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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경주 리뷰)경주는 기억의 도시이자 죽음의 도시다

by 썬도그 201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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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이 살고 있는 나라지만 흥미롭게도 현재의 10,20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장년들은 공통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 기억이란 88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 대한 기억이라면 흥미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4년마다 월드컵과 올림픽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장소에 대한 공통된 추억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대한민국 중,장년들은 경주라는 지역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7,80년대에는 고등학교 수학여행하면 줄기차게 경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경주로만 경주로만 갔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찬란한 신라 역사를 간직한 역사의 도시라서 배울 것(?)이 많은 곳이자 여행이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게 먼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럼 경주에 살던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네요. 

경주라는 곳을 2년 전에 다시 찾아 봤습니다. 한 20년이 지난 후 찾은 경주는 경주에 있는 첨성대와 경주 박물관, 분황사 석탑을 보러 가서 추억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들어서 가본 경주라는 곳이 그런 곳이더군요. 기억을 간직한 도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추억을 묻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경주를 색다르게 바라본 영화 경주

영화 경주가 개봉한다는 말에 영화는 재미 없어도 경주의 그 멋진 풍광만 잘 담는다면 꽤 괜찮은 관광가이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 그런 멋진 풍광을 간직한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경주의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거대한 고분이 나오기는 하지만 고분만 나올뿐 그냥 스쳐도 나올 수 있는 첨성대나 안압지 그리고 불국사나 포석정도 나오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경주를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고분 밖에 없습니다. 
이 경주라는 영화는 경주라는 도시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경주라는 도시의 2개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경주는 기억이다

경주라는 영화의 첫번 째 키워드는 기억입니다
서두에서 말했듯 제 두번 째 경주 여행은 기억찾기였습니다. 고2때 친구들과 찾았던 수학여행지였던 경주를 돌아보면서 그 시절의 추억과 수시로 만났습니다. 희미했던 침전된 기억들이 기억의 뻘에서 올라와서 저 앞에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왜곡된 기억도 있었겠지만 기억과 현재가 동시에 다가오는 기이한 느낌을 하루 종일 느꼈습니다. 비록 당일치기로 갔다와서 밤 기차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 한 나절의 도보 여행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최현 교수(박해일 분)는 북경대에서 동북아 정치학을 가르치는 한국분입니다. 친한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국에 온 최현은 상가집에서 7년 전 경주에서 본 춘화를 보고 싶다면서 경주로 향합니다. 7년 전 한 카페에서 본 춘화를 왜 보고 싶은지에 대한 설명은 영화 내내 나오지 않고 그냥 막연히 춘화를 보고 싶다면서 경주로 향합니다. 

경주에 도착한 최현은 그 춘화가 있던 찻집에 들립니다. 주인은 바뀌었고 춘화가 있던 벽은 벽지로 춘화를 가렸습니다
이 찻집의 여주인은 공윤희(신민아 분)에게 춘화에 대한 이야기를 수줍게 물어봅니다. 이렇게 춘화찾기가 이 경주라는 영화의 흐름을 쥐어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춘화에 대한 거대한 뒷 이야기도 찾아야 하는 당위도 아주 느슨하기에 영화는 춘화 찾는다는 명목으로 찾은 도시에서 자신의 추억 찾기를 하는 최현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최현 교수에게 있어 춘화는 하나의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춘화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고 죽은 친한 형과 춘화를 함께 바라보며 낄낄 거렸던  7년 전의 그 시절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하네요 최현 교수에게 있어 7년 전과 지금은 크게 다른 듯 합니다. 제가 추측으로 글을 쓴 이유는 이 경주라는 영화는 상당히 느슨한 영화이자 은유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틈을 많이 열여서 관객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소리치지는 못하는 성격이지만 조용히 기억을 소환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썸을 탔던 유부녀가 된 후배 여진을 전화로 불러서 KTX를 타고 오게 만듭니다. 그렇게 약 2시간의 만남 후에 급하게 또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 여진은 실제 후배라기 보다는 자신의 기억을 2시간 동안 소환해서 기억이라는 퍼즐 맞추기를 해서 다 맞춰보니 추한 자화상이 나오자 추억이라는 직소퍼즐을 다시 헝크러트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답지 추억을 현실로 끌어 올리면 실망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3,40대가 되어서 첫사랑을 만나겠다고 연락해서 직접 만나서 실망하는 분들이 많듯 최현 교수는 추억을 길어 올렸다가 추악한 표정을 하고 헤어집니다. 

영화는 이런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최현 교수가 경주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일하게 가장 격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술집 씬이였습니다. 이 술집 씬에서 다른 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손님들을 물끄러미 최현 교수가 바라보는데  그 방에서 흘러 나오던 노래가사가 이런 것입니다

"자꾸만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진다" 김수희의 못잊겠어요라는 노래인데 이 노래 가사가 이 영화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들리네요. 그 시절, 그 호시절에 대한 추억을 찾는 여정이 영화 경주의 키워드입니다.  윤희는 최현교수의 귀를 만져봅니다. 자신의 남편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귀를 만져보니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니 기억이라는 명징하지 않는 매체를 직접 체험하고 대면하고 난 후 기억과 실제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 지를 담는 장면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방문을 살짝 열어 놓는 외로움도 살며시 웃음이 나오네요. 

춘화는 춘화 그 자체보다는 춘화가 일으키는 낄낄거리던 시절의 기억 찾기가 이 영화의 첫번 째 키워드입니다. 


경주는 죽음이다

나이들어서 생각해보니 왜 우리는 무덤으로 소풍을 그렇게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릉이란 왕릉은 다 다닌 것 같습니다. 선정릉, 헌인릉, 태릉 서울시에서 가는 소풍 장소는 모두 릉으로 끝났습니다
왕릉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김밥먹고 하는 그 모습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네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 국가라서 거대한 건축물이 없던 나라이지만 조상을 신처럼 모시는 모습이 있어서 왕릉이나 무덤은 아주 크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조선에 왔을 때 죽은 자들을 숭배하는 나라라고 했다더구요. 경주는 전체가 무덤의 도시입니다. 도심 한 가운데 대릉원이 있고 그 옆에는 고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영화 경주는 이 무덤을 죽음의 상징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친한 형의 죽음, 찻집 여주인 윤희 남편의 죽음 그리고 우연히 스치듯 지나간 모녀의 죽음 등 영화 내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죽음을 어둡고 고개를 돌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담은 것은 아닙니다. 


회식을 한 후 술에 취한 찻집 여주인 윤희와 최현이 쌍봉에 올라서 서로 똑같이 무덤을 껴 안는 모습은 어머니 뱃속이라는 무덤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임신한 여인의 배의 모습 같기도 하고 젖가슴의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경주 고분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경주 여행을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고 놀라운 것은 이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이었습니다. 20년 전에는 금관이나 석굴암에 반했지만 몇년 전 여행에서는 고분의 그 여인의 곡선을 그대로 흡수한 듯한 그 곡선에 취했습니다.

윤희는 무덤 속에 말합니다. 
"나 들어가도 돼요"  윤희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면서 사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성이는 여자입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거대한 고분이라는 무덤이 보이는 곳에 사는 윤희에게는 죽음이 바로 옆에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습니다. 영화 경주의 두번 째 키워드는 죽음입니다.  다른 영화의 죽음과 다른 것은 죽음을 좀 더 관조적이고 무덤덤하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은 삶의 뒷면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선이 참 부드럽네요.  불교적이라고 할까요? 그러고보니 경주를 세운 힘은 불교네요. 국내 최대의 불교 문화가 꽃피운 도시가 경주이기도 하죠. 

영화 경주는 기억과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성기게 엮은 영화입니다. 이 둘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도구인 사진을 적극 활용하는데 최현 교수가 여자 후배를 만났을 때도 장례식 영정 사진과 같은 사진을 찍고 공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는 모습은 아주 인상 깊네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장률 감독

처음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인 줄 알 정도로 영화 스타일이 홍상수 감독의 일상에서 보석찾기 또는 일상에서 공감찾기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먼저 홍상수 감독은 일상을 담고 있지만 끊임없이 에피소드나 대사로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영화 경주는 이렇다할 에피소드가 거의 없습니다
한 교수가 경주에 와서 오래된 연인이었던 후배를 소환하고  찻집에서 춘화찾기를 하다가 춘화도 찾지 못하고 하룻밤을 찻집 여주인 집에서 잔 것 밖에 없습니다. 주먹다짐도 악다구니도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참으로 지루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영화 러닝타임도 2시간 30분 가까이 됩니다. 기승전결이라는 등고선이 높지 않습니다. 그냥 평지를 자전거를 타고 같은 속도로 달리다가 끝이 납니다. 그냥 사건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자전거를 타고 주변 풍경을 보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고 보니 경주여행을 가장 흥미롭고 제대로 하고 싶으면 자전거 여행을 추천하고 영화에서도 최현 교수가 자전거를 빌리고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가 자전거 여행 같다고 할까요? 하나의 집중하지 않고 물 흐르듯 이야기는 계속 계속 조금씩 나아갑니다. 

이런 모습은 홍상수 감독과 좀 다릅니다. 그러나 닮은 점도 많습니다. 
차이와 반복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적 화두를 경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찾집을 같은 날 2번이나 찾는 모습이나 경주 폭주족을 2번 조우한 모습이나 모녀의 2번의 만남 등은 매일 동일한 것 같은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지만 그러면서도 또 다른 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닮은 점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동북아 정치학 권위자인 최현 교수에게 고개를 연신 숙이던 한 교수가 자신의 뒷거래가 트러지자 역정을 내는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의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경주의 가장 흥미로운 여정은  최현 교수를 알아가는 과정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경주의 풍경도 신민아도 아닌 최현 교수입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최현 교수는 미스테리한 사람입니다. 결혼한 유부남이지만 북경에 또 애인이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항상 예의 바르고 소심해 보입니다. 유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시는 보지 말자면서 강단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선배 찾고 있다는 말에 먹던 밥을 두고 부리나케 도망을 가는 순진함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최현 교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경주를 어떠 어떠한 영화라고 소개는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 다를 것이고 정의 내리기가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또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맥락이라는 실마리를 찾기도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냥 한 교수가 경주에 와서 쉬다 가는 그 과정을 관조적으로 바라본다면 영화 읽기가 쉬워질 듯 합니다.

예술 영화를 많이 보고 훈련된 분들에게는 좋은 영화가 될 것이고 이런 느리고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한 번도 안 본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심한 영화가 될 듯 하네요. 저에게는 이 경주라는 영화가 올해 본 영화 중에 5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영화였습니다.  경주를 장소가 아닌 이미지를 차용해서 만든 잘 만든 영화입니다. 수 많은 까메오들을 찾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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