될 장면이네요. 

영화 <사도>는 사도세자를 피해자로 영조를 가해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뛰어난 연출력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왕과 세자라는 한 나라를 짊어진 중압감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이고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였습니다. 특히 30대 이상 자식을 둔 부모님들이 꼭 봤으면 하네요. 

아버지와 아들이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진중한 물음이 있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아버지가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하는 아들의 통곡이 담긴 영화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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