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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대한민국을 그대로 영화에 담은 듯한 12명의 노한 사람들

by 썬도그 201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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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왓챠라는 영화 평가 서비스에서 추천해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계적인 영화잡지인가에서 추천하는 100대 영화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다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제목은 잘 알고 있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노한 사람들' 또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이 영화는 생전 처음들어봤습니다. 1957년 흑백 영화인데 평점도 높고 추천의 글도 한 가득이었습니다. 나름 영화 잘 본다는 저도 모르는 영화가 있다는 게 놀라웠고 모두 평들이 좋다는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보통 별 다섯개 영화들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 어떤 악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볼 방법이 없습니다. 비디오/DVD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VOD 서비스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최신 영화들이지 이런 고전 영화는 보기 힘듭니다. 영상자료원까지 가서 봐야하나? 아니면 불법 다운로드를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들었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네요. 점점 세상은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면서 윽박을 지르고 있습니다

다수결이라는 미명 아래 내 취향이 멸종 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리이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억압된 자유의 시대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TV가 놀라운 은총을 내려주셨네요. 왓챠 서비스에서 무료 영화를 검색하다가 12명의 노한 사람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소리에 냉큼 골라 봤습니다. 무료라서 광고가 좀 있긴 합니다.(20분에 2편의 광고)


12명의 배심원이 펼치는 인간군상 드라마

이 영화는 연극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회의실 공간을 영화 내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한 스페인계 소년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칼로 찔러서 죽였습니다. 몇 명의 목격자도 있고 소년의 칼이 아버지 가슴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기에 사건은 쉽게 해결 되고 끝날 듯 했습니다
영화는 12명의 배심원들에게 만장일치로 살인 용의자인 18살 소년에게 유죄 아니면 무죄라고 결정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법원에 있는 회의실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이 회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12명은 배심원으로 참여해서 서로 잘 알지 못합니다. 이름도 잘 모르죠. 또한, 출신 성분도 직업도 다 다릅니다. 
미식축구 코치, 회사원, 통신회사 사장, 주식중매인, 페인트공, 세일즈맨, 건축가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회의는 끝날 것 같았습니다. 증인도 2명 이상이 있고 소년이 가지고 다니던 잭 나이프라는 칼도 발견 되었고 결정적으로 소년은 그 시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하지만 영화 제목도 주연 배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쉽게 회의가 만장일치로 끝날 것 같았지만 8번 건축가(헨리 폰다 분)는 의문을 제기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한 소년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유죄면 사형이 내려질 예정)데 5분 만에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1시간 만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11대 1로 투표가 갈렸고 11명은 이 건축가 1명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을 당하는 것은 1명이 아닌 11명이게 됩니다. 


합리적 의심이 세상을 움직이다

건축가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내세운 잭 나이프가 유일한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6달러를 주고 산 소년의 칼과 똑같은 칼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보여줍니다.  이에 11명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증인이라는 아랫층 노인과 이웃 건물에 사는 여자의 목격의 신빙성을 의심합니다. 

이렇게 합리적 의심은 1명이 아닌 다른 11명이 서서히 설득 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영화의 핵심 재미이자 대단한 통찰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군상의 심리와 한 사회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세일즈맨은 유죄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가 밴드웨건 효과인지 무죄가 다수결로 나오자 쉽게 무죄라고 인정합니다. 여기에 이 회의에 별 관심 없는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배심원은 유죄였다가 무죄였다가 다시 추궁하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어떤 배심원은 감정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모독한 유죄 판결자의 괘씸함에 무죄를 선언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12명의 배심원을 통해서 한 사건을 바라보고 그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 세상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대한민국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을 축소한 듯한 영화 '12명의 노한 사람들'

어떤 이슈나 사건 사고를 보면 사람마다 보는 관점과 이야기가 다릅니다. 
특히 첨예한 대립이 일어난 사건에는 진보와 보수 양편으로 갈려서 멱살 잡이를 하죠. 

문제는 이런 멱살잡이 풍경이 대한민국에서는 너무 자주 일어납니다. 대표적으로 천안함 사건입니다. 
이 천안함 사건은 정부나 보수쪽에서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은 헛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헛점 떄문에 합리적 의심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합리적 의심을 사라지게 하거나 줄이려면 명명백백한 증거와 사실에 입각한 주장을 해야 하는데 주장만 있고 증거는 부실 투성이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자 정부는 악다구니를 내뱉습니다. 허위 사실 유포하면 체포해서 감옥에 넣겠다 식의 겁박을 주기 급급합니다. 

영화에서 한 유죄를 선언한 배심원이 끝까지 자신의 주장과 검사의 증거를 의심하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쓰지만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은 다 등을 돌려버립니다.  뭐가 다를까요? 왜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무죄를 최초로 주장한 건축가의 주장에 자신의 의견을 동조할까요? 그건 상식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의심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합리적 의심만 해도 사상이 불순하다면서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써버립니다. 그게 한국 사회의 저질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이 합리적 의심이 힘을 얻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그 과정이 실수를 인정하고 헛점을 용인하는 모습이 인간답다고 할까요? 이 과정이 이 영화의 재미이자 힘입니다.

그렇다고 건축가가 그 소년이 무죄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합당한 사실이 아닌 불충분한 증거로 한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전염이 됩니다. 이 영화는 인간 군상의 행동을 그대로 담으면서도 동시에 사회 비판과 법원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회의는 검사와 변호사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했으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뛰어난 변호사였다면 이런 합리적 의심을 건축가가 아니라 변호사가 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는 큰 돈을 받지 않기에 대충 일을 합니다. 소년은 빈민가에 살고 있기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건축가가 반대를 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그게 진실이 아니라면 사법 살인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이런 합리적 의심이 마비 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박정희정권 때 인혁당 사건이라는 사법살인이 일어났었습니다. 
지금도 사법 살인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상식이 마비된 사회는 죄 없는 사람도 죄가 있고 죄 있는 사람도 죄가 없다고 만드니까요. 


영화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논리에 약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지도 잘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회의에서도 낙서나 하고 야구 경기 보러 갈 생각을 하는 사림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이득이 없지만 정의감에 반대표를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아무 주장도 안 하다가 이 얘기 들으면 그게 맞다고 하고 저 얘기 들으면 그게 맞다고 하는 줏대 없는 배심원을 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광고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사회의 이슈보다는 달콤한 가십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고 그런 사람들의 아이콘이 광고업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취향을 탓할 수도 없지만 위정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고 세상에 관심 없고 주장도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네요. 영화 12명의 노한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바로 시끄럽고 느리지만 옳은 길을 같이 가는 공리주의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이고 이게 바로 전체주의보다 민주주의 체제가 좋은 이유입니다. 다만 요즘 민주주의도 헛점이 많아서 선거 때만 주인 행세하고 선거 기간 이외에는 구경꾼으로 전락한 모습은 민주주의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다수결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획일적 결정 방식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영화는 그 획일적인 만장일치 제도에 대한 비판은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역시 좋은 영화는 오래 지나도 빛이 사그라들지 않네요.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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