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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한국 사회

by 썬도그 201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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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제품이 가장 좋을 듯 한데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백마엘 렌즈는 어떤가요?"
"백마엘이요? 백마엘이 뭔가요?"
"아니 사진 관련 블로그 운영하면서 그것도 몰라요?"
"네 제가 사진은 좋아하지만 카메라는 잘 모릅니다. 제가 쓰는 카메라만 잘 알지 안 써본 제품은 잘 몰라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실망이네요"

......

가끔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어떤 카메라가 좋은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간판이 <사진은 권력이다>이고 사진에 관한 글들을 많이 쓰다 보니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많은 줄 아는 분들이 있죠. 뭐 그렇다고 아예 까막눈은 아니지만 제가 카메라 애호가는 아니라서 그냥 평이하게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모든 카메라를 다 알고 있고 장단점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용도에 따라서 제품을 추천하는 정도는 합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이 사람이 그렇게 안 봤는데 이것도 몰라요? 전문가라면서 이것도 몰라요? 식으로 쳐다보거나 그런 표정을 하고 대합니다. 뭐 이미지와 실제의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가볍게 넘기기는 합니다.



1977년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타미스 윌슨이라는 미국 백화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합니다. 백화점 안에 팝업 스토어를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방문객에게 4종류의 스타킹을 체험해 보고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을 골라보라고 했습니다.

이에 방문객들은 각자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스타킹을 선택한 후 이 제품이 더 색이 좋다든지 이 제품이 더 부드럽다든지 등의 나름대로 좋은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4종류의 스타킹은 같은 제품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같은 제품임에도 한 가지 제품을 선택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좋다고 했을까요?

이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것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하는데 몰라도 아는 척 하는 행동들이 꽤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기억을 조작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렇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는 뒤에는 사회적 강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합니다. 그 강박이란 무식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이죠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이 강한 나라입니다. 때문에 20대 80%가 대학생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육열이 높은 이유는 학력이 높으면 더 잘살기 때문이니다. 그래서 학력이 낮으면 움츠려들고 학력을 숨기려고 합니다. 또한, 자격지심도 심해죠. 

"이게 다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그래"라는 소리를 하죠

반대로 나보다 가방끈이 긴 사람에게는 동년배임에도 선생님이라고 하고 나이가 적어도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제가 가장 듣기 싫은 호칭이 사장님과 선생님인데 우리는 상대가 갑 포지션에 있으면 선생님 또는 사장님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왜 그리 저자세를 보이나요? 그게 보신의 처세술이라고 하지만 가끔 보면 그런 호칭 하나 하나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학력이 짧음을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합니다.  이게 다 학력 지상주의의 결과물이죠. 
가방끈이 길어도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는 당당하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위신 때문에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고 몰라도 아는 척을 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무슨 정답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죠. 자신의 경험이 진리는 아닙니다.  백조만 봤던 사람이 백조는 이름처럼 하얂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엔 검은 백조도 있습니다. 진실과 경험의 차이죠. 따라서 내 경험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 것은 말 그대로 경험이고 하나의 참고이지 그게 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인식 때문에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었을 때 그 길을 잘 모르면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 낫지 어설프게 길을 알려줬다가 오히려 더 고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길 묻는 거야 잘못 알려줘도 큰 피해가 없지만 회사 경영을 하거나 큰 선택을 해야 할 경우나 잘못 된 선택과 판단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질문도 잘 하지 않습니다. 질문 한다는 자체는 내가 그걸 잘 모른다는 자기 고백이니까요. 그럼 우리는 그 무지를 비웃습니다. "그것도 몰라?" 모를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안 물어보고 자기 멋대로 판단해서 더 큰 일을 저지르는 것보다 당당하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과 괄시가 날아듭니다. 실제로 사회 초년생때 참 이런 일들을 많이 들었죠. 그 나이 되도록 그것도 몰라? 이런 것도 몰라요? 아니 누군 태어나서 처음부터 알았나요.  나이들면 뭘 그걸 꼭 알야 합니까?

이런 시선이 만연하니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 할지도 모른다고 위협 운전을 하죠. 참 못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기는 알고 남이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텃새를 부리는 인간도 한국엔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용산 용팔이죠. 
그래서 한국에서 물건 구매 할 때는 모른다고 절대로 티를 내서는 안된다고 하잖아요. 

모르는 것은 배워서 알면 됩니다. 그건 죄가 아닙니다. 
죄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지식의 배임 행위입니다. 알면서도 안 가르쳐주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려주면 자신을 밟고 올라간다고 생각하기에 후임에게 노하우를 다 전수하지 않고 결정적인 것은 꽉 쥐고 있고 실제로 이런 처세술로 사는 회사원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인간들도 참 문제입니다. 아는 척은 당장 먹힐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같이 모르지만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식자가 되니까요. 그러나 그 속임수는 금방 들통납니다. 아는 척 했다가 망신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다만, 그런 사람들이 직장 상사가 갑이면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맞장구 쳐줘야죠

무지와 무식을 죄로 여기는 사회, 모르면 알려주기 보다는 모르는 것을 이용해서 갑의 위치로 올라가려는 사회, 이게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아닐까요?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유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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