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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오랜만에 보는 핏빛 에너지가 가득한 수작, 영화 화이

by 썬도그 201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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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한국 영화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담은 영화는 단언컨대 2002년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물파스로 외계인을 고문하는 모습에 무슨 이런 B급 코메디가 다 있나? 하고 깔깔 거리고 봤습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보던 지구를 지켜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멍해졌습니다.

어??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데 왠지 모를 눈물이 흐르더군요. 주인공 병구가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흥행 대참패를 했지만 해외 영화제에서는 극찬을 했던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저주 받은 걸작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배우 문소리의 남편입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장준환 감독의 다음 작품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네요. 그러다 올해 초 영화 '화이' 제작 소식에 너무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다시 장준환 감독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올 가을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리고 영화 '화이'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제 기대치를 90% 이상 충족한 영화였습니다. 


5명의 범죄자가 키운 양아들 '화이'

영화 화이의 줄거리는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힘이 있는 스토리입니다. 스토리의 얼개는 올드보이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복수와 복수 2개의 복수가 충돌하면서 큰 감정의 폭발과 액션의 폭발이 일어납니다. 

화이는 어려서부터 낮도깨비라는 범죄자 집단에 의해서 키워집니다. 5명의 범죄자들을 모두 화이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5명의 아버지는 하나의 범죄 조직이지만 5명 모두 악마 같지는 않습니다. 낮도깨비의 리더격인 석태(김윤석 분)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은 냉혈한 아버지도 있고 말을 더듬으면서 범행 때 운전을 담당하는 기태(조진웅 분)과 범죄 설계자인 진성(장현성 분)과 친형 같은 범수(박해준 분), 행동파 동범(김성균 분)이라는 5명의 아빠 중에 기태는 마치 어머니 같이 화이를 감싸고 화이를 웃게 만듭니다. 

이렇게 스펙트럼이 다른 아버지 밑에서 화이는 범죄 조직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살인 격투술, 사격술을 배우면서 점점 살인 병기로 길러집니다. 그러나 화이 속에는 소년의 감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지만 교복을 입고 다니고 같은 동네 여고생을 짝사랑을 합니다.  화이는 비록 악마로 길러지지만 그 안에서 빛의 세계를 동경하죠. 


그러나 이런 화이의 나약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리더인 석태입니다. 
석태는 화이가 자신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 되길 원하고 말을 듣지 않고 망설임이라는 나약함을 보일 때면 지하실에 가두어 버립니다.  화이에게는 이 지하실이 너무나 끔찍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지하실에 갖히게 되면 어둠 속에서 괴물이 나와서 화이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괴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화이가 어떻게 괴물을 물리치고 괴물이 되어가는 지를 보여줍니다. 




어두운 골목을 피해가던 소년이 어두운 골목에서 삥을 뜯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제 중학교 2학년은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조례 시간이 지나면 미래의 깡패들이 일어나서는 삥을 뜯습니다. 아침에 뜯고 저녁에 뜯고 다른 반 가서 원정 삥을 뜯고 방과 후에는 으슥한 골목에서 야! 이리와봐라는 인삿말로 뜯습니다. 

한 곱상한 친구가 그렇게 삥을 뜯기는 것을 괴로워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공포에 하루 하루를 지냈고 그 중2 시절은 깨끗하게 지우고 싶은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삥으로 괴로워하던 친구가 중3이 되더니 변했습니다. 한 번은 골목길에서 하급생의 삥을 뜯던 모습을 봤는데 놀랍게도 그 삥을 뜯던 놈이 바로 그 곱상하게 생긴 친구였습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멍하니 쳐다 보고 있었는데고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뜯더군요. 

이후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원해 졌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친구는 뒷골목에서 삥을 뜯는 깡패가 되었다고 하네요. 왜 그 친구가 그렇게 변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화이'를 보니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하네요.

화이는 괴물이 자신을 괴롭히는 환상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괴물이 되자 그 괴물은 사라집니다. 아마 그 친구도 그렇게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괴물이 되었던 것일까요? 영화 화이는 화이의 변화가 가장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다른 모든 캐릭터들은 크게 변화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지만 고등학생 화이는  빛과 어두움에서 괴로워하다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괴물을 먹어치우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그 악마성은 폭주를 하게 되고 5명의 아버지를 향해서 총구를 겨누고 질주를 합니다. 

자신을 키워준 5명의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 대결 구도의 에너지가 넘쳐 나고 화끈하고 선혈이 낭자한 액션이 난무합니다. 


아버지 왜 절 키우셨나요?

화이는 석태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왜 절 키우셨나요?" 이 물음은 이 영화의 중요한 대사이기도 하지만 관객이 감독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와 상당히 비슷한 스토리 얼개는 이 부분에서 올드보이 보다는 당위가 떨어지게 됩니다.

화이가 5명의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게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과 호흡이 너무나 짧습니다.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기태 같은 상대적으로 착한 아버지도 있고 외국의 미술학교에 보내주려는 진성이라는 따스한 아버지도 있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느닷없이 아버지들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냉혹한 리더 석태가 화이의 실전투입을 하는 장소가 화이와 연관된 장소라는 것과 그걸 알면서도 말리지 않는 온건파 아빠들의 모습 등은 이 영화가 올드보이의 그 촘촘한 짜임새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제작 했다고 하는데 정작 스토리의 힘은 있지만 세밀함과 디테일은 좀 아쉽기만 하네요. 특히나, 감정이 크게 튀는 계기가 되는 장소이자 장면인데 현실성도 떨어지고 좀 헐겁습니다. 그래서 관객이 감독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왜 화이를 저런 아빠들이 키운건데??



자신과 닮은 아들을 갖고 싶은 석태. 악마가 되라고 다그치다 

영화는 후반 부에 석태의 충격적인 과거 이야기가 나오며 왜 화이를 키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놀라운 이야기는 초, 중반때 까지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줍니다. 영화는 영화 초반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면서 점점 숨가쁜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신과 닮은 아들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실패한 삶을 아들이나 딸에게서 복원 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자기애가 가득한 욕심일 뿐이고 자식들을 하나의 객체로 보지 못하는 부모들의 오지랖들일 뿐입니다. 석태도 자신과 닮은 아들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석태와 화이는 닮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화이는 빛을 본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여고생과 아버지 기태를 통해서 빛을 봤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많은 메타포가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에반게리온, 올드보이, 공구리 문화에 대한 비판, 세상 모든 악은 평범하다라는 이야기 등 영화는 우리 주변에 어슬렁 거리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화이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피와 시멘트를 먹고 자란 화이, 그는 세상을 향해서 총구를 겨누고 세상을 저격합니다. 오랜만에 본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이자 강렬한 영화입니다. 약간의 성김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좋은 영화입니다. 여진구와 김윤석의 연기 대결이 아주 볼만 합니다. 스토리의 성김을 이 두 배우가 꽉 메우고도 남은 에너지를 스크린 가득 뿌려줍니다. 추천하는 한국 영화 화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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