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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왜! 우리는 아들, 손자 세대와 공간을 공유할 수 없을까?

by 썬도그 201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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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와 중구를 사모합니다. 그 동네에 친구가 사는 것도 지인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문화, 예술 그리고 이야기가 가득해서 좋아합니다. 지금의 20대는 물론, 30,40대 아니 50대 분들도 잘 모를 겁니다. 1950년대 서울은 종로, 중구, 서대문구, 용산구 정도만 서울이었고 나머지는 경기도였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지금의 강남을 서울로 편입하고 구로구 관악구 강북 성북구 등을 서울로 인정하면 서울이 커졌지 오리지널 서울은 종로구 중구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서울시 종로구와 중구에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여기가 고종이 살던 곳이래, 이곳에서 김구 선생이 저격 당했지, 이곳에서 김신조가 쳐들어왔지 등등 종로와 중구는 이야기기 가득합니다. 이런 서울이 일제 시대에 영등포를 공업지대로 만들고 해방 후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면서 점점 확장하더니 거대해졌습니다. 1970년대에 5층짜리 아파트가 서울 곳곳에서 세워지더니 그 아파트들이 허물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한국 건축은 습식 건축이라고 하더라고요. 유럽 여행을 가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많은 유럽 국가의 건물들이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아닌 수백 년이 지난 건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엘레베이터도 기존의 오래된 건물에 우격다짐으로 넣다보니 편의성은 떨어지죠. 반면, 한국 건물들은 얼마나 편해요. 고속 엘레베이터가 질주하는 아파트와 건물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는 수명이 길어야 50년입니다. 60,70년대 지어진 시민 아파트들이 최근 재건축을 하거나 그냥 허물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 왜 우리는 100년 넘는 건물을 짓지 못하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한 건축가가 그러더군요. 한국에서는 죽기 전에 최소 3번의 집을 바꾼 다고요. 그 이유는 한옥이 아닌 양옥과 아파트 같은 경우 평균 30년 정도 사용하다가 버린다고요. 그래서 90년을 산다면 최소 3번의 이사를 하거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는 습식 건축 때문이라고 하네요. 마치 벽에 못을 박아서 액자를 붙이는 것이 아닌 양면 접착제를 붙이고 액자를 붙이는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좋던 싫던 최대 30년 안에 자기가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갑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고착화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고도 성장기에는 헌집 주께 새집 주던 8,90년대를 지나 지금은 헌집 주고 새집을 받으려면 추가 분단금 1,2억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부동산 광풍의 기세가 꺾인 듯 합니다. 



집 근처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문화 공간인 '금천예술공장'에 들렸습니다.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입니다. 항상 전시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전시회를 하는데 그 전시회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집 근처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지나가다가 전시회가 있으면 들립니다. 마침 2014년 12월 18일부터 1월 8일까지 하는 연기백 작가의 '곳 다가서기' 전시회가 전시중이네요. 


연기백 작가? 당연히 모릅니다. 검색을 해도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 전시회 인삿말 같은 서문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 흔한 팜플렛도 없습니다. 이런 전시회 흔치 않죠. 작가의 고집인지 게으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전시회 서문이나 설명문 없이 전시회를 보는 스타일이라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작품의 배경 스토리는 궁긍했지만 알기 힘들더군요.




금천예술공장 3층 전시공간에 올라갔습니다. 뜻모를 영상을 지나서 전시장에 들어섰습니다. 도배공이 도배를 하는 영상입니다. 해외 여행을 가본적도 서양의 집을 구경한 적도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도배 문화, 즉 벽지 문화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은 침실까지 신발을 신고 다니고 온돌 문화도 없습니다. 때문에 한국의 장판 문화가 없죠. 여기에 도배 문화도 약합니다. 
반면 한국은 온돌을 깔고 그 위에 장판을 깔고 벽은 벽지로 도배를 합니다. 도배, 이 아름다운 단어를전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 집을 중개축 할 때 도배공 삼촌들이 집안 곳곳을 풀로 칠하고 도배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자체가 곡예였습니다.

도배나 벽지 비용은 비싸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도배나 벽지 비용이 없는 집은 신문지에 풀칠을 해서 벽지로 사용했습니다. 



연기백 작가의 전시품은 그 신문 등으로 이루어진 벽지를 뜯어내서 복원했습니다. 평상시에는 DSLR을 들고 다니지만 예정치 않은 전시회 관람으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사진 품질이 좋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볼만은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벽지입니다. 그 벽지요.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어 같이 누구나 다 아는 그 벽지요. 벽지를 뜯어서 전시하고 있는데 이 풍경이 너무 친근했습니다.



이 벽지는 재개발 지역에서 작가님이 뜯어 온 것이라고 하네요
작가님 말대로 이 벽지 하나로 그 공간이 참으로 다르게 느껴집니다. 벽지가 없는 시멘트 벽은 무섭고 차가운데 1cm도 안 되는 벽지를 바르면 그 벽지 안쪽의 공간은 따스하고 푸근하고 편안한 공간이 됩니다.

이글을 쓰면서 제가 있는 이 공간의 벽지를 한참 봤습니다. 저 벽지 뒤에 회색 가득한 시멘트가 있는 것을 알지만 상상이 잘 되지 않네요. 




이 얇은 두께의 벽지 앞과 뒤는 얇지 않은 거대한 인식의 장벽이 있을듯 합니다. 같은 벽이라도 회색 시멘트 벽 보다는 엄마의 품 같은 따스한 벽지가 포근하니까요. 

역시 사람은 시각의 존재인가 봅니다.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와 거주자의 살 사이를 중재하는 종이의 겹 사이에 남겨진 알지 못하던 것들을 살피기 위해,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버리기 위해 작업실을 나서 그 곳에 다가가 멈춰선다.   -글 : 연기백 -



벽지들은 서울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속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울 곳곳은 재개발이 진행중이고 집단 개발로 인한 집단 이주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재개발 과정에서 떠나는 사람들은 추억들을 흘리고 가고 예술가나 저 같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련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줍거나 사진으로 찍습니다. 





연기백 작가의 명징한 작품 세계를 보다가 한 서양인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다 감상했습니다.
약 20분 정도 되는 동영상에서 그리스 출신의 이 서양 작가는 서울에서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인 작가는 1년 전부터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서 멀지 않은 교남동 재개발 지역을 들락거립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동네 전체가 페가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때부터 빈집들을 들락 거리면서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노숙자도 만나고 저녁이 되면 접시나 숟가락 등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서울은 과거를 지우려는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도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았던 공간이 30년도 되지 않아서 과거가 지워지고 새롭게 변한 모습을 질타합니다. 아버지가 살던 동네와 할아버지가 살던 동네 그리고 아들이 살던 동네가 위치는 같지만 공간은 다른 것을 질타합니다. 마치, 과거는 추악하고 지워야 할 댓아으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이 동영상 속 서양 작가의 말에 빠져들었습니다. 너무나도 공감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같은 공간이지만 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내가 살던 시대와 앞으로 살 세대가 보는 공간은 모두 다릅니다. 이렇게 다른 이유는 한국이 엄청나 고도 성장을 한 것도 있지만 한국인들 특유의 실용주의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작가는  자기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또는 아버지와 한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지만 한국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살지만 지역에 대한 공유를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합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와 내가 기억하는 기억이 조금씩 다르긴 하더군요.

같은 공간 다른 기억이라도 같은 공간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같은 지역에 대한 기억의 공유가 없기 때문에 아주 기억이 척박한 사회입니다. 그리스 작가는 교남동 재개발 지역에서 찍은 사진을 가지고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예정이라는데 기대가 많이 됩니다

서양인 작가는 한국처럼 한 지역을 통째로 건설사가 사들여서 아파트를 심는 모습을 놀라워 했습니다. 독재 국가에서나 강제적으로 개인의 땅을 사고 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이나 그리스나 어떤 지역을 개발 할 때는 그 지역의 모든 땅주인 집주인을 설득하기 힘들기에 부분적으로 개발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뉴타운이라면서 한 지역 전체를 몽땅 철거하고 거기에 아파트를 세웁니다. 집주인들은 국가가 너!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매몰찬 모습을 놀라워하네요. 

그러고보니 우리는 국가가 여기 개발할테니 너 나가세요!라고 하면 그냥 군말 없이 나갑니다. 안나가고 버티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알박기다 뭐다 구박을 합니다. 예전부터 그랬으니 그게 상식이고 정상인 줄 압니다. 덕분에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서울과 아버지가 기억하는 서울과 손주가 기억하는 서울은 다 다릅니다. 같은 것 찾기보다는 달라진 것 찾기가 더 쉽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만 해도 그렇습니다. 마치! 과거는 죄악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네요. 고향이라는 개념이 없는 서울. 이런 도시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사라진 서울, 아파트라는 정크스페이스가 가득차서 이야기가 흐르지 않고 아파트 안에 갖혀 있습니다. 

이야기는 골목을 통해서 흐르는데 아파트는 골목이 없습니다. 정크 스페이스 서울에 대한 신랄한 비판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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