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마스터, 우리 모두는 마스터가 필요로 하는 나약한 존재들

by 썬도그 2014. 1. 15.
반응형

씨네21 연말 호를 들쳐보니 2013년 최고의 외국 영화에 '마스터'와 '홀리 모터스'를 꼽고 있더군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영화 '마스터'가 2013년 올해의 외국 영화로 선정 되었습니다. 제 영화 선택의 길라잡이이자 마스터 같은 존재인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10점 만점에 10점을 주면서 극찬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고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지난 여름에 예고편만 보고서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가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유사 종교' 같은 정신 치료술을 펼치는 사이비 현상을 담은 듯한 뉘앙스가 솔깃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다 보면 이 영화가 애니 '사이비' 같은 유사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사 종교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느끼는 '마스터'라는 영화의 주제는 '상처 받은 영혼'입니다. 모든 사람이 상처 한 두개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에 주인공의 상처가 너무나 측은스러우면서도 그 상처가 자기연민까지 이어지는데 이 공감대 형성이 와락 와 닿지는 않지만 등을 두둘겨 주는 따스함이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2차대전이 막 끝날 무렵입니다. 프레디 퀠(호아킨 피닉스 분)은 종전 선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아름다운 섬의 바닷가에서 치기어린 장난을 동료 병사들과 함께 합니다. 그 치기어린 장난이란 모래로 여자 나체를 만들어서 노는 것이죠. 

그런데 이 프레디는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흔한 정신검사 테스트조차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모든 그림을 여자의 성기나 남자의 성기로 바라봅니다. 이는 그의 아픈 과거와 가족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술 때문에 죽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여기에 프레디는 참혹스러운 전쟁의 참상을 보고 반 정신이 나간 상태입니다. 집으로 가야 하지만 집에는 고통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유하는 영혼 프레디에게도 항구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프레디에게 편지를 보낸 친구 여동생입니다. 그러나 이 첫사랑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프레디가 돈을 벌러 배를 타러 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프레디는 많은 상처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럭저럭 생활은 하면서 살아가던 프레디. 멋진 사진 기술로 사진을 촬영해주고 돈을 법니다. 그러나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폭발적인 성격 때문에 사회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이성에 대한 관계망도 다 깨졌습니다. 그렇게 사진관에서도 도망치듯 나온 후 프레디는 한 흥청망청 파티를 하는 배에 오릅니다. 


여기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그 배의 주인은 마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가 주인인 배입니다. 
마스터는 코즈라는 정신분석 단체의 수장입니다. 코즈 이론으로 백혈병도 고치고 정신 치료를 하는데 이 코즈 분석 방식은 인간의 윤회설을 바탕으로 둔 방식입니다. 현재의 고통은 과거로부터 왔고 과거를 알면 현재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트라우마 치료법을 개발 합니다. 

이 코즈라는 단체는 '사이언톨로지'라는 유사 종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정식 이론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격을 당합니다. 공격을 받으면 받아치거나 설명을 하거나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유사 종교와 비슷하게 버럭 화를 냅니다. 날 못 믿어?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영화는 여기서 사이비라는 유사 종교를 비판적으로 담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유사 종교임을 느끼게만 할 뿐 직접 비판은 하지 않습니다. 


프레디는 이 코즈라는 단체의 수문장이 되어버리면서 동시에 환자가 됩니다. 
마스터에게는 프레디가 자신의 양아들이자 코즈 이론을 테스트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스터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수시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과 같은 깊은 애정심으로 프레디를 치료하기 시작 합니다. 



점점 세를 불려 나가는 코즈라는 단체는 신흥 종교의 느낌까지 들게 됩니다. 그러나 신과 같은 존재 혹은 메시아 같은 존재여야 할 마스터도 독약 같은 술에 취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이런 헛점이 있는 마스터를 프레디는 정신적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헛점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 갔는지도 모르죠.

이렇게 둘은 서로를 의지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됩니다. 프레디는 마스터에 의지하고 마스터는 프레디에 의지하는 공생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도 갈등이 생깁니다. 종교의 가장 큰 적인 믿음에 틈이 생깁니다. 코즈 분석에 대한 여러 의심들이 날아들고  심한 갈등을 겪습니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영화는 이 둘 사이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마스터가 은유하는 것은 여러가지 일 것입니다.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스승이 될 수도 있고 아내나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스터는 우리가 기대는 절대적인 존재 혹은 기댈 수 있는 누군가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 믿어도 너는 믿고 따르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 있듯 우리 안의 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마스터는 담고 있습니다. 프레디는 그 마스터가 코즈의 수장인 마스터였고 마스터의 마스터는 프레디였습니다. 비록 그 마스터가 가짜고 사이비라고 해도 내가 그에게서 평안으 느끼고 안식을 느낀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면 우리가 왜 '사이비 종교'에 물드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속는 줄 알면서도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사람이기에 믿는 모습,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 외로움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프레디가 마스터에 매달리고 보호하는 문지기가 된 이유는 깊은 외로움을 들추어서 세상에 내보이게 헀고 그 외로움을 거두었던 사람이 마스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사이비 종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방법이 아닌 마스터 같은 깊은 애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이 영화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 없지만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밋밋하네요. 음악 선곡도 좋고 스토리텔링은 좋긴 한데 뭔가 극적인 것도 없고 좀 잔잔합니다. 그나마 놀랍게 봤던 것은 '호아킨 피닉스'의 놀라운 연기입니다. 이 연기를 2013년 아카데미가 외면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정도입니다. 정말 연기 잘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가장 연기를 잘한 모습인데요. 이런 연기에 상을 안주다니 그게 더 놀랍네요. 

한쪽 입만 열고 씰룩거리듯 말하는 모습이나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세상에 무관심하듯 껄렁이듯 살면서도 무섭게 똘기 발산하는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임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을 콘트롤 하지 못하는 그 깊은 아픔이 연기에 그대로 묻어 나옵니다. 또한 마스터 역을 연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란 바다 위를 항해하는 우리들의 삶은 가끔 항구에 도착해서 정박을 합니다. 그 정박의 시간에 보급품을 싣고 다시 항해를 합니다. 그 정박지가 바로 우리들의 마스터이고 우리는 가끔 마스터에게 영혼의 보급을 받습니다. 마스터 없이 살아가는 삶들은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들이 현자가 될 수는 있어도 인간다움의 상징인 부족한 삶이 아니기에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포옹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가장 인간 다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