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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르누아르는 2시간 동안 그림을 보는 듯한 지루한 영화

by 썬도그 201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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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그림을 푹 빠지게 되는 계기가 아마도 고흐나 르누아르 그림을 보고 그림의 매력에 빠질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고흐는 30살이 넘어서 푹 빠졌지만 르누아르는 20대 초반에 그의 그림을 보고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나? 할 정도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화사한 색감과 예쁜 여자들이 가득한 그림들. 특히 색들이 너무 화사하고 맑고 경쾌해서 그 놀라운 색채에 한참을 보게 합니다. 

그림 모르는 사람도 르누아르 그림을 보고 싫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르누아르는 인기 좋은 인상파 화가입니다. 
그래서 영화 '르누아르'를 봤습니다. 입소문을 들어보니 좋다는 평이 몇 개 보여서 개봉하자마자 봤습니다. 


두 르누아르와 모델 데데의 이야기

영화가 시작하면 한 여자가 대 저택에 들어섭니다. 이 대 저택에 들어선 이유는 이곳에 살고 있는 유명한 화가인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당찬 아가씨 데데는 뼈가 굳어져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 늙은 화가 '르누아르'의 누드 모델이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늙은 화가와 젊은 모델의 사랑 이야기로 생각 될 수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모델과 화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니 많이 있지만 데대와 르누아르와의 사랑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뼈가 굳어가고 있는 상태라서 정신적으로는 데데를 훔쳐볼 수 있어도 육체적인 관계는 가질 수 없습니다. 

몇년 전에 읽은 '화가와 모델'이란 책은 화가와 모델의 관계만 빼곡 하게 담은 책입니다. 그림은 오랜 시간 모델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계기를 통해서 연인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사진은 짧아서 그런 관계가 많지 않나?) 영화 '르누아르'의 주된 줄거리도 이 모델과 화가의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든 몸을 한 르누아르와 데데의 관계가 아닌 르누아르가 행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이 모델과 화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다 그런 건지 아니면 르누와르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중간부분에 모델 데데와 하녀들과의 갈등이 나옵니다. 몸이 아픈 르누아르를 아침 저녁으로 아틀리에에서 집까지 힘쏀 하녀들이 의자를 들고 이동하는데 이 하녀들의 정체가 르누아르의 모델 겸 하녀입니다. 모델로 들어 왔다가 나이가 들면 하녀로 역할을 바꾸거나 하녀이면서 동시에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갈등은 데데와 하녀들의 갈등으로 보여집니다. 

또 하나의 갈등은 아버지 르누아르와 둘째 아들인 장 르누아르의 갈등입니다. 장은 아주 바른 청년입니다. 1차 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전에 입대했다가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집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다시 전쟁터에 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장은 동료를 버릴 수 없다면서 다리가 나으면 다시 입대 하겠다고 합니다.  

영화는 이 두 명의 르누아르와 데데의 이야기를 핵심 이야기로 뿌리면서 동시에 화가와 모델의 관계 그리고 인간 르누아르의 성품과 그의 예술 세계까지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주황색이 가득한 영화 르누아르, 명화를 스크린에 옮긴 듯하다

영화 르누아르는 1915년을 배경으로 시작 합니다. 이때는 르누아르의 노년기입니다. 
영화에서 르누아르는 나이가 들면 단순하게 그리고 싶다는 말고 함께 이런 말을 합니다. 
"르누아르 그림에는 검정색이 없어"  그래서 그랬나요?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항상 화사합니다. 이는 르누아르의 그림 스타일 떄문입니다. 르누아르는 아프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그림을 아주 싫어 합니다. 현실이 충분히 비참한데 그림에서 까지 그런 고통을 담고 싶지 않다면서  고통을 그리는 화가에게 맡기고 자기는 밝고 화사한 것만 그리고 싶다고 합니다. 

이 밝고 화사한 그림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매직아워라고 하는 해지기전 황금빛이 나풀거리는 시간대에 많은 부분 촬영을 합니다. 모델 데데의 붉은 머리가 역사광으로 찰랑거릴 때는 마치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또한, 아뜰리에 자체가 하나의 그림 같기도 합니다. 

르누아르의 화풍을 아주 잘 표현한 영화이고 르누아르 그림을 영화로 그대로 담은 듯한 놀라운 미장센이 아주 뛰어납니다. 움직이는 르누아르 그림이라고 할까요? 여기에는 여주인공 데데역을 한 '크리스타 테렛'의 맑고 깊은 눈망울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이 당찬 아가씨의 행동 하나 하나가 그림과 같습니다. 

영화에서 르누아르는 여러가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이 배우가 되겠다는 말에  남는 것이 진짜다라고 합니다. 그림처럼 남는 것이 진짜지 연극과 같이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죠. 이뿐만 아니라 그림도 돈 되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르누아르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르누아르의 성품과도 연결 되는데 아들 장이 다시 군대로 돌아가겠다고 할 때 곧으면 부러진다면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라고 다그칩니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성품이 좋은 작가는 아니였다고 하네요. 이런 아버지의 현실 순응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행동들을 아들 장은 똑똑히 보고 자랐고 아버지와 다른 곧은 성품의 청년이 됩니다. 영화는 이 장과 아버지 그리고 데데의 이야기 윤곽선 없이 계속 덫칠 하면 영화가 완성되어 갑니다. 


윤곽선 없는 르누아르 그림처럼 명징한 스토리가 없어서 무척 졸리웠던 영화

르누아르는 아들에게 그림을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계속 칠하고 또 칠하고 칠하면서 윤곽을 만들어간다고 살며시 알려줍니다. 영화 르누아르는 마치 윤곽선이 없는 그림 같이 명징한 스토리가 없습니다. 갈등이라고는 데데와 장 사이의 갈등과 데데와 하녀들의 갈등이 전부입니다. 

영화 내내 르누아르의 아뜰리에만 가득 나오기 때문에 많이 지루합니다. 장면 하나 하나는 그림 같이 예쁘고 따스하고 황금빛이 가득합니다. 특히 아뜰리에에 저녁 햇살이 가득 찰 때의 따스한 온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밍밍합니다. 영화 겨울왕국의 이야기가 밍밍해서 좋은 평을 쓰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더 심심합니다. 큰 갈등도 없고 있다고 해도 격분하는 정도가 아닌 쉽게 해결이 되면서 영화는 시종일관 졸리움의 물감을 풀어냅니다.  

차라리 장과 데데가 연인을 넘어 결혼을 하고 둘째 아들 장이 영화 감독이 되고 아내인 데데를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다룬 그 시기까지 담았으면 참 좋으련만 영화는 아쉽게도 거기까지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보라고 권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르누아르의 인생 전체를 담은 것도 아니고 1915년만 다루고 있기에 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지루하네요

영화 선택을 나름 잘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는 지루함이 많아서 추천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하고 데데와 르누아르의 관계를 잘 아는 분들이라면 볼만 한 영화입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데데의 그림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려면 모델과 사랑을 안 할 수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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