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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집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서 본 김기찬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

by 썬도그 201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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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많은 디자인 관련 서적은 물론 수많은 사진집들이 있습니다. 낮에는 줄 서서 대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해가 질 무렵부터 저녁 늦게 까지는 한적합니다. 이곳에 있는 많은 사진집들을 언젠가는 다 볼 당당한 포부도 있습니다.

1층은 카페 전시공간이 있고 2층과 다락방 같은 3층은 사진집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3층은 내 아지트 삼았는데요. 낮에는 거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썰물처럼 사람이 빠져나가고 아늑함을 독차지할 수 있습니다.

해가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책 사진집 한권을 뽑아 들었습니다

이 사진집은 일전에 제가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같은 사진집이지만 좀 다릅니다. 다른 이유는 이번에는 전집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눈빛 출판사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골목 안 풍경 시리즈를 묶어서 전집으로 2011년 출간했습니다. 솔직히 출판사에서 사진집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집은 가장 돈이 안 되는 책입니다. 사진집을 사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뭐 빌려보는 처지이고 다른 책과 달리 금방 읽을 수 있기에 소장하는 의미가 아니라면 구매를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사진집은 저도 한번 구매를 해보고 싶어지네요. 2005년 8월 68세로 타계한 김기찬 사진작가의 사진집은 이미 절판되고 품절된 사진집이 많습니다. 이에 눈빛 출판사는 유족으로부터 제공받은 미공개 작품 등을 포함해서 약 500여 점의 사진을 사진집으로 묶어 냈습니다.

1968년부터 2001년까지의 김기찬 사진작가가 골목 안 풍경을 담은 모습을 이 사진집은 담고 있습니다.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골목 안으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다

1938년에 태어나 동양방송국 영상제작부장과 한국방송공사 영상제작국 제작 부장을 역임했던 작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의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당시는 달동네가 더 많았을 거예요) 행촌동, 중림동, 도화동에 찾아가서 카메라로 골목을 촬영합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낯설어하고 박대도 많이 받았지만 김기찬 작가는 진득함으로 다가갔습니다.

 

카메라를 뒤로 한 채 주민들과 어울리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동네 주민으로 오해받을 정도가 될 때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조리개가 개방되어야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듯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동화되는 과정을 꽤 오래 가집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가식도 작위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골목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진들을 우리가 절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골목에서 이렇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어보세요.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누구세요! 왜 찍어요!라고 멱살 잡이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기찬 작가는 마을 주민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자연스러운 풍경을 찍을 수 있었고 주민들도 적극 협조 해주었습니다.

이 6~80년 대 까지도 골목안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사진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 마을을 계속 카메라에 담는 것은 김기찬 작가가 유일했습니다. 약 30년 동안 행촌동, 도화동, 중림동을 카메라에 담고 마을 주민 이름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그 동네를 아카이브 한 사진작가는 김기찬 사진작가가 유일하고 이런 우직함과 끈기와 열정이 이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집을 국내 최고의 사진집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아이들이 80년대 70년대 그 시절을 말로 설명하면 뭐 합니까? 박물관에 가서 백날 아빠, 엄마 어렸을 적에를 보여주면 뭐 합니까? 이런 사진 한 장 보다 못한데요. 이런 사진이 있기에 지금의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은 아이들의 엄마 아빠의 어렸을 때를 느낄 수 있겠죠

사진집은 아주 두꺼웠고 총 6개의 볼륨으로 담았습니다
골목, 서민들의 공간, 추억의 발명, 골목은 살아있다. 골목 안, 그 정겹고 따뜻한 고향 이야기, 고향으로 가는 길 골목길, 한순간이 보여준 한평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중간에 컬러 사진도 꽤 있는데요. 컬러 사진도 많이 찍으셨더라고요.
각 볼륨의 서문은 유명 소설가와 작가들이 치장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공지영과 신경숙의 서문은 너무 좋더라고요.

김기찬 사진속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남자 어른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들만 가득하고 젊은 여자사람도 없습니다. 이 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왜 사진에 담기지 않았을까요?
작년의 한 사진전에서 그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평일 낮에 집에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엄마들 뿐이고 아빠들은 회사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집에 있다고 해도 골목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남자가 평일에 골목에 나와 있는 것은 수군거림의 대상이자 자존심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젊은 여자 사람들은 없을까요?

그 이유가 살짝 담깁니다. 젊은 엄마들을 카메라에 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은 이 골목 안에 투자한 시간이 아닌 작가의 나이로 빗장을 열었습니다. 50살이 넘어서야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래서 사진작가 중에 유명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분들인가 봅니다. 젊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은 낯설어하고 무섭게 쳐다보지만 나이 든 작가가 찍으면 어느 정도 누그러드는 모습이 있네요

그래서 책 후반에 젊고 예쁜 어머니가 나옵니다. 실명까지 거론되는데요
이전 작품들에서는 실명 거론이 없었는데 작가의 사진에 변화가 보입니다. 골목 안을 담긴 했지만 골목 안 사람들의 안 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책 후반에 가면 실명이 나오면서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이 보입니다.

 

워낙 인터넷에 많이 널려 있고 많이 소개 되어 있어서 익숙한 사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작가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너무 많이 비슷비슷한 사진을 보다 보니 좀 지루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반에 가면서 사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는데요(비록 비슷한 연대기이지만) 그 변화란 같은 인=물을 시간이 흐른 후에 담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이런 사진 놀이가 유행이고(한국은 아직 미흡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사진에 담는 사진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이런 사진을 찍을 생각을 많이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기찬 사진작가는 같은 인물을 몇 년 후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을 합니다.

 

이렇게 같은 인물을 같은 장소에서 다시 촬영하게 된 계기는 재국이 때문입니다. 왼쪽의 재국이가 10년이 지나서 중학생이 된 사진입니다. 흥미롭죠. 사진 속 아이도 변했지만 배경에 없던 고층 아파트가 불쑥 쏟아 올랐습니다. 

재국이 때문에 시작한 다시찾기 프로젝트(?)는 예전에 골목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수소문해서 다시 촬영을 합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제 마음에는 큰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왠지 코끝도 시큰해지고요.  왜일까요? 아마도 그건 시간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2장의 사진으로 수십 년을 압축한 그 응축력과 세월의 무게와 거룩함이 절 움직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항상 웃고 있어서 더 코끝이 찡해졌던 것 같네요. 

2001년 타계하기 전에 김기찬 작가는 찾지 못한 가족을 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사진집이 좋았던 이유는 사진이라는 자체가 부루조와 나 향유하는 고급문화였습니다. 사진은 부유함의 바로미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앨범이 풍성한 집은 잘 사는 집이라고 볼 수 있고 가난할수록 사진의 개수가 적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진들은 돈이 많거나 잘 생겼거나 권력자이거나 하는 세상 상류층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김기찬 작가는 골목 안을 카메라로 담았고 단순 취미가 아닌 진득하게 수십 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 거룩함이 전 너무 좋습니다. 세상의 삶에는 분명 빈부가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만이 기록에 남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타 등등으로 남겠죠. 그 기타 등등을 사진으로 담았던 사진작가 김기찬.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스스로 기록하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를 기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서울과 경기도의 재개발을 앞둔 지역을 기록으로 담으려는 사진 아카이브 그룹들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지금도 이럴진데 60년대부터 2001년까지 서울의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을 카메라에 담은 김기찬 사진작가의 그 소명의식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저 하늘에서도 골목안골목 안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고인의 따스한 미소가 떠오르네요. 골목길이 아닌 골목 안. 골목길은 그냥 지나가는 의미가 강합니다. 길은 지나가야 길이 되니까요. 하지만 고인은 골목길을 지나가지 않고 멈춰서 평상에 앉아서 골목 안을 지켜봤습니다. 지금도 김기찬 작가는 골목 안을 서성일 듯합니다. 절대로 골목 밖을 나가지 않을 사진작가 김기찬. 골목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그가 더 많이 떠오릅니다. 어제도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 갔다가 황망함을 가득 안고 와버렸습니다. 이 아름다운 골목을 그냥 밀어버리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쭉쭉 올린다고?? 누굴 탓하고 싶었지만 그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추억도 그렇게 편의라는 이유로 불도저로 밀릴 것입니다. 부디,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제대로 성찰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다음에 또 다른 사진집을 소개하겠습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 2005년 8월, 향년 68세로 타계한 저자의 이번 사진집은 현재 대부분 절판되거나 품절된, 저자가 생전에 편집하고 펴낸 <골목안 풍경>에 수록되어 있는 500여 점의 사진과 유족으로부터 제공받은 미공개 작품 흑백 19점과 컬러 15점을 전집 형식으로 한데 묶은 것이다. 서울의 중림동을 중심으로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사진의 기록성에 주목하여 30여 년간 하나의 테마에 매달려 몰두한 ‘골목안 풍경’ 작업은 오랜 시간의 기록으로서 꾸준히 재평가되고 있다. 1968년부터 사진가 김기찬은 서울의 중림동을 중심으로 골목안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가 생전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골목안에서 자신의 고향을 보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사진에 나타난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거실이며 놀이터이자 공부방이었고, 동네 사람들 간의 소통과 생활의 현장이었다. 30여 년 동안 김기찬은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등을 드나들며 자신의 평생의 테마인 ‘골목안 풍경’에 매달렸다. 김기찬이 사진으로 고정시킨 골목 특유의 색상과 명암은 이제 콘크리트로 대체되어 다시 찾아볼 수가 없다. 김기찬 사진집에 수록되어 있는 서문이나 발문도 이 책에 한데 모았다. 고향과 가족, 그리고 삶과 이웃이라는 평생의 테마를 ‘골목안 풍경’을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기찬
출판
눈빛
출판일
201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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