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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강남 1970] 욕망의 도시 강남의 탄생 비화를 진중하게 담다.

by 썬도그 201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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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인구 1,000만 명 이상이 사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이 서울이 처음부터 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4대문 안이 서울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서울과 용산 그리고 영등포라는 공업지역이 서울이었습니다. 이는 해방 이후까지 지속되다가 1970년대 초 박정희 군부 정권에 의해 논과 저수지가 가득했던 남서울이라는 새로운 서울을 개발합니다. 그 남서울이 바로 현재의 강남입니다. 
영등포의 동쪽이라서 영동이라고 불리우던 농촌 지역 강남

 

197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경제는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이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구로공단이 생긴 후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넘쳐 났고 서울의 인구도 급속하게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서 박정희 정권은 영등포의 동쪽인 영동(강남) 지역에 거대한 베드타운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반포아파트를 비롯한 수많은 아파트와 구도심인 종로에 있던 명문 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면적 27㎢에 달하는 강남 지역을 개발합니다. 이 개발 계획이 바로 '남서울개발계획'입니다. 

영화 <강남 1970>은 이 1970년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정치권과 결탁한 부동산 광풍을 이용해서 불로소득을 올리던 땅투기세력과 그들이 운영하던 조폭들의 거대한 권력 암투를 진솔하고 진하게 담은 영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알고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강남 1970이 다른 조직 폭력배 영화와 다른 점>

김종대(이민호 분)백용기(김래원 분)은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형제같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종대와 용기는 넝마주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던 판잣집이 굴착기에 의해 헐리고 우여곡절 끝에 조직 폭력배가 됩니다. 

야당 전당대회를 훼방을 놓는 일부터 시작해서 동네 카바레를 관리하는 일까지 주먹을 쓰는 일을 하던 종대와 용기는 70년에 시작한 남서울개발계획이라는 부동산 광풍이자 강남이라는 신도시 개발의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서 부패한 정치인과 추악한 부동산 업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종대와 용기는 서로 다른 정치인 밑에서 궂은일과 주먹을 무기로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꿈인 번듯한 집 한 채와 가난의 서러움을 벗어나고자 고군분투를 합니다. 

가난한 청춘이 깡 하나로 폭력배가 되어서 폭력의 질주를 하는 영화는 이미 수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강남 1970>의 전체 얼개는 이전의 조폭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다른 조폭 영화와 다른 점은 욕망의 활화산인 강남의 분화를 담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조폭영화로만 본다면 반만 보는 것이고 70년 당시의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과 부동산 개발 이면에서 일어난 조폭을 동원한 권력과 이권 다툼까지 다룬 사회 비판적인 요소까지 봐야 오롯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거리 3부작 중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오는 <강남 1970>

 <말죽거리 잔혹사,2004>와 <비열한 거리,2006> 그리고 이 영화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으로 폭력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아주 잘 담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비열한 거리>가 조폭의 삶을 미시적으로 담았다면 <강남 1970>은 거시적으로 담았습니다. <강남 1970>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많은 영화입니다.  싸이도 강남 스타일이기 원하는 서울의 땅값과 권력의 중심축인 강남이 논과 늪과 저수지가 있고 잠실이라는 섬이 있던 70년대 강남이 어떤 힘으로 개발되는 지와 그 개발 과정을 녹여낸 영화입니다. 

강남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인 농민들이 땅 투기꾼들에게 헐값에 땅을 파는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강남 개발에 밀려 원주민들이 쫓겨 나는 모습은 담지 않고 강남이라는 노른자를 서로 먹겠다는 달려드는 조폭과 정치 세력의 모습만 담아서 계급 간의 대결보다는 구역 다툼을 하는 조폭의 시선으로만 담고 있습니다. 다른 두 거리 시리즈와 달리 70년대 군부 독재 정권 당시 사회와 정치 역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고도 매끈하게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판은 잘 짰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가 집중력을 떨어트리다 

 

재료는 아주 좋습니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부동산 불패의 강남이라는 지역의 프리퀄 같은 이야기와 강남의 기승전결을 잘 알고 있는 거리 3부작의 유하 감독, 여기에 인기 많은 한류 스타인 이민호와 연기력 좋은 중견 배우들의 출연까지 판은 아주 잘 짰습니다. 또 하나의 <범죄와의 전쟁>을 기대하면서 봤습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영화 중반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강남 1970>은 가난한 청년인 종대와 용기의 주먹으로 일어서는 조폭의 성장 이야기와 종대의 가족애, 여기에 종대와 용기의 우정 그리고 여당 정치인 사이의 알력 다툼까지 펼쳐집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하게 되면 뛰어나면서도 섬세한 연출력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많은 이야기가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각각의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 초반에는 종대와 용기의 버디 액션 무비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중반부터는 길수 아저씨 가족과의 따스한 가족애를 담은 영화인가? 라고 지켜보면 중후반부터는 본격적인 두 여당 정치인의 알력 다툼이 시작되어서 뒷골목 누아르 영화로 느껴지게 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가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 드네요. 사족 같은 이야기 몇 개는 과감하게 지웠다면 집중력을 키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많이 듭니다. 가족애를 담은 장면만 빼면 강남의 부동산 광풍을 둘러싼 이권 다툼과 조직 간의 대결과 배신 등의 이야기는 합이 아주 잘 맞아서 꽤 볼 만합니다. 
재벌 2세의 이미지가 넘치는 이민호는 미스 캐스팅

유하 감독은 꽃미남 배우를 거리 3부작의 주연으로 배치합니다. 하나의 연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캐스팅된 배우가 권상우, 조인성 그리고 이민호입니다. 권상우는 여리여리한 외모 뒤에 숨겨진 야수성을 잘 보여줬고 조인성도 태권도 선수 출신의 멋진 발차기와 이미지 변신이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민호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라는 재벌 2세의 이미지가 탈색되지 않은 상태로 다가와서 영화 보는 내내 이물감이 들 정도입니다. 영화 초반의 넝마주이 분장을 한 이민호는 너무도 빼어난 외모 때문에 저렇게 잘 생긴 청년이 왜 넝마주이 일을 할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거지꼴을 하고 나와도 거지가 아닌 꽃거지처럼 보이니 영화에 몰입하기 힘듭니다. 이민호가 가진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영화 내내 조폭이라는 느낌보다는 억지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영화 초반에 이민호라는 배우가 가진 도련님 이미지를 한 번 털고 가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쭉 나아갑니다. 이런 이물감은 영화 몰입에 2시간 내내 방해를 주다가 끝나기 20분이 될 때 서서히 이민호 도련님이 아닌 깡패 이민호가 다가옵니다. 마지막 터널 장면에서의 이민호의 눈빛 연기는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좋았지만, 그 20분을 제외한 2시간 동안 이물감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김래원이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자기 역할 이상을 보여주고 몇몇 조연들의 뛰어난 연기가 영화를 흐트러지지 않게 이끌고 갑니다여기에 복부인으로 등장하는 김지수의 이미지도 복부인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연들의 매칭력은 꽤 좋은데 주연 배우의 이미지 매칭력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김종대같이 울분과 에너지가 강한 배우는 양동근이 딱 맞는데 양동근을 캐스팅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민호가 연기를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배우 본인이 가진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주는 아쉬움이 크네요. 

황금 빛 황토 위에 펼쳐지는 강남에 대한 슬픈 연가

미스 캐스팅과 잔소리 같은 필요 없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아쉽긴 해도 <강남 1970>은 후반으로 갈수록 거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사족 같았던 이야기들이 사라지면서 몰입감을 끌어 올립니다. 특히 빗속에서 종대와 용기가 황토물을 튀겨가면서 싸우는 장면은 강남이라는 거대한 욕망의 폭발을 보여줍니다. 

황토물을 양복에 묻힐 때 마다 황금의 옷을 입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내 땅, 내 집 한 채 갖고 싶다던 종대의 욕망은 종대만의 욕망이 아닌 대한민국인의 욕망과 이어지는 공감대를 만듭니다. 2014년 강남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이 강남 밑에 흐르는 강남에 대한 종대가 부르는 슬픈 연가 같이 느껴지네요. 요즘 한국 영화 중에 한 공간을 제대로 담는 영화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홍상수 감독 정도가 한 공간을 유기적으로 잘 담고 있습니다.<강남 1970>은 아쉬운 점도 많고 성긴 부분도 꽤 많지만 강남이라는 공간을  큰 그림으로  담은 그 자체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강남의 개발 과정을 기억하는 중년 분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게는 조폭들 간의 암투 등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강남 개발 이면의 추악한 욕망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강남 1970>은 가감 없이 담고 있습니다.  강남, 그 거대한 욕망의 거리의 뿌리를 진지하게 담은 영화 <강남 1970>입니다. 


40자 평 : 강남 전성시대의 첫 페이지가 어떻게 시작 되는 지를 알려주는 영화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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