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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2차대전 뒤 숨은 이야기가 전율을 느끼게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by 썬도그 201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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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은 영국,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독일과 일본군을 물리친 서사적인 역사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비화들이 꽤 많은 것이 2차 세계대전이고 그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비화가 있습니다. 바로 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교수 이야기입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이 앨런 튜링 교수의 비극적인 삶을 흥미로운 스토리로 담은 영화입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24시간마다 바뀌는 해독이 불가능한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이자 복호기인 에니그마의 암호를 풀기 위해 앨런 튜링을 비롯한 영국 내 암호 전문가들을 모아서 수년 동안 연구를 합니다. 

폴란드 첩보원이 독일에서 구한 에니그마 장비가 있지만 에니그마 장비가 있다고 바로 해독이 가능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배선 상태와 회전자의 배열 규칙을 알아야만 암호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암호 자체는 아주 간단한 치환식 암호입니다. 

예를 들어서 ABC라는 글씨를 전송할 때 ABC로 전송하지 않고 +3이라는 규칙으로 DEF를 전송합니다. 그럼 상대방이 아! +3이니까 DEF를 알파벳 순서에서 ABC를 +3으로 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DEF를 ABC로 인식합니다. 문제는 이 규칙이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다중치환방식이라고 하는데 이 수 많은 규칙이 무려 1해 5900경에 달합니다. 

이 수많은 규칙을 다 해독하려면 2천만년이 걸립니다. 문제는 이걸 24시간 아니 오전 6시부터니까 18시간 안에 해독을 해야 합니다. 이에 영국군은 암호 전문가와 체스대회 우승자 등을 끌어 모아서 해독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절대로 해독이 될리가 없습니다. 어쩌다 몇 단어를 해독했지만 앨런 튜링은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2번은 맞는다면서 그런 식으로 몇개만 맞추는 것이 아닌 전체를 해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영화는 튜링 교수의 괴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이 암호를 푸는 과정을 매끄럽게 보여줍니다. 
튜링 교수는 사회성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같이 점심 먹자고 해도 딴소리를 하는데 절대로 암호해독 팀 동료들과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미는 전혀 없는 사람으로 모든 것을 계산적이고 수치적으로 생각합니다.

수학만 하다가 머리가 고장난 것일까요?
다른 팀원들은 암호 해독을 하는데 전력투구를 하지만 튜링은 기계를 이기려면 기계로 이겨야 한다면서 크리스토퍼라는 튜링 머신을 온갖 핀잔과 구박과 협박에도 묵묵히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튜링 머신만 만드는 모습에 상관이 튜링 머신 제작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튜링 교수(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처칠에게 편지를 보내서 압력을 넣습니다. 그리고 암호 해독팀의 리더가 되자마자 맘에 들지 않은 팀원을 자르고 그 자리에 크로스퍼즐과 수학을 잘하는 여성  크라크(키이나 나이틀리 분)를 집어 넣습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3개의 시공간을 배치합니다.  먼저 영화는 1951년 튜링 교수 자택에 강도가 침입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강도가 들었지만 그냥 가라고 하는 튜링 교수를 이상하게 여긴 형사가 튜링 교수의 복무 기록을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에 놀라워하고 튜링 교수를 심문실에서 가두어 놓고 튜링 교수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군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영화는 진행입니다. 1939년부터 41년까지 이 독일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이 전반부에 흥미진지하게 펼쳐지면서 동시에 튜링교수가 왜 사회성 없는 삶을 살게 되는지를 유년 시절의 깊은 상처를 보여주면서 후반부에는 튜링 교수 개인적인 비극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정교한 암호처럼 군더더기 없이 척척 잘 들어맞습니다.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하고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에 어느새 전 이 영화에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액션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배경 그림을 넣어서 이들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빈약한 액션을 뛰어난 스토리가 매꾸어 주고 있습니다. 



기계로 만든 암호는 기계가 풀어야 된다면서 기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튜링 교수는 기계에 온 신경을 씁니다.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폭력성을 저주하면서 기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튜링, 그런 그가 크라크를 만나면서 점점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게 됩니다.  인간 종족특성인 거짓말과 농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숨겨진 의도 같은 것도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암호라는 숨겨진 의도를 연구하는 튜링 교수가 암호해독팀원들과 2년을 지내면서 서서히 기계에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주 흐뭇합니다.

반대로 그가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기계가 되어가는 과정의 참혹스러움도 느끼겨지게 되네요
제가 튜링 교수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튜링 교수와 비슷한 생각을 요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점점 인간이 싫어집니다. 이렇게 감정이입까지 하게 되니 튜링 교수의 그 상처까지 세세하게 들어다보게 되네요. 



형사 앞에서 튜링 테스트를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튜링 테스트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엑스마키나'에서 인공지능로봇에게 주인공이 하는 테스트로도 소개 되었는데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기계(봇)인지 사람인지 구별하는 테스트입니다. 

이 튜링 테스트는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나오죠. 
스스로를 튜링 테스트하는 모습과 함께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의 흥미로움 그리고 해독 이후에 더 큰 고통과 개인적인 성소수자로써의 고통 등등이 후반 가득 펼쳐집니다. 제 눈동자가 흔들렸던 부분은 암호 해독 이후입니다. 암호를 해독했지만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종전 후에는 모든 기록을 삭제 해야만 했던 튜링 교수의 저주스런 비극적인 삶에 마음이 너무 먹먹해지더군요. 


2차대선의 승리는 신이 아닌 자신이 했다고 자랑이 아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튜링 교수의 말을 더듬는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한 컴버배치의 연기는 극찬을 해주고 싶네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아르덴에서도 수 많은 연합군의 승리한 작전 뒤에는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한 영국 암호해독팀이 있었고 그들의 노고 때문에 전쟁은 2년 단축이 되고 무려 1,400만 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사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전신인 튜링 머신을 개발한 앨런 튜링 교수의 비극적인 삶과 그의 천재성과 고통, 그리고 그에게 가한 매몰찬 사회의 학대가 영화 내내 마음을 움직입니다. 가족영화는 아닙니다. 또한, 이런 2차대전의 비화를 잘 알지도 궁금하지도 않는 분들에게는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호에 관심 많고 2차대전 이야기에 관심 많은 분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를 선사한 영화가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기회가 되면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매끈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무척 좋네요. 이미테이션 게임은 튜링 교수의 논문 제목입니다. 컴퓨터의 사고방식은 사람의 사고 방식을 모방한다고 해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 지었는데 언젠가 컴퓨터가 만든 인공지능체가 인간과 동일한 사고방식과 언어를 가지게 된다면 인류의 두뇌는 무한해 질 것입니다.

영화 'HER'가 현실이 된다면 인간의 숫자는 무한대가 될 것입니다. 인간에게 받은 고통으로 기계라는 파라다이스로 피신한 튜링 교수의 쓸쓸한 뒷모습에 긴 한숨을 내쉬게 하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별 4개를 주지만 개인적 취향과 달리 대중적인 인기는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추천합니다.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가 작품상을 탔으면 하는데 워낙 쟁쟁한 작품이 많아서 탈 확률은 높지 않네요. 그럼에도 응원합니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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