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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컬러사진술 오토크롬 기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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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컬러사진술 오토크롬 기법

썬도그 2015. 5. 3. 13:11

1826년 니엡스는 석판면에 라벤더유에 아스팔트를 녹인 감광제를 칠한 다음 말린 후 원고를 포개놓고 햇빛에 노출 시켰습니다. 이 석판면을 약액으로 씻으면 감광(빛을 받은 부분)은 녹지 않고 미감광부분(빛을 받지 못한)부분만 녹아내리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이 감광제를 석판면 대신에 유리판 그리고 다시 금속판인 동판에 올리는 방법을 개발하고 1826년 최초 최초의 사진을 개발합니다. 


<1826년 니엡스가 촬영한 세계 최초의 사진>

위 사진은 니엡스의 창문 밖 풍경을 촬영한 사진으로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이 아닌 그냥 빛을 노출 시키는 방식이여서 장시간 노출 시켜야했습니다. 필름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감광제가 발라진 필름 같은 것이 카메라보다 먼저 개발이 되었습니다. 

그럼 세계 최최의 컬러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요?


<1861년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촬영한 세계 최초의 컬러사진>

위 사진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1861년 리본을 촬영한 세계 최초의 컬러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맥스웰과 사진 잡지인 <포토그래픽 노츠>의 편집자 '토머스 서튼'의 실험결과로 얻어진 사진입니다. 

두 사람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세계 최최의 컬러사진을 촬영합니다. 빛의 3원색인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필터를 사용해서 개별적으로 촬영한 후에 그걸 합치면 컬러사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빨간색 필터, 초록색필터, 파란색 필터를 사용해서 촬영한 사진을 합쳐서 위와 같은 컬러사진을 만듭니다.

이를 가산 혼색이라고 합니다. 이 기술은 인쇄술에서 많이 활용하죠. 옵셋 인쇄가 이런 가산 혼색을 통해서 컬러 인쇄물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그 복잡성 때문에 컬러사진을 대량 생산하는 컬러사진 프로세서가 되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음화를 주황색, 초록색, 보라색에 빛을 노출시켜서 세 차례에 걸쳐서 촬영한 감산 혼색 사진술도 1860년대 후반 '루이 뒤코 뒤 오롱'이 개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였습니다. 

컬러사진은 1860년대에 최초로 선보였지만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흑백사진과 달리 감광한 컬러사진을 정착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정착되지 못하고 오래 보관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빨간색을 재현할 방법이 없어서 초록색과 오렌지색을 혼합해서 빨간색을 재현했기에 컬러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미흔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가장 오래된 컬러사진들은 1907년 이후 사진입니다. 1907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07년에는 획기적인 컬러사진술인 오토크롬 프로세서가 발명됩니다. 


이 오토크롬 프로세서(Autochrome Process)는 1903년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했습니다. 이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잘 아는 이름이죠. 세계 최초의 영화인 '기차의 도착'이라는 영화를 제작한 형제이기도 합니다. 뤼미에르 형제는 이후에 3D 영상물도 제작하는 등 영상과 사진에 엄청난 혁신을 선보입니다. 그래서 이 형제를 발명가라고 평가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뤼미에르 형제는 인화에 가산 혼색 기법을 사용한 감광판으로 사용할 유리판 위에 주황색과 보라색, 초록색으로 염색한 뒤에 골고루 섞은 고운 녹말가루를 뿌려서 일정한 두께의 층을 만든 뒤에 그 위에 감광물질을 발랐습니다. 

감광물질을 바르지 않은 쪽을 카메라 렌즈 쪽으로 향하게 한 후 감광물질이 발라진 유리판을 카메라에 끼워서 빛에 노출 시켰습니다. 이때 3가지 색으로 칠해진 녹말가루가 섬세한 필터 역할을 합니다. 



맥스웰은 컬러사진이 빠른 시간에 빛의 3원색으로 된 필터를 이용해서 3장의 사진을 찍어서 가산혼합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면 뤼미에르 형제의 오토크롬 방식은 단 한 장의 사진에 녹말가루에 필터를 입혀서 가산혼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도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 노출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찰칵하고 찍히는 것이 아닌 노출하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오토크롬 프로세서로 제작한 컬러사진은 1930년대까지 사랑받는 컬러사진 인화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간편하고 싼 가격에 촬영할 수 흑백 카메라와 흑백 인화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오토크롬 기법으로 촬영한 사진이 2천만 장이 넘습니다. 이 오토크롬이라는 컬러사진의 보급을 누구보다 환영한 사람들은 사진을 그 자체로 예술로 인정 받고 싶어했던 '사진분리파'들입니다. 당시는 사진은 예술로 인정 받지 못했고 미술의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진들이 미술을 모방하는 회화주의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일명 살롱 사진이라고 하죠. 미술과 같을 필요가 없음에도 뛰어난 조형성이나 구도만을 추구하는 빛으로 그리는 그림 같은 시선으로 사진을 바라봤습니다. 이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사진 분리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림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거부하고 사진 그 자체로 예술로 인정 받길 원했습니다. 이렇게 사진 자체만으로의 매력을 찾던 와중에 오토크롬 기법을 이용한 컬러사진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게 됩니다. 








위 사진은 영국 기술자인 Mervyn O'Gorman이 자신의 딸과 가족을 오토크롬 기법의 컬러사진으로 1913년에 촬영한 사진들입니다.1903년에 개발된 오토크롬 기법이 상용화 된 것은 1907년 프랑스 육군의 의뢰에 의해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이 오토크롬 기법으로 촬영한 컬러사진은 붉은색이 유난히 더 붉습니다. 붉은색에 대한 민감도가 높습니다. 큰 조리개 값을 사용했는지 자연스러운 아웃포커싱이 최근에 촬영한 사진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수십 년 동안 컬러사진을 도맡았던 오토크롬은 코닥의 코다크롬이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코다크롬은 오토크롬과 달리 세계 최초의 컬러필름이었습니다. 오토크롬은 롤필름이 아닌 유리판 위에 감광물질을 바른 것이라서 1장 찍고 판을 갈아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롤필름은 카메라에 넣고 여러장을 촬영할 수 있는 편의성이 좋죠. 코닥은 흑백 롤필름을 넘어 코다크롬이라는 컬러롤필름을 만듭니다. 

이 코다크롬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졌지만 가격이 비싸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2차 대전이나 한국전쟁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흑백사진이고 가끔 컬러사진인데 그 가끔 컬러사진이 이 코다크롬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컬러사진 홍수시대, 그 최초와 상용화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컬러사진은 색정보를 넣기 때문에 보다 생동감 있는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인물 사진은 인물의 피부색에 홀리지 않기 위해서 색 정보가 없는 흑백 사진이 인물의 표정과 얼굴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인물 사진 이외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컬러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 도서 사진을 뒤바꾼 100가지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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