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암살, 케이퍼 무비의 재미를 버리고 독립군의 거룩함을 택하다

by 썬도그 2015. 7. 26.
반응형

한 장르의 영화만 연출하거나 연기하는 것은 감독이나 배우에게 큰 독이 될 것 같지만 여러 장르를 하는 것보다 한 장르에 특화된 연출과 연기가 관객에게는 더 큰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갈고 닦아서 국가대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영화의 정밀도가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고 한 장르만 연출하는 감독들이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동훈 감독은 케이퍼 무비에 최적화된 감독입니다. 케이퍼 무비란 범죄 영화의 하위 장르로 무언가를 강탈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캐릭터들이 모여서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영화로 하이스트 영화라고도 합니다. 주로 은행 강도 영화가 이런 영화들이 많죠.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최동훈 감독은 2004년 <범죄의 재구성>을 시작으로 <타짜>를 지나 <도둑들>에서 케이퍼 무비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최동훈 감독만큼 케이퍼 무비를 잘 찍는 감독도 없습니다. 뭐 헐리우드 케이퍼 무비에 비하면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긴 합니다만 그나마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국내 감독도 없습니다


케이퍼 무비로 위장한 영화 암살

영화 제작사는 케이퍼 필름입니다. 대놓고 케이퍼 영화를 주로 만드는 영화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최신작 <암살>도 케이퍼 무비 스타일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친일파와 일본 고위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서 만주와 중국에서 활약하는 독립군 3명을 김원봉과 김구가 모집하고 경성(서울)로 보내서 암살이라는 미션을 완수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격수이자 대장인 안옥윤(전지현 분)과 톰슨 기관총을 잘 쏘는 속사포(조진웅 분)과 폭파 전문가인 황덕삼(최덕문 분)은 2명을 암살하기 위해 일제 치하의 경성에 잡입합니다. 얼핏 보면 3명의 독립군이 미션을 수행하는 케이퍼 무비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에 그런 구도로 그려집니다만 이 암살 작전이 헝클어지면서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 본색이란 독립군이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입니다. 케이퍼 무비들이 드라마가 약한 측면이 있는데 이 영화 <암살>은 케이퍼 무비의 복면을 벗고 드라마를 강하게 주입합니다.



변절자와 쌍둥이 설정은 빗나간 오발탄

드라마적인 요소를 풍미롭게 하기 위해서 영화 <암살>이 택한 방법은 변절자라는 캐릭터와 쌍둥이입니다. 먼저 염석진(이정재 분)은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시절의 변절자입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많은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일제의 패망까지 협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을사 5적과 같은 일부입니다. 대부분의 친일파로 분류된 사람들은 초기에는 저항하다가 1930,40년대가 되어서 변절한 인간들이 많습니다.

특히 독립군을 지원하다가 일제 후기에 일본 앞잡이가 된 사업가, 문인, 교육자 등등이 꽤 많죠. 대표적인 사람이 '춘원 이광수'입니다. 이런 변절자들의 변명은 비슷합니다. "일본이 망할지 몰랐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잠깐 스쳐가는 식민지 시절이라고 생각하고 저항을 많이 했습니다만 19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일제 강점기가 끝나지 않자 점점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라는 현실을 받아 들입니다. 이 변절자들을 위한 변명은 아니지만 20년 이상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체념을 하고 삽니다. 체념을 하면 바로 그 세상에 순응하게 됩니다. 여기에 특출 난 기회주의자 기질이 있으면 일본 앞잡이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악질 친일파가 있는가 하면 변절한 친일파가 있습니다. 염석진은 그런 흔한 일제 시대의 변절자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면 더 마음이 아프고 타격이 큽니다. 아예 처음부터 친일파라면 거리를 두거나 공격 대상이 되지만 변절자는 검은 머리를 한 짐승만이 할 수 있다는 배신을 합니다. 악의 근원은 일본 제국이지만 독립군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인물들은 배신자입니다. 특히 정신적 타격이 크죠

염석진은 그 변절자로 투입된 캐릭터입니다. 이 변절자 이야기는 꽤 오밀조밀 잘 들어맞습니다. 이정재의 연기도 훌륭하고 여러 가지로 꽤 사용도가 좋지만 영화 결말 부분이 다큐가 아닌 여름 흥행 영화의 껍질을 깨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가장 아쉬웠던 설정은 쌍둥이입니다.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설정이 영화 후반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이런 설정은 신선한 것도 어떤 흐름으로 진행될 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제 예상과 큰 오차 없이 진행되는 모습에 살짝 지루하기도 하네요. 

특히 20년 넘게 떨어져 있던 두 형제가 대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나 여러 가지 설정은 개연성이 꽤 부족해 보입니다. 
이 개연성 부족은 속사포와 황덕삼에게도 보여집니다. 속사포와 황덕삼은 암살에 가담하는데 너무 쉽게 가담합니다. 목숨을 바칠 정도라면 뭔가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가 있어야 하는데 '신흥무관학교'출신이라는 설명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오로지 안옥윤만이 어느 정도 목숨을 건 암살에 대한 설명이 진하게 그려집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설명이 부족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조선 독립군을 돕는 일본인이나 친일파 아내가 독립군을 지원하는 설정이나 하와이피스톨이 왜 마음을 고쳐 먹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보입니다.



영화 의상과 세트만 눈에 들어오는 영화 <암살>

영화 <암살>은 드라마가 강한 영화라서 액션은 많지 않습니다. 총격 장면이 꽤 많이 나오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캐릭터 간의 총격 장면도 밀도 있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냥 난사만 가득합니다. 주인공이 저격수인데 저격 실력을 뽐내는 것은 초반 딱 한 번뿐 나머지는 총을 잘 쏘는 캐릭터가 사라집니다. 

액션에 큰 신경을 쓴 것 같지는 않더군요. 대신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거리 재현은 아주 뛰어나게 잘 했더군요. 영화 내내 동공이 커진 것은 1930년대 서울 거리와 상하이 거리입니다. 특히 클래식 자동차가 많이 등장하고 폭발하는 장면 등등은 꽤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반면 액션은 좀 아쉽네요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 캐릭터가 붕뜨다

역사와 사회를 대하는 태도는 3가지가 있습니다. 저항하거나 순응하거나 아니면 방관하거나
저항하는 인물은 독립군 안옥윤이고 순응하는 인물은 친일파 염석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당시 조선인들의 태도였던 방관자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입니다. 하와이 피스톨은 돈만 주면 살인을 하는 청부살인업자입니다.

하와이 피스톨은 독립군 3명을 처리하라는 의뢰를 받고 경성에 도착해서 독립군 3명을 처리하려고 준비를 합니다. 
하와이 피스톨은 세상을 방관합니다. 없어진 나라 조선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오로지 돈만 쫒습니다. 이런 태도는 현재의 우리와 비슷합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던 정치와 사회가 시끄럽고 천인공노할 사회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내 알 봐가 아니라면서 밀어내고 자신의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방관자가 안옥윤을 통해서 변해갑니다. 문제는 이 하아이 피스톨이 처음부터 끝까지 코믹스런 이미지로 담기다 보니 몰입이 안 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장해야 할 캐릭터인데 너무 가볍게 그려지다 보니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인물임에도 그냥 소비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영화 자체가 코믹이 들어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음에도 최동훈 감독은 유머 코드를 곳곳에 배치합니다. 이는 영화의 소재 자체가 가벼운 소재라면 시너지 효과가 더 나겠지만 암살이라는 영화는 그렇게 쉬운 주제가 아닌 묵직하고 근엄합니다. 그런데 하와이 피스톨이 시종일관 유머를 뿌려되는 것은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만들어 버리네요



잊지 말아야 할 이름 독립군

전지현의 영화입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전지현을 꾸며주기 위한 보조 역할을 합니다. 
전지현 원 톱 영화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지현이 주인공이자 가장 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암살 출정 전에 사진을 찍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독립군들은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멋진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 좋아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의열단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테러리스트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이유는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오로지 목표물만 제거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지탄을 받습니다. 반면 의열단은 목표 인물과 목표물만 제거합니다
작전을 하다가 민간인을 쏴도 되냐고 묻는 말에 김원봉이 안된다고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의열단입니다. 

영화에서 이 의열단을 보내는 사람으로 김구와 김원봉이 나옵니다. 김원봉은 우리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이라서 한국 교과서에서 담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김구는 사회주의자들을 경계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군 지원 수장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두 사람은 강한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협력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영화는 두 거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그립니다. 이는 감독이 바라는 현재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영화 <암살>은 독립군의 거룩함을 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죽여서 세상이 변하지도 않는데 왜 암살을 하냐고 묻는 하와이 피스톨에 안옥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이 대사는 명대사입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래가 암울하다고 해도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저항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독립에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미군의 원자폭탄 때문에 대한민국은 외세에 의해 독립이 됩니다
하지만 이 독립군들의 행동을 우리는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과서에 친일파들이 아닌 일제에 저항한 독립군을 적으면 이 사람들을 본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안옥윤 같은 독립군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면 우리는 과거 인물 중에서 누굴 따라야 했을까요?  
비록 우리가 독립군이 될 수는 없어도 어떤 것이 옳고 바른 행동인지를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바로 독립군들이 했습니다. 

여전히 한국은 식민 사회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자주 보다는 외세의 의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독립군의 기본 정신은 저항입니다. 세상에 저항하는 그들의 행동이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암살>은 그 부분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다만, 치열함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

전체적으로 볼만한 영화이지만 아쉬움도 꽤 많은 영화입니다. 개연성 없는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흐르지 못했지만 잊혀져가는 독립군의 존재를 다시 부각 시켜준 점은 꽤 좋네요. 비록 그게 광복 70주년 기획 영화라는 손가락질이 있다고 해도 그 손가락질을 넘어서는 그런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개연성 없는 캐릭터들이 각개 전투를 하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