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웠다면 그림을 기계적으로 잘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 그림은 못 그리지만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름도 잘 모르는 샤갈 전시회를 보고 사진의 역사를 담은 사진전을 관람한 후에 전시회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대학 동아리 시절 사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다가 사진을 제대로 알려면 미술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미술 관련 책들을 수집하고 읽고 찾아가서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미술을 알면 알수록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기만 하네요. 특히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 세포 분열하기 시작한 미술은 이제 우리의 눈이 편하게 읽어 들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미술은 세상 모든 것이 오브제이자 캔버스라고 말하는 듯해서 더 복잡해지고 이해도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해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대 미술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다 보니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미술들이 꽤 많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미술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요? 아니 우리들이 너무 복잡하게 살고 모든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려는 습속 때문일까요?
그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면 미술 문화 내부에 원인이 있기보다는 외부에 있는 경우가 더 많고 궁극에는 우리 자신에게 있기도 하다. 미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 처한 현실과 사회 속에 그리고 미술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현실이 녹록하지 않기에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는 어떤 미술작품도 여유를 갖고 감상할 수 없으며 온전히 소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삶을 낙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불운과 공포를 견뎌야 하는 현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미술은 더 이상 삶을 더 풍요롭게 경험하도록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미술을 본래의 순연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병자에게 처방한 처방전처럼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미술이 지닌 많은 미덕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편식하듯 경험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학습하게 된다. 현대의 미술을 둘러싼 근시안적인 또는 불균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본연의 미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을 되찾는 노력은 시급한 과제이다
<미술에 관한 모든 것> 중에서 역자 김노암의 글 중에서
이 글은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상태는 잘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미술을 치료 도구 같은 기능성으로 접근하는 모습에 대한 지적도 공감합니다만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관람자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모습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상황이 불안과 공포라면 그 불안과 공포를 잘 도드라지게 담는 미술 작품이 우리를 풍자하고 조롱하고 치유하고 달래고 꾸짖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근시안적인 미술에 대한 이해나 소양으로는 분명 현대 미술품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대중이 꼭 미술만을 바라보는 동물은 아니라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미술을 좋아하지만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고 좋아해도 사진 이전의 미술 즉 인상파 화가 이전의 미술들만 인기가 많은 모습을 보면, 현재의 미술에 대한 인기는 크지 않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고전 명화나 인상파 그리고 좀 복잡해도 많이 알려진 표현주의 추상, 입체화 화가들이나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팝아트'가 대중의 큰 인기를 받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하고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미술을 거부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지속되거나 더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술 애호가와 미술가들에게 101가지 질문을 던진 '미술에 관한 모든 것'
아주 독특한 책입니다. '미술에 관한 모든 것' 외모부터가 남 다릅니다. 크기가 아주 작은 책입니다. 두께도 그렇게 두껍지 않습니다.
이 책은 화가이자 교수로 활동 중인 '킷 화이트'라는 저자가 쓰고 그린 책입니다. 이 책을 펼쳐보면
저자가 미술 교육을 하는 교수로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써 경험하면서 느낀 아포리즘 같은 문장이 박혀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정화 되어서 짧은 문장으로 담겨 있고 그 문장에 대한 설명이 하단에 있습니다.
왼쪽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스케치가 있는데 유명 화가나 조각가의 그림과 조각을 스케치한 것이 보입니다.
이 책은 순차적으로 읽어도 되고 가끔 꺼내서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어도 됩니다. 저자의 경험의 액기스가 담겨 있기에 아무 곳이나 펴셔 읽어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어느 정도 미술적 소양이 있는 분들에게는 큰 공감을 형성하지만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려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난위도가 있습니다. 아포리즘은 총 101개가 담겨 있습니다.
미술 역사와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부분부터 다양한 미술에 대한 경험과 시선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101개를 다 읽어 봤지만 저는 한 50% 정도는 이해하고 공감이 가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나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 아닙니다. 계속 미술에 대한 소양과 지식을 쌓고 보고 체험하면서 하나씩 열리는 빗장처럼 그냥 스치듯 지나간 문장이 언젠가 깨달음으로 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곁에 두고 가끔 꺼내다 보면 더 좋을 책입니다. 미술가들에게도 좋은 책입니다. 미술가 지망생이나 미술가들도 뭔가 막힐 때 꺼내서 읽다 보면 한 문장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만한 책입니다. 문장이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수시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하며 때로는 정답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공감한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지각은 상호작용이다'의 내용은 작가가 이미지를 통제할 수는 있지만, 이미지에 대한 반응은 통제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네요. 작가는 아니지만 가끔 보면 어떤 영화나 작품이나 사진을 보고 작가의 의도와 달리 해석하는 것을 상당히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만 꼭 그 작품을 그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왜 작품을 봅니까? 그냥 작가의 변이나 작가와 친한 평론가가 쓴 글을 읽는 것이 더 낫죠?
굳이 작품을 보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인터넷으로 사진과 설명만 들으면 되니까요?이건 평론가의 시선을 자기 시선으로 동기화시키는 우매한 행동입니다. 다만, 객관적이고 변치 않는 정보는 전시 카탈로그에서 읽으면서 그 작가의 배경이나 작품 환경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이런 의도로 담았다고 하는 것은 참고만 하면 됩니다. 작가의 의도와 평론가의 시선이 정답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느꼈다면 그게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보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보면 힐난하는 분들이 있죠. 이미지에 대한 반응은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뇌는 패턴 인식을 위한 회로이다라는 문장도 아주 좋습니다.
새로운 시각 언어는 대부분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탄생한다고 하는데 정말 재미있고 확 끌리는 예술품들을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다른 각도에게 보게 함으로써 미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진에 대한 내용도 몇개 나오는데요. 사진이 가져온 가장 큰 미술의 변화는 프레임입니다. 사진은 도구의 한계 때문에 모든 풍광을 한 사진에 담지 못합니다. 파노라마 사진이라고 해도 우리가 본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담지 못합니다. 즉 사진은 우리가 본 것의 일부만 담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프레임의 마술이라고도 하죠. 이렇게 어떤 것을 담고 버리고 하는 선택의 과정이 사진의 재미이자 단점인데요. 재미있게도 이 사진의 프레임술이 나오자 미술도 사진과 비슷한 프레임으로 담는 미술들이 많아지더라고요.
미술은 그냥 다 그리면 됩니다. 눈으로 봤건 눈으로 보지 않았건 그냥 다 그리면 됩니다. 없는 것을 그렸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리얼리티가 미술의 요소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진 이후에 미술도 리얼리티를 무기로 한 미술도 나오고(하이퍼 리얼리즘 미술) 사진과 비슷한 그림도 많이 보입니다. 얼마 전에 본 그림은 사진의 아웃포커싱 기술을 묘사한 그림도 보이던데 그 그림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책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은 백과사전처럼 가끔 꺼내보면서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단 미술에 관심이 있고 자주 미술관람을 하는 분들 이상에게만 추천합니다. 서점에서 몇 장 넘겨보면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가 가르치고 그리면서 느낀 미술에 대한 신랄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