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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미군의 노근리 학살은 북한군의 우회 침투 전술 때문이다?

by 썬도그 201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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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서는 수 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북한군의 양민 학살만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한국군도 미군도 양민을 학살 했습니다. 특히 한국군은 제주4.3사태 때 제주 인구의 10%가 피살이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미군들의 대표적인 양민 학살은 노근리 학살입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1950년 7월 25일에서 29일 사이에 일어난 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미 1기병 사단 7기병 연대 예하 부대가 노근리 주민들을 경부선이 지나가는 굴 밑에 몰아 넣고 135명을 사살하고 47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입니다. 

살아 남은 주민은 모두 20명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그동안 쉬쉬하다가 2008년 AP통신 기자가 전 세계에 이 양민 학살 사건을 알리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기자는 그해 풀리쳐상을 받게 됩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추모탑을 건립하는 등 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으로 사라진 분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요? 왜 미군은 피난민들을 못가게 막고 굴다리 밑으로 몰았을까요? 여기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이유가 피난민 중에 북한군이나 북한군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간첩들이 있기 때문에 흰 옷 입은 피난민들을 후방으로 내려보내지 않고 막았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변장을 하고 숨어 있다고 생각 했을까요? 왜 미군들은 그런 허무맹랑해 보이는 생각을 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11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강성현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객원연구원이 미 정부가 공개한 한국 전쟁 사진을 소개하는 '미군이 기록한 한국전쟁 사진의 시각과 사각'을 강연 했습니다. 이 강연은 우리가 듣기 힘든 한국 전쟁 시에 활약한 미군 사진병들이 찍은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첫 미군 부대인 스미스 부대가 대전역에 7월 2일에 도착을 합니다. 
미군 부대는 곧바로 최전선으로 나아가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그냥 박살이 나버립니다. 


그 이유는 후방이 털렸기 때문입니다. 미 육군의 전투 방식은 최전선에 보병들이 배치 되고 그 보병들 뒤에 지원 부대인 포병 부대가 배치 됩니다. 보병들이 무전기로 포 공격을 요청하면 포병들이 포로 보병들을 지원해 주는 전형적인 전술이죠. 

스미스 부대도 그 전술을 갖추고 북한군과 전투를 했는데 후방에 있는 포병 부대가 박살이 난 후 보병도 혼비백산해서 후퇴를 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미군은 연전 연패를 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북한군은 저 앞에 있는데 언제 후방까지 와서 포병을 격파하는지 미군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은 전투 전에 지나간 흰 옷을 입은 피난민을 의심하기 시작 합니다. 피난민들이 지나간 후 포병 부대가 공격을 받았다는 잘못된 연관 관계를 짜맞추기 시작합니다. 

이후, 미군은 피난민을 민간민을 불순분자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고 피난민들을 후방으로 보내지 않고 못가게 막습니다. 강의자는 노근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의자의 말과 노근리 사건의 원인을 놓고보면 이런 미군이 갖는 시선이 동일합니다 

그럼 후방 포병 부대를 공격한 건 누구일까요?
강성현 연구원은 그 후방을 공격한 사람들은 피난민이 아닌 북한군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군은 중공군에게 전투술을 배워서 우회 하는 공격법을 잘 이용했습니다. 미군들은 평지에서 싸우는 전투를 많이 했고 그래서 양 옆은 신경 안쓰고 전방만 신경 쓰는 전술로 전투를 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군은 양 옆으로 우회를 해서 후방을 먼저 공격합니다. 한국은 산악 지형이라서 우회 침투하기도 쉽습니다. 산 뒤로 산등선을 타고 이동하면 눈으로도 보이지 않죠. 
그렇게 산등선을 타고 양 옆으로 우회한 후 포병을 먼저 공격하고 둘러 싸서 미군을 격파 했습니다. 


나중에는 미군도 이런 북한군의 전술을 알고 피난민이 게릴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북한군의 전술을 모를 때 까지는 애먼 피난민만 의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 한 것은 그들이 악마라서 학살 한 것이 아닌 전략 부재와 무지에서 나온 오해였습니다. 
그만큼 한국전쟁 초기의 미군과 한국군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시간이었고 한국 전쟁 당시의 미군 사진병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아주 좋은 강의였습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분단국가이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 중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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