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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인정 욕구에 찌든 현대인들의 과도한 셀카질

by 썬도그 201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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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엄마에게 인정 받아서 쓰담쓰담을 받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죠. 공부가 목적이 아닌 어머니의 쓰담쓰담 또는 선생님의 쓰담쓰담을 받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 아이는 대학교도 직장도 쓰담쓰담을 받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립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과연 바른 삶일까요? 공부가 목적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서 하는 공부? 남들에게 우쭐 되기 위해서 평판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과연 바른 태도일까요? 네 다 압니다. 그게 바른 삶이 아닌 것을 대부분은 잘 압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공부나 어학연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못하고 돈 많이 버는 인간이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엄마나 선생님은 공부가 목적이 되지 못한 빈껍데기인 수단임을 자녀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인정 욕구를 꺼내서 마구 휘두릅니다. 그럼 아이는 엄마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주변의 기대를 채우고 쓰담쓰담을 받기 위해 공부를 오늘도 열심히 합니다


<<인정 욕구와 셀카가 만나서 추악함을 만들어내다>>


오늘 포털에는 두 개의 추악한 사진을 보도 했습니다. 하나는 지난 19일 일본 지하철 역에서 투신 사망 사고가 났습니다. 참혹한 사건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 상황을 카메라에 찍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일본인들의 민족성까지 거론하면서 질타를 합니다. 하지만 이건 민족성과는 큰 연관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이런 풍경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 상황은 좀 더 자극적이긴 한데 한국에서 일어났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 3장의 사진은 올해의 가장 멍청한 셀카에 뽑힌 사진들입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나의 불행도 나의 행복(?)이라는 좀 또라이 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들을 보면 셀카도 중독이 심한 병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사리판단도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왜 이런 미친짓(?)을 할까요?



<< 인정 욕망의 수단으로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자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방법이 많지 않았습니다. 끽해야 큰 상을 타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대로에서 옷을 홀딱 벗고 뛰면 기자들이 출동해서 세상에 널리 알렸죠. 내가 아무리 잘나도 내 잘남을 널리 멀리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쉽게 나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론이라는 확성기를 빌리지 않고도 내 이야기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까지 동시간대에 전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디카 세상이 열리면서 나의 모습을 온라인에 쉽게 노출하고 무명의 사람도 단 시간에 유명해 지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몇년 사이에 SNS라는 경박단소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빠른 전파 속도로 내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노출하는 훌륭한 도구(?)까지 등장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내 사생활을 인터넷에 노출할까요?  이런 사생활 노출의 바탕에는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나를 드러내고 내 잘남을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욕구가 아주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인정 받기 위해서 SNS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정 욕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아침에 일어나서 내 글에 누가 좋아요를 했는지 좋아요가 얼마나 많은 지를 체크합니다. 인정 욕구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 과하고 그 인정 욕구로 삶을 덫칠하면 그 삶은 오히려 황폐해집니다.  왜냐하면 인정 못 받으면 불안해 하다가 치유할 수 없는 외로움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도한  인정 욕구와 셀카 그리고 SNS가 만나서 추악스러운 셀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요?

야! 이거 대박인데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자. 트위터에 올리자! 등등 뭔가 신기한 일 보기 드문 사건을 만나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찍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고 웃지 않은 것이 도덕이자 예의이듯 남의 불행을 찍고 그걸 넘어서 셀카까지 찍는 사람들으 행동은 예의에도 상식에도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식도 무너지고 있고 유명과 악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늘고 있습니다.

악명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유명하면 그 앞에서 사진 찍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할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 알지 못하고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같이 인증샷을 찍어서 올리는 시대가 요즘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같이 사진 찍자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위 사진들처럼 남의 불행을 넘어 자신의 불행까지도 사진으로 찍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례식에서 사진을 찍지 않듯(세월호 사고 때 팽목항에서 인증샷 찍은 공무원도 있지만), 슬플 때 사진을 찍지 않듯(슬퍼서 눈물 흘리는데 그걸 셀카로 찍는 정신승리자들도 있긴 하지만) 사진은 유희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남의 불행에는 카메라를 내려야 합니다.

다만, 그 불행이 사회를 환기 시키거나 세상에 널리 알려서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을 돕는 등의 목적하다면 남의 불행이라고 해도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일어나는 흔한 사고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은 못난 짓입니다.  교통사고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데 그걸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자 자신을 욕먹게 하는 것입니다. 

SNS를 욕하지는 마십시요. SNS가 인생의 낭비도 아닙니다. SNS는 하나의 도구이고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SNS를 남용하거나 악용하거나 못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 듯. SNS라는 물은 누군가에게는 우유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뿐입니다. 

자존감이 없어서들 그럽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심이 없기 때문에 남의 유명세에 기대서 나를 유명하게 만드려고 합니다. 내가 유명한 여자 연예인과 친하다고 내가 위대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과 친하다고 우쭐 거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 줏대 없는 행동들이죠.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보면 원더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그 멋진 순간을 왜 나는 파인더로만 볼까? 여행을 가서 멋진 풍광을 1분도 감상하지 않고 바로 뷰파인더를 눈에 밀착 시켜서 풍광을 봅니다. 

그래서 여행 후에 집에 오면 파인더를 통해서 본 시간과 눈으로 본 시간이 비슷한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풍광을 감상하지 못하고 온 느낌이 듭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 순간을 카메라로 방해하지 않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 본 것을 말과 글로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그 글과 말이 내가 찍은 사진보다 상대방에게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인정욕구 + 디지털 카메라(스마트폰) + SNS = 사진으로 말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말에도 욕이 있듯 사진에도 쓰레기 같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 쓰레기 같은 사진은 쓰레기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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