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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외국사진작가

몰래 카메라의 원조 사진가 에리히 잘로몬

by 썬도그 201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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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몰래 찍어야 자연스러운 표정이 담깁니다. 그래서 사진작가 최민식은 평생을 몰래 촬영하는 캔디드 기법으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부산 자갈치 시장을 줌렌즈로 몰래 촬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들은 자연스러운 표정이 많습니다. 하루는 그런 시장 상인들의 사진을 전시 하다가 시장 상인의 딸이 전시장에서 사진을 보고 항의를 했고 이에 최민식 사진작가는 사진을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거나 액자체 사진을 줬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초상권에 대한 큰 개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초상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서태지가 자신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사용한 사건으로 소송을 걸면서 크게 부각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90년대 초였죠. 서태지와 아이들 데뷰 초기에 자신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상업적으로 사용한 업체를 고소를 했고 승소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초상권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몰래 카메라는 초상권을 어기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있습니다. 일단! 몰래 찍으세요. 그리고 그 찍은 사진을 몰래 찍힌 모델에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당신을 몰래 찍었다. 이 사진에 대한 초상권 계약을 맺고 싶다고 서류를 내밀고 사인을 부탁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사진으로 인해 수익이 생기면 그 수익의 일부분을 초상권자에게 지급하면 법적으로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최근에 생긴 권리이고 예전에는 초상권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옛 사진작가 사진들 대부분은 초상권이 해결 되지 않고 사용했었습니다



<알프래드 아이젠스테드의 승리의 키스>

20세기 최고의 사진으로 뽑힌 이 승리의 키스 사진도 몰래 찍은 캔디드 사진입니다.
현재 DDP에서 전시 중인 '까르티에 브레송'도 다 몰카 사진들이죠. 그런데 이 몰카는 언제 가장 먼저 찍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에리히 잘로몬' 사진가가 아닐까요?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 1886~1944)


호기심 많은 잘로몬이 저기 있구만!

1931년 파리 주재 프랑스 외무부에서  펼쳐진 리셉션에서  외교관계자들은 에리히 잘로몬을 발견하자 손가락으로 잘로몬을 가르켰고 이 모습을 에리히 잘로몬은 촬영을 했습니다. 

프랑스 외무부장관인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국제연명회의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제연맹회의에는 3가지가 필요한데 외무부장관 몇 명과 책상 하나 그리고 잘로몬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만큼 잘로몬은 국제 회의장소나 정치인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에르마녹스 카메라>

에리히 잘로몬은 경솔한 왕, 메피스토텔레스, 끔찍한 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런 안 좋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에리히 잘로몬이 몰카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사진들은 스튜디오나 단정한 자세로 거대한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치, 정물화나 풍경화를 찍듯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사진이었죠

카메라가 커서 몰래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르마녹스 소형 카메라가 발명됩니다. 
1924년 드레스텐에 위치한 에르네만 공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에르녹스는 실내 같은 어두운 곳에서도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뛰어난 기능성을 적극 활용한 사진가가 에리히 잘로몬입니다. 

이 카메라는 4.5 X 6cm 판을 끼울 수 있는 금속 틀에다가 셔터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무려 1/1000초의 셔터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f/2까지 지원되는 밝은 렌즈는 실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에르마녹스는 라이카 카메라에영향을 줬고 라이카라는 브랜드는 독일 광학 기술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에르마녹스가 나오지전에는 플래시가 지금 같은 번쩍이고 마는 그런 플래시도 아닌 마그네슘 가루를 이용해서 촬영을 해서 실내에서 사진을 찍으면 펑하고 플래시가 터지면  실내에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그런데 에르마녹스는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도 위 사진처럼 쨍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진들은 한결 같이 인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도 사진의 창시자라는 소리도 듣고 있죠. 잘로몬은 자신의 사회적인 인맥을 적극 활용해서 부유층과 지도층의 행사에 참석해서 참석자들을 불쾌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몰래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유명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현재의 연예인 사진을 전문적으로 몰래 찍는 디스패치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에리히 잘로몬은 1928~1933년 사이에 유명인과 정치인을 촬영해서 큰 돈을 법니다. 

그가 몰래 찍은 스냅 사진들은 독일 잡지를 넘어서 그래픽이나 포춘 같은 해외의 유명 잡지에 많이 실리게 됩니다.
남들이 주목하고 싶은 사진을 찍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유명한 피사체를 촬영하는 것입니다. 예쁜 가게, 예쁜 장소 보다 유명인을 찍어서 올리면 사람들이 많이보죠. 그것도 유명인의 놀라운 사생활 사진이면 더 인기가 높을 것입니다. 디스패치가 그렇게 해서 돈을 벌고 있죠. 요즘에는 카톡 메시지도 추적하나 보더군요. 유명인의 사생활 전문보도매체입니다

그러나 이런 잘로몬에게도 위기가 닥쳐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편하게 찍던 정치인 사진이 나치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들을 잡아들이자 네덜란드로 피신을 합니다 그러나 가스 검침원이 이 유대인을 발견한 후 밀고 했고 잘로몬은 강제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죽게 됩니다. 

포토 저널리즘의 시초가 에리히 잘로몬이고 가장 성공적인 정치인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을 몰래 찍어서 자연스러운 정치인들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한 에리히 잘로몬. 어쩌면 정치인과 사진의 역학 관계가 에리히 잘로몬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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