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그리움과 꿈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by 썬도그 2013. 12. 25.
반응형

한 남자가 덜컹거리는 완행 전철을 타고 외딴 곳에서 내립니다.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 곳에 다다르자 남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중학교 시절의 자신과 친구들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남자. 그의 얼굴에는 긴 한숨이 드리운 듯 합니다. 아마득한 추억을 돌아보는 듯한 모습에서 중학교 시절의 추억이 피어 오릅니다. 



히로키와 타쿠야는 중학교 단짝 친구입니다. 운동도 공부도 잘해서 인기가 많습니다. 특히 타쿠야는 여학생들의 사랑 고백에 쌓여 삽니다.


이런 히로키와 타쿠야 사이에 사유리가 들어 옵니다. 히로키가 평소에 짝사랑하던 사유리는 히로키와 타쿠야가 몰래 진행하던 일을 보게 됩니다


히로키와 타쿠야는 몇달 전에 추락한 일본군 항공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항공기를 스스로 고칩니다. 그러나 부품과 돈이 없기 때문에 근처의 미군 납품업체 사장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히로키와 타쿠야가 사는 시대는 전쟁이 일어난 후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유니온이 지배를 하는 남북 분단 상태입니다. 마치 한국의 남북 분단 상태를 그대로 연상하시면 됩니다. 

전후 세대인 히로키와 타쿠야는 전쟁에 대한 공포는 크게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니, 미군정이 지배하는 남 일본이나 유니온이 지배하는 북 일본이나 전쟁이 아주 익숙해진 풍경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유니온(북 일본)에서는 거대한 탑이 쏟아 오릅니다. 한 뛰어난 물리학자가 세운 거대한 탑은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도쿄를 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탑이 왜 세워졌는지 무슨 용도인지는 미군정은 잘 모릅니다. 

 히로키와 타쿠야는 사유리 앞에서 자신들의 계획을 말합니다. 


이 거대한 탑 꼭대기를 자신들이 만드는 비행기로 가 보겠겠다는 원대한 꿈을 말합니다. 사유리도 꼭 보고 싶다면서 이 두 친구를 응원합니다. 그러나 중3 여름 사유리가 말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갑자기 사유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히로키와 타큐야는 비행기 조립을 그만 둡니다. 그렇게 히로키와 타큐야도 히로키가 도쿄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히로키는 매일 같은 꿈만 꾸게 됩니다. 사유리가 어두운 세계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 꿈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탑의 정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꿈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애니계의 이와이 슌지라고 하는 '신카이 마코토'감독이 2004년에 만든 첫 장편 영화입니다. 
이미 그의 작품 세계나 소재나 주제는 전작인 '별의 목소리'에서 보여줬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아주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멜로 영화나 멜로 애니를 만들면 화면에는 달달한 모습과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면서 세련된 이미지가 가득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마코토 감독은 놀랍게도 멜로를 베이스로 깔면서도 SF 장르를 아주 잘 녹여냅니다. 마치 한 영화에 2개의 장르가 섞여 있는 듯 합니다. 누가 SF 로봇 만화에서 먼 거리에 떨어진 소년, 소녀의 그리움을 끄집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도 '별의 목소리'와 많은 부분 유사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세계관 자체가 아주 독특합니다 2차 대전 후에 일본은 지금의 한국처럼 분단이 되어 있습니다.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유니온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 누구 하나 독립을 요구하거나 시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순응을 하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항상 작은 분쟁들이 남 일본과 북 일본 사이에 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자주 연출 됩니다. 마치, 남북한의 현재 모습과 아주 비슷하죠. 여기에 북 일본에서 올라온 거대한 탑이 영화 중반까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얼마나 높은지 하늘을 다 올려다 봐도 끝이 안 보일 정도입니다. 

이 탑은 유니온이 지배하는 북 일본 영토에 있는데 한 천재 물리학자가 세운 것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에는 멜로물로 그려집니다. 사유리를 짝사랑하는 히로키와, 타쿠야와의 우정, 마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청춘 영화 같아 보입니다. 솔직히 좀 졸립기도 합니다만 배경의 신인 마코토 감독의 뛰어난 미쟝센은 시선의 흐트러짐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후반에는 SF 영화로 전환을 합니다. 


평행우주론을 아시나요?
요즘 타임머신을 통한 타임립스 영화와 함께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가 평행우주론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주 어딘가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나 세계가 있고 거기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소리죠. 뭐 도플갱어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 애니 '스지미야 하루히의 우울'도 이런 평행우주를 소재로 하더라고요. 

나와 닮은 사람 혹은 또 다른 우리와 비슷한 세계가 있다는 가정을 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평행우주를 아주 로맨틱하게 표현하는데요. 우리가 꿈이라는 현실과 비슷한 그러나 기억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평행우주의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우주가 꾸는 꿈을 평행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즉, 꿈이 평행우주라고 하는 설정은 상당히 창의적입니다. 사유리의 꿈과 거대한 탑 그리고 평행우주라는 조합이 내는 놀라운 이야기는 SF 매니아인 저에게는 상당한 흥미 꺼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놀라운 창의력은 바로 감수성에서 나오는지 SF에 대한 식견도 아주 뛰어나면서 동시에 감수성도 뛰어납니다. 이건 마치 과학자가 로맨스 소설을 쓰는 듯한 느낌이고  멜로와 SF의 유기적인 조합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매특허입니다. 

감히 이 두 개의 조합을 누가 이렇게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다만, 최근작인 '언어의 정원'에서는 SF 요소를 다 제거하고 오로지 멜로에만 집중해서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SF에 대한 내용이 줄어들어서 좀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그 SF요소의 빈자리를 더 큰 감수성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소재는 평행우주를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그의 모든 영화에서 담기고 있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초속 5cm에서도 한 남자가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그리워하고 서로를 그리워합니다. 또한, 별의 목소리에서도 두 소년, 소녀가 서로를 그리워하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기본 정서도 바로 그리움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사라진 사유리를 그리워하는 히로키와 히로키와 한 약속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유리, 둘 사이의 감정은 그리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 이어짐은 꿈이라는 매질을 통해서 전달이 됩니다. 조금은 이해 안 가는 설정들이 좀 있긴 합니다. 탑의 정체와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네요. 몇몇 작은 아쉬움만 빼면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아주 매끄럽게 잘 담은 애니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팬이라면 꼭 보셔야 할 애니이고 독특한 애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큰 액션은 많지 않습니다. 멜로가 9할 액션이 1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감수성이 민감한 분이 아니라면 졸기 딱 좋은 애니이기도 합니다. 
감수성이 좋은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