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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그냥 잊혀지기에는 아까운 영화 '레드카펫'

by 썬도그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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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은 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잊혀진 영화를 우리는 '저주 받은 걸작'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저주 받은 걸작'은 대중들의 인기를 끌지 못한 예술 영화를 지칭합니다 만 가끔은 상업 영화도 이 '저주 받은 걸작' 소리를 듣긴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소개할 영화가 걸작 반열에 오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형편없는 대우를 받기에는 너무 아쉽고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재작년에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를 다운로드해서 보고 난 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이런 영화를 영화관에서 직접 봐줘야 하는데 무료 다운로드로 풀려서 무료로 보기엔 뭔가 죄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서 오정세라는 새로운 배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유명한 배우였지만 각인 될만한 영화가 없었는데 <남자사용설명서>를 본 후 오정세라는 배우를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오정세는 타짜2나 여러 영화에서 나와서 다양한 연기를 하지만 가장 능청스럽게 코메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려보입니다.

그래서 오정세가 출연한 신작 <레드카펫>을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예고편만 봐도 빵빵 터지는데 역시 오정세!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지 않고 생각보다 작게 개봉한 영화라서 볼 시간과 기회가 되지 않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못보나 보다 했는데  합법 영화 / 드라마 다운로드 사이트인 엔탈에 올라와서 바로 다운로드해서 봤습니다

에로 영화 감독이 감독을 맡은 영화 <레드카펫>

발기해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정한다. 공공의 젖. 빠라빠라 빠라봐. 타이탕닉. 에로탐정 왕성기, 이런 영화 제목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위 영화는 유명 상업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만든 에로 영화의 제목들입니다. 한국은 포르노그래피가 불법인 나라라서 위와 같은 에로 영화만이 성인 영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런 에로 영화들은 수많은 모텔과 성인 채널레 보급 되어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영화 <레드카펫>의 박범수 감독은 에로 영화 감독입니다. 위와 같은 영화를 한달에 3편씩 제작을 해서 수요처에 납품을 합니다. 한 달에 3편의 영화? 상업영화로는 상상할 수 없죠. 그러나 에로 영화는 가능합니다. 배우 3~4명 스텝 3~4명이서 시나리오가 없이 찍거나 감독이 직접 급하게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1주일에 한편의 에로 영화를 만듭니다. 이런 공장식 영화 찍기를 하던 박범수 감독은 2012년 부산영상위원회 영화기획 및 개발지원 사업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의 독재자>와 함께 1등을 차지합니다. 이 시나리오가 당선 된 후 이걸 상업 영화로 만든 것이 지난 달 말에 개봉한 <레드카펫>입니다. 에로 영화를 10년 간 270편을 찍던 감독이 첫 장편 상업 영화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체가 영화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영화 <레드카펫>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물론, 고준희라는 여자 배우와 사랑을 하는 부분은 상상이지만 나머지 부분, 즉 에로 영화를 찍으면서 겪는 수많은 서러움을 영화는 아주 진솔하고 담백하게 잘 담았습니다. 

좀 매끄럽지 못한 스토리가 아쉬웠으나...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여러가지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합니다. 에로 영화 감독인 박정우(윤계상 분)이 사는 집을 정은수(고준희 분)가 등기를 확인도 안 하고 집 값을 계약 했는데 사기를 당해서 집 값을 홀라당 날려버립니다.  외국에서 살다와서 오갈데도 없는 정은수는 박정우 감독과 어색한 동거를 시작 합니다.

박정우는 정은수에게 오디션이나 보러 다니라면서 알뜰살뜰 챙겨줍니다. 

정은수는 아역 출신 배우여서 긴 외국생활을 한 후 한국에 와서 다시 배우로 일어서려고 합니다. 이에 박정우 감독은 큰 도움을 주지만 자신이 에로영화 감독이라는 것을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려 줄 수가 없죠.

정은수는 여러 오디션을 보다가 한 기획사 여사장에게 발탁 되어서 대스타가 되고 국민 요정이 됩니다. 
그러나 박 감독과의 오해 때문에 서로 연락을 끊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줄거리는 크게 복잡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뻔합니다. 게다가 여러 영화가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남녀가 동거하는 부분은 <미술관 옆 동물원>같고 여배우가 대스타가 된 모습은 <노팅 힐>도 살짝 느껴집니다. 전체적으로는 신선한 이야기는 많지 않고 상업 영화의 관습을 충실히 따릅니다.

이렇게 뻔한 스토리만 보면 이 영화 추천하기 힘듭니다. 또한, 스토리가 좀 튀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은수가 대스타가 되는 과정도 너무 쉽게 되고 박 감독과 정은수가 너무 쉽게 사랑에 깊게 빠지는 부분도 개연성이 약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잘 담은 영화 <레드카펫>

박범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레드카펫>은 다른 영화에서 들을 수 없는 에로 영화 제작 스텝과 배우들의 서러움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에로 영화 제작 현장의 유쾌함도 잘 담고 있죠. 이 양극단을 아주 잘 담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진국입니다. 

에로 영화 찍으면서 느끼는 자괴감까지는 아니지만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코믹스럽게 때로는 서글픈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면서 담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로 영화를 촬영하다가 남자 배우 부인에게 전화가 오는데 스텝들이 상의만 와이셔츠를 입고 제약회사 회식 장면으로 연출하는 장면은 웃픈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하는 일은 불법이 아닌 하나의 욕망을 담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에로 영화 또는 에로 배우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합니다. 이는 성에 대해서 보수적이면서 강변에 가득한 러브호텔을 보면 알 수 있죠. 한국은 성에 대해서 이중적인 시선을 보이는 나라입니다. 앞에서는 손가락질 하면서 칸막이 뒤에서는 불륜도 서슴치 않게 하는 나라 아닙니까? 

이런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이 에로 영화 제작 스텝과 배우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가 울컥 했던 부분은 박 감독이 부모님 앞에서도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하는데 촬영 현장에 부모님이 찾아온 장면입니다. 이외에도 이들도 누구의 아빠, 누구의 딸일 수 있음을 우리는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런 서글픔이 아주 잘 묻어나 있습니다. 


올해 최고로 많이 웃었던 영화 <레드카펫>

전 B급 정서가 묻어나는 영화가 좋습니다. 동시 상영 시절 A급 영화에 딸려서 상영하는 부록과 같은 B급 영화들은 저예산 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저예산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홀릭합니다. 이 영화 <레드카펫>을 B급 영화라고 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그 정서는 B급 향기가 납니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닌 극한직업에 나올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페이소스가 아닌 코메디 때문입니다.  오정세와 오정세와 친한 조달환 그리고 2PM의 찬성이 만들어내는 코메디는 영화를 보는 내내 깔깔거리게 합니다. 특히 오정세와 찬성의 코메디는 이 영화 재미의 반을 차지합니다. 

오정세는 대사로 웃기고 찬성은 액션으로 웃깁니다. 덤앤 더머라고 할 수 없지만 둘 만 나오면 영화에 활기가 돋습니다. 
다만, 초반의 코메디의 기세가 중반 좀 누그러드는 것이 아쉽습니다. 

 고준희와 윤계상의 러브라인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그런대로 볼만 합니다. 몇몇 장면은 꽤 괜찮은 장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오정세과 찬성이 만들어내는 유머의 재미를 넘지는 못합니다. 

박범수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얼개는 좀 어설프고 연출도 좀 더 상업영화를 많이 만들면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보이지만 이 찰진 대사들은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납니다. 또한, 유명 영화를 패러디하면서 그걸 한 번 비틀어서 웃기는 능력도 아주 좋습니다. 

 박범수 감독은 다음에 또 상업 영화 연출을 했으면 합니다. 아니면 시나리오라도 다시 써서 끊겨진 한국의 코메디 영화를 다시 살려 줬으면 하네요. 

2류 인생들의 서글픔과 웃음을 잘 담은 재미의 진폭이 꽤 좋앗던 <레드카펫>

 이 영화를 에로 영화 제작진과 배우들의 서러움을 넘어서 독립 영화 같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모든 영화인으로 바꿔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보다보니 상당히 서글픔이 밀려오네요. 박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메이저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그대로 배껴서 영화를 만드는 모습은 현재 한국 영화계의 병폐를 꼬집고 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주제와 소재의 영화가 동시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분명 배끼기입니다. 어디 영화계만 그럽니까? 드라마가 영화의 소재를 배끼기도 하죠. 이런 영화계 이면의 추잡스러움과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그러나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영화인들의 가슴서리는 사연을 영화 <레드카펫>은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2류 인생 또는 3류 인생 같은 현실을 좀 더 투명하고 길게 끌고 갔으면 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을 밝은 톤으로 진행되고 영화 후반은 감독의 바람까지 담아서 더 가벼워집니다. 별점을 많이 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꼭 보라고 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루저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좋네요. 

별점 : ★

40자 평 : 성긴 스토리가 좀 아쉽지만 에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의 페이소스가 꽤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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