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사회인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조선의 계급 사회로 진행 되는 듯 합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신분 상승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금수저를 물고 죽게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기업도 지난 15년 간 1세대 창업자가 매출 1조원을 넘는 회사는 웅진과 네이버의 NHN밖에 없다고하죠. 돌아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들 이름들 그 회사들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 창업자가 있나요? 다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 운영하고 있죠. 그것도 대부분이 그룹입니다.
외국인들이 놀래요. LG와 삼성은 아파트도 만들어? 그들에게는 가전회사로 알려진 회사인데 아파트를 만드는 모습에 의아해하죠. 생각해보세요. 애플이 미국에서 애플 아파트 사업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죠. 그러나 한국은 전혀 이상한 게 없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그룹화는 부실한 계열사가 나타나면 잘나가는 다른 계열사가 후하게 지원을 해줘서 서로의 부실을 감쇄해서 부실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렇게 대기업 계열사가 모두 부실해지면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면서 정부는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하죠.
그렇게 한국의 대기업은 정부의 두둑한 지원을 받으면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정권 때 계열사 간의 지원이나 기업이 금융업을 하지 못하는 금산분리를 했지만 이명박이라는 친기업정권이 금산분리의 빗장을 열었습니다.
펜택은 중소기업입니다. 그것도 오로지 통신기기만 만드는 회사입니다.
90년대 초 무선호출기와 무전기를 만들던 회사가 휴대폰 시장이 열리자 현대 큐리텔을 인수한 후 본격적으로 휴대폰 제조를 합니다. 당시는 이통사가 휴대폰을 직접 만들 정도로 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의 제조사는 삼성전자, LG전자 그리고 팬택만 남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야 중장년들의 종교와 같은 브랜드라서 특별한 광고를 안 해도 대충 만들어도 잘 팔립니다. 그러나 LG전자와 팬택은 팬덤 문화가 없어서 냉정하게 평가를 받습니다.
2011년 ~ 2012년 사이 LG전자는 팬택에 밀렸었습니다. 매분기 스마트폰 사업에서 큰 실패를 보면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봅니다. 그러나 LG전자는 큰 기업입니다. 바로 1조원을 유상증자로 끌어 모으고 이 돈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등 계열사를 총 동원해서 G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서서히 팬택을 따라 잡았습니다.
팬택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팬택은 해외 판매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폰을 맘대로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SKT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스마트폰을 제조해야 하는 것도 많았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통사와 맞짱을 뜰 수 있지만 팬택은 이통사가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저렇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그렇게 만들어서 납품을 해야 했습니다.
작은 회사의 한계죠.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던 팬택은 작년에 2차 법정관리 상태가 되더니 결국은 인수자가 나오지 않아서 매각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으 사람들의 바람과 다르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팬택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암동에 갔다가 팬택이 생각났습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팬택 빌딩이 있습니다.
1층에는 팬택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가장 슬픈 사진전 중 하나가 아닐까요? 팬택 직원들이 자신들의 지난 추억을 담으면서 팬택에 대한 마지막 애정을 담고 있는 사진전입니다.
팬택 사진전은 구성원, 가족, 제품, 고객이라는 별들과 함께 지난 24년간 빛낸 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은 액자가 빼곡하고 가지런하게 걸려 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 지금까지 팬택 이름으로 나온 휴대폰과 스마트폰 사진이 가득하네요.
팬택하면 어떤 이미지가 드세요. 전 가성비입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무척 좋은 제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나 저 같이 브랜드 파워보다는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실용주의자들이 좋아했죠.
A/S가 좋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이걸 회복하지 못한 것이 패착 중에 하나였는데 그것만 빼면 제품은 꽤 좋은 것이 많았습니다. 내가 산 최초의 카메라 폰도 팬택 제품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혁신이었습니다. 윤도현이 광고를 한 위 이미지 위 가운데 제품은 혁신 그자체도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캠코더 모양의 핸드폰은 현신 그 자체입니다. 이거 말고도 혁신적인 기능이 들어간 제품들이 꽤 많았습니다.
스마트폰 쪽에서도 가장 먼저 메탈폰인 베가 아이언을 만들고 지문 인식 기능을 최초로 시도 하는 등 꽤 다양한 혁신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팬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지난 2015년 5월 26일 벤처 신화가 무너졌습니다. 솔직히 이 무너짐 뒤에서 박병엽 팬택 전 부회장은 웃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왜냐하면 박병엽 전 부회장이 팬택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이 지분으로 다른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팬택은 무너졌어도 박병엽은 재기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뭐가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런 뉴스를 보니 기분이 좋지는 못하네요.
팬택 직원들은 5월 27일 1,200명의 팬택 직원 이름이 들어간 마지막 눈물의 광고를 냈습니다. 자발적으로 낸 돈을 모아서 전자신문에 하단 광고를 냈는데 전자신문이 팬택의 마지막 광고를 무료로 실어줬다는 훈훈한 기사를 봤습니다.
눈물나는 사진전이지만 사진 속 팬택 직원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야유회에서 모임에서 웃고 있는 그들의 환한 웃음이 눈에 밟히네요
팬택의 팬이 보낸 베가 시리즈를 보면서 샤오미처럼 미펀같은 팬덤 문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샤오미는 팬덤 문화로 대성공한 기업입니다. 팬택도 좀 더 팬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하고 제품 제작에 팬의 의견을 적극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다 지난 일이고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아이리버 밖에 없어서 쉽지는 않았겠죠
팬택의 아픈 사연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편지를 보내왔네요.
기업이 30년 이상 지속하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은 30년 지나서 100년도 너끈하게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30년을 지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국은 대기업과 대기업 하청 업체만 있는 구조로 변했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대기업과 대기업 하청 업체만 있는 나라. 괴물 같은 나라죠. 그 괴물화의 한 단면이 팬택의 매각이 아닐까 하네요.
감상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상적이고 싶습니다.
팬택 같은 기업이 무너지면 어떤 중소기업이 한국에서 견딜 수 있겠습니까?
포스트잇 나무 속 문장들이 또박또박 눈에 들어옵니다.
팬택이 무너진 자리에 희망이 피어날까요? 아닙니다. 그 땅에는 대기업이 불도저를 몰고와서 대기업 건물을 지어 올릴 것입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 갈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대기업에 살고 있습니다. 올해 본 사진전 중에 가장 슬픈 사진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