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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인간의 본성까지도 장악한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키다

by 썬도그 201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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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기술시간에 줄톱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빌렸습니다. 친한 친구는 아니였는데 제가 안절부절하자 살짝 빌려줬습니다. 덕분에 기술시간에 혼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제가 그 친구의 도움을 뿌리쳤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아무튼 전 그 손길을 거절 했습니다.
그 친구의 원망어린 눈빛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트라우라마라면 트라우마죠.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도와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 그러지 못했고 그 대가로 평생 그때의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팟캐스트로 듣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하나씩 듣고 있는데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 '감기'와 비슷한 내용으로 괴질로 인해 한 도시가 봉쇄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이동진 평론가와 정유정 작가의 대화를 듣는데 정유정 작가는 괴질이라는 극도의 스트레스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상황에 다다라야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주제를 담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평소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 개봉중인 '엑스맨 : 데이지 오브 퓨처 패스트'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레이븐 또는 미스틱이라고 하는 뮤턴트입니다.
샤르트르가 말했듯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하죠. B(Birth)와 D(Death)로 가는 여정의 수 많은 C(Choice)가 우리를 대변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살면서 우리가 행하는 수 많은 선택의 합집합이 우리의 인생과 나를 형성합니다.

이 선택은 작은 선택도 있지만 중요한 선택도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선택들은 위선으로 가려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본심은 그게 아닌데 평판 때문에 혹은 사회 관계망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선택들이 있습니다. 난 솔직히 하고 싶지 않은데 착하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하기 싫어도 내 진심이 아니지만 해야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위선적인 행동을 잘하죠. 내가 다치지 않거나 나를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도움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한 사람들이나 보통의 사람들도 이런 선택을 통해서 착하다는 평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그 사람의 본성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진짜 본성을 담는 선택은 그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작던 크던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는 선택을 할 때 그 사람이 진짜 착한 사람, 혹은 선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28은 인간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생명을 위협받을 때 나오는 행동을 관찰하고 소설에 담고 있습니다. 


세월호 승무원들은 왜 천사와 악마로 구분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많이 잊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잊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잊지말라고 하지만 새로운 기억이 계속 유입되기에 잊혀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다만, 이번 사고는 그 충격파가 아주 크고 못난 기성세대가 만든 참극이기에 그 잊음을 늦춰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잊어감을 탓하지도 손가락질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외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5월 중순에 안산 촛불 집회 사진을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잊었다고 생각할 때 조금씩 소개할 생각입니다. 그 사진들이 마중물이 되어서 잊는 것이 아닌 기억에 각인 되고 굳은 살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금씩 소개할 생각입니다.

오늘 서울시청 앞 광장 분향소를 지나가면서 보니 분향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조금은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청 건물 앞에서 한 분이 종이 피켓을 들고 40대 분들의 선거가 중요하다면서 선거 독려를 하는 모습에 한참 쳐다 봤습니다.

왜 40대였을까요? 
분명, 선거는 표 하나 하나가 중요하지만 특정 세대의 표가 더 중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40대는 20대와 함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진보에서 보수로 향하는 세대이기도 하고 투표율도 높아서 40대 표심의 향방이 아주 중요합니다. 또한, 20대 분들의 투표율도 중요하죠. 
그 종이피켓을 보면서 다시 다짐했습니다. 이번 선거의 내 선택은 세월호 학생 및 일반인 희생자들을 위한 선택이고 아침 일찍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전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이 되면 본성이 나옵니다. 
왜 같은 세월호 선원인데 운영을 담당하는 승무원들은 죽음의 위협에서도 죽을 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배 안으로 들어갔고 배를 운전하는 선박직 승무원들은 모두 악마의 선택을 했을까요? 승무원들은 모두 천사의 천성을 가졌고 선박직 승무원들은 모두 악마였을까요?

선박직 승무원 중에 한 명이라도 이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객실을 두들기며 바다로 뛰어들라고 말을 한 사람이 왜 한 명도 없었을까요? 왜 이런 극명한 선택이 일어났을까요? 이 부분은 사회심리학자들이 풀어내야 하고 연구를 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세기의 석학' 기 소르망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분석하나?

참사의 원인으로는 중앙집권화한 정부 체계, 상명하달 방식의 의사소통 구조, 시민사회의 역량 부재, 유교적인 교육문화, 부패를 낳은 제도의 허점,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는 정부 등으로 분석됐다.

(기사 중 일부 발췌)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은 이번 세월호 사건을 위와 같이 분석 했습니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상명하달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세월호 선내 방송이라는 권위를 따랐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선내 방송의 권위를 믿고 따랐습니다. 이는 유교적인 교육문화의 병폐라고 기 소르망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100퍼센트 일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가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어른이 말하면 혹은 권위자가 말하면 토달지 말라고 하면서 질문 자체를 받으려하지 않습니다.

현 대통령 보세요. 기자회견 하면서 제대로 질문을 받나요? 질문을 아예 안 받거나 받아도 짜고 하는 질문만 받습니다. 
아이들은 의심을 하긴 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거론하면서 그때도 기관사 지 혼자 도망갔다면서 우리도 그러는 거 아니냐고 지나가는 소리로 했습니다. 또 한 학생은 아무 방송을 하지 않거나 또는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부모님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의 유교는 좋은 점은 다 휘발되고 유교의 나쁜 또는 유교를 곡해하고 일본 군대 문화가 융합한 "까라면 까" 정신만 남았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이번 참사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자기 판단은 못하고 상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세월호 승무원의 모습은 전형적인 상명하복의 시스템입니다.
이런 상명하복의 수직적 세계관은 리더가 똑똑하고 사리판단을 잘하며 높은 도덕심을 가질때 큰 효용을 발휘 합니다. 문제는 리더라는 우두머리가 부패하고 무능하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큰 피해를 입습니다. 

세월호 선장, 기관장은 악마였습니다. 그래서 배 전체를 1,2명의 악마가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성은 수직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게 얼마나 강했는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 악마성은 인간의 본성마저 마비 시킬 정도입니다. 물론, 선박직 승무원 모두가 악마였을 수도 있지만 게 중에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악마 상관이 지시하는대로 그리고 그 선택이 최소한 자기들의 목숨을 보존해 주기에 쉽게 따랐습니다. 

이런 인간의 양심에 의한 선택까지도 마비 시킨 행동은 실험으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 세월호의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시스템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지식채널]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 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밀그램의 실헝은 전체주의 사회가 일으킨 2차대전의 비극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박직 선원들의 악마적 선택을 옹호할 수 없습니다. 분명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서도 일부지만 실험을 거부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청문회와 백서를 통해서 분해하고 분석할 때 이 한국 사회의 전체주의 같은 혹은 군대 같은 시스템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꼭 집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외치는데 그 개조가 조직의 헤쳐 모여라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간판만 바꾸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껴집니다. 수평적 사고 방식을 주입해야 합니다. 또한,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강력하게 이건 아닙니다. 이건 몰상식입니다라고 말해도 아무런 해꼬지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특히, 자신의 생명의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 분들의 거룩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분들의 선택이 밀알이 되어서 한국 사회의 상명하복의 시스템을 깨뜨렸으면 합니다. 

"복종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 교육이 선생님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선실 안에 머물었다가 희생당한 학생들이 많았던 점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때 갑판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선실에 남아 있다가 비극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위 기사 내용중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학생들에게 합리적 비판의식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합리적 비판을 하는 아랫사람의 말에 귀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기어오른다. 버르장머리 없게 어른에게 대든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비판이 합당하지 않으면 무시하지 않고 설득이나 설명을 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다면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 첫번 째 단추는 경청입니다. 설득이나 이해를 시키기 전에 아랫사람의 말도 경청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식으로 경험으로 깔아 뭉게면 안 됩니다. 경험이 얇은 상태에서 경험이 마지 진리인양 주장하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100년에 한 번 꽃을 피는 나무를 보고 내가 평생 지켜 봤는데 이 나무는 꽃을 피지 않는다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경험은 한 정된 사실만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여왕벌이나 여왕개미가 있는 사회 같습니다. 생각과 판단은 여왕만이 하고 나머지는 여왕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회 같습니다. 

문제는 여왕개미나 여왕벌은 자신의 종족을 붕괴 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알파 수컷이라고 하는 동물의 우두머리들도 먹이나 짝짓기나 서열이 있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집단의 의견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한국은 이런 동물과 곤충보다 못한 사회가 아닐까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가 주체적이어야 하며 개인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는 행동이 세월호 희생자를 가장 오래 기억되는 행동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떨어진 마지막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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