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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기술입니다. 예술은 기술로 부터 큰 영향을 받습니다. 성당 천정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을 그리게 된 것도 다 기술의 발전 덕분이죠. 기술은 예술가들에게 머리 속에 있었던 상상을 쉽게 구체화 시키는 도구로써 큰 역활을 합니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은 예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에서 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예술 카테고리가 미디어 아트가 있습니다. 최신 IT기술을 적극 활용해서 예술의 활동 영역을 늘리고 있네요. IT기술과 예술을 모두 좋아하는 저로서는 <금천예술공장>에서 매년 개최하는 테크놀러지를 적극활용하는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는 꽤 좋은 전시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전시회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분관에서 2월 1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내일까지 전시를 하는데 부리나케 보고 왔습니다. 


로우테크놀로지 : 미래로 돌아가다 (서울시립미술관)

가성비(?)가 가장 좋은 미술관은 서울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고급진 그리고 특이한 전시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무료 전시회가 많아서 좋습니다. 예전에는 고흐 그림전시회 등의 값 비싼 유료 전시회가 꽤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대중지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전시회를 제거 했습니다. 

한 편에서는 흥행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런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로우테크놀로지 : 미래로 돌아가다. 과연 어떤 전시회일까요? 테크놀러지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 같은 전시회 같기도 하고요. 입구의 전시회 메뉴얼을 읽어보니. 비디오 아트, 미디어 아트 등을 전시하는 전시회라고 적혀 있네요. 




입구에 들어선 후 가장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작품은 이병찬 작가의 작품입니다. 전시회를 보니 한국의 미디어 아트나 비디오 아트 등 기술을 적극 활용한 테크놀로지 작가들의 전시회가 가득 했습니다. 예전 작가와 요즘 작가 전시 작품을 모두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병찬 작가의 전시물은 거대한 해파리 같았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쉬는 듯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 하면서 숨을 쉬는 모습이 생각나네요. 


전시 작품은 놀랍게도 1회용 비닐봉투를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광섬유로 촉수를 표현했ㄴ느데 제품 완성도가 대단하네요. 
어떻게 보면 쓰레기들이죠. 산업화의 황태자인 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비닐 봉투, 우리는 비닐이라는 물질이 주는 유용성에 하루 하루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썩지 않는 비닐로 인해 환경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비닐이 발명 되지 전과 후가 산업화 이전과 이후로 여길 정도로 우리는 플라스틱 중독 사회가 되었습니다. 

양산과 대량 생산의 대명사가 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우리에게 축복과 고민을 동시에 주는 물질입니다.




<정지현의 Skin Poster>

정지현 작가의 Skin poster는 3D아바타 스킨을 뒤집어 쓴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화상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3D아바타 얼굴로 바꿔서 채팅하는 기술이 소개 되고 있는데 그 기술을 이용했네요. 3D아바타는 유저의 얼굴을 분석해서 표정까지 따라하는 3D아바타입니다.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감정 표현을 깊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익명과 연결 및 소통 참 이율배반적인 관계입니다. 익명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심정. 현대인의 새로운 고민 아닐까 하네요. 개인을 세상에 보이고 싶지만 동시에 내 개인사가 많이 알려주기는 싫어하는 '샤워실의 바보'가 우리의 모습입니다

 


테크놀로지 연대표에는 백남준을 비롯한 한국의 테크놀로지 대표 작가들가 전시회 등을 연대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미디어 아트가 인기를 끄는데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은 단방향이었지만 
미디어 아트 또는 인터렉티브 아트는 상호 교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관람객에게 참여를 유도하거나  참여를 하면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배경의 메트로폴리스 메타포>

이 작품도 센세이션 했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정육면체는 순간 정지 장면이 아닌 저렇게 공중에 둥둥 떠 있습니다. 바닥에 있는 수많은 팬쿨러들이 바라ㅡㄹ 불어서 정윤면세가 공중 부양하게 만듭니다. 

하루 종일 저렇게 떠 있습니다. 에어 모터 64개의 힘으로 떠 있는 모습이 신기방기합니다.
후기산업사회의 바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후기산업사회와 바람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김태은 작가의 다시 또 그자리, 과자집>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뮤직 비디오 감독인 김태은 작가는 동화 속 한 장면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큰 무한 궤도를 달리는 장난감 기차와 그 속에 헨델과 그레텔에서 본 과자집을 섞어 놓았습니다. 

눈 앞으로 지나가는 장난감 기차는 아이들이 참 좋아할 듯 하네요. 그런데 눈 높이가 성인용입니다. 
쳇바퀴 도는 열차가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부정확하게 퇴근하고 집에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현대인의 삶. 과연 우리는 왜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일까요?

나의 행복입니까? 남의 행복일까요? 가족이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우리는 나를 소비 시키고 있지 않을까요? 
가족이라는 굴레는 가끔 우리를 질식하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업 실패를 비관하고 자식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합니다. 이는 자식은 내 소유라는 숨막히는 가족애에 있다고 느껴지네요. 모성도 지나치면 광끼가 되는 모습을 영화 <마더>가 잘 보여줬듯이 가족애의 숨막힘을 잘 표현한 영화 한 편 나왔으면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한 것이지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타주의에 흐뭇해 하면서 정작 그게 다른 가족을 숨막히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아빠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붕어빵을 퇴근 길에 사들고 가서 자식들이 안 먹는다고 속상해 하기 보다는 자식들이 뭘 좋아하는 지 물어보고 알아보고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진짜 이타적인 것은 아닐까 하네요

그런 순수한 이타주의가 동반 자살을 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될 것입니다.



집과 기차. 우리 삶을 축소해 놓은 듯 하네요




<정성윤 작가의 이클립스>

2개의 거대한 원이 9미터의 레일 위를 달립니다. 달리는데 아주 느리게 달립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보면 멈춰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들. 그것들이 정지 되어 있는지 움직이는 건지는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섣부르게 판단합니다.

우리는 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무 정보도 없이 나무를 보면 무생물처럼 움직이지도 자라지도 않는 것으로 생각하죠. 세상일들이 그렇습니다. 길게 봐야 그 사물이나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데 한 단면과 주워들은 혹은 편견으로 그 사물이나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부류이고 SNS 때문에 더 심해지는 듯합니다. 

말초신경 같이 조건 반사 식으로 반응하는 정보에 현혹되는 나 그리고 우리들.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느리게 판단하고 느리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또 빨리 반응해야 할 것들도 있는데 이걸 잘 구분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박기진 작가의 발견>

계단을 오르면 우물이 있는 독특한 작품인 발견은 아프리카의 두 호수를 연결 시켜주는 작품입니다. 작품 내용은 큰 공감은 가지 않았지만 독특한 점은 아주 좋네요


<신성환 작가의 시시각각>

요즘 한 공간 전체를 CG의 블루스크린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넣어 버리는 프로젝션을 이용한 프로젝션 맵핑 기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 중세풍의 건물 전체를 3D로 스캔한 후 그 외벽 전체를 캔버스로 이용해서 다양한 영상물을 만들기도 하죠

시시각각은 이 프로젝션 맵핑 기법을 이용한 작품입니다.
위와 같이 하얀 페인트 칠만 되어 있는 방안을 



빔 프로젝터가 빛으로 색을 입혀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마치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모습이지만 저건 다 인공 빛인 프로젝션의 빛으로 만들었습니다. 


책장도 이렇게 형형색색으로 빛나게 되는데요. 이런 기술을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원본과 카피본이 무슨 차이일까? 원본이라고 더 효용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단지 브랜드 파워나 잡히지 않는 그냥 이미지 밖에 안 된다면 그게 무슨 큰 가치가 있을까?라고요. 그러나 그게 쉽지 않겠죠.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이 입고 먹고 타고 다니는 브랜드로 판단하니까요. 



<이예승 작가의 CAVE into the cave : A wild rumor>

우리가 인지 하는 이 세상은 실제하는 본질일까요? 아니면 본질과 다른 그림자만 보고 그걸 진짜로 아는 것일까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는 이런 실제와 환상의 문제를 담고 있는 우화입니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동굴 밖의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고 그게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실재가 아닌 실재의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가 실재로 아는 우리들의 우매함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예승 작가는 이 동굴의 우화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림자를 둥근 스크린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랍고 풀들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그림자로 보여지는 저 스크린 뒤에 풀이 있을까요?


그 속을 보면 빔프로젝터와 노트북과 모니터만 가득합니다. 영상을 투영하는 모습이 아주 복잡하네요


<이원우 작가의 My shirt is my shelter>

셔츠 안의 포근함과 버스 정류장 같은 쉴터를 잘 섞은 작품입니다. 거대한 셔츠가 인상적입니다. 


<양정욱 작가의 우리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양정욱 작가는 키네틱 작품을 아주 잘 만듭니다.  이런 정교한 기계장치를 보면 우리 인간도 기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인간이라는 유기체와 기계는 베이스가 다를 뿐 동작 면에서는 비슷하죠. 우리 인간은 우리와 닮은 로봇을 만드는 욕망이 있습니다.  신이 유기체를 만들었다면 우리 인간은 기술을 이용해서 유기체와 비슷한 것들을 만들죠. 

언젠가는 유기체도 기계처럼 조립하고 생산하는 시대가 오겠지만 그때는 생명에 대한 심각한 도덕적인 갈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머니의 폐가 올랐다 내려갔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가운데 전구가 있어서 움직이는 모습을 흔들리는 전구가 그림자를 팽창 시켰다 수축 시켰다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의 폐와 비슷해 보입니다. 금천예술공장과 달리 시립미술관이라서 그런지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운영도 잘 되고 있네요.  이 전시회를 못보고 놓쳤다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다행히 늦었지만 큰 느낌을 받고 나왔습닞다.

실재와 허상을 기계를 통해서 깊게 들이 마신 전시회였습니다. 2월 1일 일요일까지 전시를 하니 기회 되시면 꼭 보세요.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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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02.02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관람한 아트페어 전시회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