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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사진과 기억을 소재로한 사진학개론 같은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by 썬도그 2015.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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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을 보면서 이정재의 변한듯한 목소리가 약간 거슬리면서도 이정재의 옛 모습이 많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미소가 참 아름다운 배우였던 이정재. 미소에 낀 장난기가 발동할 때 남자인 나도 반해버리게 하는 힘이 있는 배우가 이정재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에어시티'부터 목소리를 일부러 허스키하게 내려는 모습이 거북스러웠습니다. 

이정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행동이 매력인데 폼 잔뜩 잡고 목소리를 까는 모습은 영 어울리지 않네요. 
이정재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한 영화에서 멈췄습니다. 

이정재를 찾다가 장진영 때문에 가슴이 아려온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이 영화를 예전부터 보려고 했습니다. 사진동아리가 배경이 된다는 말에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더군요. 
이정재의 필모를 뒤지다가 창 밖에 내리는 비가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드디어 비 오는 밤에 봤습니다. 

보려고 한 두 번 째 이유는 장진영 때문도 있습니다. 이 곱디고운 배우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 

 

많은 분들이 이은주와 함께 장진영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고요. 자연스럽게 장진영 필모그래피를 봤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장진영은 반칙왕과 청연 밖에 없네요. 본 영화가 딱 2개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리워하게 만든 이유는 선해 보이는 얼굴 때문이었을까요?이 세상에 없는 젊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른 영화들보다 좀 더 애틋함이 있습니다. 세상에 없는 사람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비 오는 밤, <오버 더 레인보우>플레이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진수의 사랑 찾기

영화가 시작되면 비 오는 날 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진수(이정재 분)가 보입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버스를 타려고 하자 차의 시동을 걸고 그 버스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이 차 옆을 들이박게 되고 진수는 부분 기억 상실증에 걸립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는 많았죠. 솔직히 여기까지 봤을 때는 이 영화 참 유치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만 흔하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말끔하고 산뜻하며 아름답습니다. 

교통사고 후에 몇몇 중요한 핵심 기억이 사라진 진수는 친구 앞에서 말 실수를 하는 등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병원에 찾아갔더니 IMR현상이라면서 아주 중요한 기억을 뇌가 복구하는 호전 반응이라고 하네요. 기상캐스터인 진수는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특정 기억과 몇몇 중요 기억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 중요 기억이란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에 대한 기억입니다. 교통사고 후 보험회사가 차에 있던 물건을 택배로 보내왔는데 그 택배 안에 창가에 있는 한 여인의 실루엣만 보이는 과다 노출된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 뒤에는 94. 햇살의 흔적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진수는 93학번으로 대학 사진 동아리 '메모리즈'의 회원이었습니다. 사진을 들고 동아리 동기들에게 물어보면서 그 사진 속 인물이 누구 인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사진 속 주인공을 찾다가 오랜 만에 만나게 되는 동아리 동기와 후배를 다시 만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여인이 진수가 사랑하던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수가 학창 시절에 꽁꽁 숨겨둔 무지개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여인입니다. 이 추억의 사랑 또는 현재 진행형인 짝사랑 찾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은 동기인 연희(장진영 분)입니다. 

영화는 이 진수가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관객에게 그 진수의 무지개가 누굴까 계속 호기심을 유발하죠. 하지만 영화를 좀 본 분들은 그 무지개가 누구인지 대번에 맞출 수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봐도 정답을 알 수 있죠.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는 결승선에 누가 1등으로 들어올지 대부분이 초,중반에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답을 알고 봐도 재미있는데 그 이유는 정답을 풀어가는 과정이 꽤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고 깔끔합니다. 좋은 영화는 결말을 알고 봐도 재미있잖아요. <오버 더 레인보우>가 그런 영화입니다. 

사진동아리에 대한 추억을 돋아나게 한 영화

어떻게 보면 그냥 평범한 로맨틱 멜로 드라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진동아리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진수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93년 94년 동아리 활동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풋풋했던 진수의 추억을 꺼내 놓습니다. 

동아리 방에서 생일 파티를 하던 모습이나 동아리에서 연애하지 말라고 하는 선배 그리고 암실 작업의 재미와 M.T가서 찍은 단체 사진 등등 제 청춘의 큰 추억이었던 사진동아리 활동하던 시절이 수시로 이중 인화가 되네요.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후배가 렌즈 캡도 벗기지 않고 사진 찍는 모습에 진수가 렌즈 캡을 벗겨주는 모습과 기상캐스터가 되어서 사진과의 인연을 끊어 버린듯한 현재의 진수가 기억을 찾으러 갔다가 후배 카메라를 렌즈 캡도 벗기지 않고 카메라 노출 탓을 하는 모습은 제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카메라를 잡고 사진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삶을 살고 있지만 졸업 후 취직한 후 한 때는 사진과 담 쌓고 살았습니다. 별거 없는 한 장면이지만 순간 그 한 장면에서 제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영화 속 시대 배경과 제 사진동아리 활동 시기가 겹쳐서 더 몰입하고 봤네요. 사진동아리 동기 중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까요? 가끔 사진은 찍고 살까요? 사진 찍으면서  암실의 역한 현상액 냄새는 기억할까요?

전체적으로 사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은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좀 아쉽지만 사진과 기억에 대한 연결은 매끈하게 잘 담고 있습니다. 사진동아리 출신들이라면 이 영화 꼭 봐야 합니다. 아니 동아리 활동을 한 분들에게는 추억을 봉인해제시킬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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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의 기억과 연희의 기억을 이중 인화해서 기억을 완성하다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서 근무하는 연희가 기억을 분실한 진수를 서포트 해줍니다. 사람의 정체성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기억입니다. 진수는 자신의 기억으로만 자신의 과거를 기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하고 살죠. 그러나 자신의 기억과 함께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내가 덮어지면 나의 기억은 더 객관화됩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억에 보조를 하고 첨언을 해주고 자신들이 바라본 내 모습을 말해주면 나는 좀 더 객관적이 될 것입니다 

진수의 과거의 기억은 진수의 기억으로만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수를 옆에서 바라본 친한 동기였던 연희의 기억이 덮어집니다. 연희가 바라본 진수는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생각할 때 입 다물고 볼에 힘들어간다는 말을 해줍니다. 
진수의 기억에 연희의 기억이 이중 인화되면서 진수의 과거 또는 과거의 진수의 모습은 좀 더 선명해집니다. 

지하철 유실물센터에서 근무하는 연희는 그렇게 진수의 기억을 좀 더 객관적이고 선명하게 해줍니다. 

사진을 통한 사랑 복원기 <오버 더 레인보우>

영화를 보면서 2개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전국의 중년 남성들을 울먹이게 했던 <건축학개론>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테러>입니다. 건축학개론이 떠오르는 이유는 30대가 된 두 주인공이 20대 초반의 풋풋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이 주요한 소재라서 여러모로 참 비슷합니다. 게다가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인 것도 비슷하죠. 다만 은유나 스토리를 풀어가는 힘은 <건축학개론>이 좀 더 좋네요. 그러나 <오버 더 레인보우>도 꽤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 <러브레터>와 비슷한 점은 기억의 복원 과정입니다. <러브레터>에서 이름이 같아서 놀림을 당했던 후지이 이츠키(여)가 후배들이 건내 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통해서 후지이 이츠키(남)가 자신을 짝사랑 한 것을 알게 됩니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진수가 군대 가면서 떨어트린 수첩 맨 뒤에 꽂혀 있던 필름을 통해서 진수가 대학 내내 가슴앓이를 한 여인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노출 과다의 사진으로 시작한 호기심이 자동차 사고 직전까지 짝사랑을 했던 여인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켜줍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찾아낸 기억에는 그때의 감정까지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가 스스로 기억해 내지 않으면, 그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기억에 의존하는 감정일 뿐이지
그때 느낌, 순수한 감정, 그 자체는 아니니까"
-진수의 대사-

주변 사람들이 건네주는 진수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찍힌 사진들은 초점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 기억들은 자신이 느끼던 당시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단지, 내가 무슨 행동을 했다라는 증명만 할 뿐이죠.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속 피사체 중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피사체가 없으면 그냥 증명 사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건조한 사진은 나에게는 무의미합니다. 설사 그 사진에 내가 있다고 해도 큰 관심이 없습니다

감정이 깃든 사진은 내가 찍힌 사진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내가 찍은 사진입니다. 진수의 수첩 맨 뒤에 있던 그 사진은 진수가 아닌 진수가 찍은 진수가 사랑하는 피사체가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사진학개론 같은 영화입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지만 사진을 매개체로 추억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아주 아름답고 상큼하게 담고 있습니다.특히 장진영의 빼어난 미모는 자체 발광 그 자체네요. 또한, 이정재의 풋풋한 새내기 연기와 미끈한 웃음은 여심을 자극할 정도로 아름답네요. 두 아름다운 피사체가 한 프레임에 자주 들어오니 기분이 수시로 노출 오버가 되네요. 

비 오는 날 보면 더 좋은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빗소리를 들으면서 본 <오버 더 레인보우>는 유난히 비가 오는 장면이 많습니다. 차 사고가 나는 장면도 사랑이 엇갈리는 순간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2002년 작품인데 이 2002년에는 엄청난 영화들이 꽤 많이 나왔네요. 너무 좋은 영화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면 다 소화하기 힘듭니다. 당시 이 영화는 흥행에 큰 성공을 하지 못했지만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꽤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입니다. 

장진영의 아름다움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그래도 사진처럼 영화에서 장진영은 살아 숨 쉬고 있네요. 후리지아 같은 장진영의 매력을 가득 느낄 수 있는 비 개인 오후의 무지개 같은 영화입니다.

"동아리 왜 들어왔어?"라는 질문에
'너 때문에'라는 대답을 속으로만 분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40자평 : 기억을 찾아 떠나는 추억 여행 끝에 만난 무지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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