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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기록한 1970년대 서울 풍경을 담은 사진집 '예스터데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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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기록한 1970년대 서울 풍경을 담은 사진집 '예스터데이'

썬도그 썬도그 2015. 1. 8. 16:05

대부분의 공산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싸지지만 예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상승합니다. 이 가치는 예술 작품에 대한 가격의 상승 뿐 아니라 존재 가치도 상승합니다. 

사진이 예술로 분류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술과 달리 셔터 누르는 시간만 투자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사진이 공산품 같았죠. 그래서 미술가들은 사진을 천시 했고 이런 분위기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시선에도 꾸준하게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있었습니다. 작가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한 80년대가 전부터 한국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사진기자나 미군을 지원하는 군무원 신분인 사진가들이 많았습니다. 
간혹 달력 사진이나 광고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서울을 기록하거나 미군이나 한국에 온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류가 아닌 취미 사진가가 꾸준히 흑백 필름으로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박신흥 사진가가 바로 그런 분입니다.


박신흥 사진가는 저와 인연이 좀 있습니다. 처음 알게 된 것이 2012년입니다. 

박신흥 사진가는 킨텍스 이사인데 젊은 시절 대학 동아리에서 흑백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가 쓰시던 콘탁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대학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서 출사를 다닙니다. 서울과 서울 인근에 출사를 가서 70년대 서울 풍경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친근했습니다. 저도 사진동아리 출신이고 사진이 좋아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박신흥 사진가와 달리 먹고 놀자 대학생이라서 출사는 뒷전이고 뒷풀이를 주 목적으로 삼았던 적도 있습니다. 전역후에는 진지하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이 사진이 주 목적이 아닌 동아리다 보니 한계가 있더군요.

그러나 박신흥 사진가가 있던 고려대학교 사진동아리 '호영회'는 진지했었나 봅니다.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진들이 프로라고 하기엔 살짝 아쉽지만 그렇다고 아마츄어라고 하기엔 프로의 느낌이 나는 하이앤드 아마츄어 또는 준프로라고 해야 할까요? 사진들이 미학적인 아름다음을 살짝 머금고 있습니다. 

이 박신흥 사진가가 저에게 사진집을 보내왔습니다. 1970년대 서울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 '예스터데이'라는 사진집니다. 


사진들은 서울과 서울 인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 시절 풍경 사진이 흔하지 않아서 더 도드라지고 눈길이 가는 것도 있지만 사진을 잘 찍습니다. 아이들의 개구진 얼굴과 밝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70년대의 서울의 공기를 그대로 담은 뛰어난 사진들이 많습니다. 아기를 업고 또래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모습이나 놀이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서 놀더 70년대 아이들의 맑은 미소가 보입니다.

제 형님 누님 분들이시네요. 



70년대 풍경은 제 어린 시절 기억과 살짝 중첩이 됩니다. 당시에는 저런 물을 싣고 온 트럭이 마을에 도착하면 물을 받아서 식수로 쓰곤 했었습니다. 집집마다 펌프가 있긴 했지만 가뭄이 들면 저런 식수차가 왔죠.  

흥미롭게도 식수차가 와도 대부분은 아줌마들과 아이들 밖에 없습니다. 남자들은 회사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70년대는 완존 고용의 시대라서 실업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업자라고 해도 남 부끄러워서 나오지도 않죠. 



위 사진은 김기찬 사진작가의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메라를 의식한 단체사진과 스냅 사진의 자연스러움이 공존합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을 카메라로 찍으면 엄마들이나 할아버지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왜 찍냐고 따지지만 저 당시는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고 카메라만 보이면 아이들이 따라 다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런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왔네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진을 기록한 사진들을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흘러가듯 발길 닿는대로 찍은 70년대 풍경입니다. 목적성이 있었다면 그 목적 또는 이익이 되는 쪽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기 때문에 감출 것도 좀 더 부각 시킬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본 70년대 풍경을 그대로 담은 사진이고 그래서 더 정감이 갑니다. 

박신흥 사진가의 전시회를 보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입니다. 저 또한 위 아파트 사진이 그런 사진입니다. 날로 늘어가는 서울 인구를 감당할 수 없자 서울 변두리 곳곳에 5층짜리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던 70년대. 아파트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두부를 잘라서 놓은 듯한 모습이었고 그 정형성과 반듯함이 부러웠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옆 동네가 이런 5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던 곳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달동네 비슷한 동네였고요. 분명, 경제적인 수준 차이가 있었지만 제 기억 속에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달동네에 사는 나와 내 친구를 따돌리거나 업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테니스공 야구나 짬뽕 같은 손야구와 축구를 하면서 서로 운동으로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었어요. 

물론, 어렴풋이 잘 사는 동네 아이들에 대한 묘한 질투나 시기가 있긴 했지만 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어떨까요? 임대 주택에 사는 아이들과 놀지 말라는 30,40대 부모님들이 꽤 있다고 하죠. 그래서 예전이 살기는 더 좋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맞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분명 이 70,80년대는 모두가 노력만 하면 먹고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시절이고 다 같이 못살았기 때문에 끈끈한 연대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70년대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전 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추억은 추억이니까 아름다운 것이지 추억이 현실이 되면 그건 또 다른 고통이 엄습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스터데이"는 돌아 보는 용도로 활용해야지 과거를 현재화 시키면 오작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무한도전에서 90년대 후반의 히트 가수들을 불러서 무대를 재연해서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했습니다. 추억팔이라고 하는 비판도 있지만 1회성이라면 추억을 팔아도 좋습니다. 추억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이와 시기가 있으니까요. 또한, 그 추억이 주는 치료의 힘이 큰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추억을 잠시 꺼내서 보고 다시 집어 넣어야지 추억 속으로 들어가면 현재가 무너집니다. 
사진집을 넘기다가 여러 상념에 젖다 보니 딴 이야기를 좀 했네요. 그러나 크게 다른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진집이라는 것 자체가 추억을 물체화 한 것이 아닐까요? 집마다 가족앨범이라는 사진집들이 있잖아요. 잠시 꺼내 보고 다시 넣는 용도로 잘 활용하고 계시죠. 박신흥 사진가의 '예스터데이'는 내 가족이 아닌 70년대 풍경이라는 가족 앨범 같습니다. 그래서 위 사진 속 소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 누님 같고 친구 같습니다.  사진집에서 가장 눈길이 오래 가네요, 함박눈 내리는 풍경이 더 아스라한 느낌을 더 하는 듯 합니다. 


사진집은 고마운 출판사인 눈빛에서 나왔습니다.
눈빛 출판사는 사진관련도서와 사진집을 내는 사진 전문 출판사입니다. 눈빛 덕분에 사진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들을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한국은 사진집 문화가 거의 없어서 사진집들이 잘 팔리지 않네요. 책도 잘 안 읽는데 사진집을 사서 보기 힘들죠.  여기에 사진집 가격이 비싼 것도 한 몫할 것입니다.

그래서 박신흥 사진가는 비싼 가격이 아닌 저렴한 가격인 15,000원에 선보였습니다. 
이 사진집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추억에 젖으시는지 한 참을 보십니다. 아버지가 진득하게 책 읽는 모습을 30년 만에 본 듯 합니다. 

박신흥 사진가의 추억이지만 그 추억과 아버지의 추억 그리고 내 추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를 지나온 공통 분모가 저와 아버지 그리고 박신흥 사진가를 하나로 묶어주네요. 이 사진을 보면서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있는 디지털 사진들을 잘 보관해서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그래서 오늘도 세상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가치도 느낌도 없을 지 모르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이면 조금씩 반짝이는 사진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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