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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암울한 시대의 소시민의 울부짖음을 담은 영화 '칠수와 만수'

by 썬도그 2013.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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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시절입니다. 소시민의 울음소리가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약 2만 5천명(cnn 보도)이 국정원 선거개입에 항의 하며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지만 어느 지상파 언론도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콘이라는 인기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정치성 있는 사회비판적 발언을 하면 논란이라고 떠벌리는 언론이 즐비합니다.

감히 말하지만 전두환, 노태우가 있던 시절도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생생히 그 시대를 살아온 저는 똑똑히 봤습니다. 사회 비판적인 소재를 다룬 탱자 가라사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소시민의 페이소스가 담긴 개그를 해도 어느 누가 아니 언론이 너무 사회 비판적이지 않냐며 논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군사 정권이었지만 개그맨들이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어느 개그 프로그램이 사회 비판적 소재를 다룹니까? 어느 언론이 정권을 제대로 비판을 합니까? 

그래서 서럽습니다. 여기 88년 초겨울에 개봉한 칠수와 만수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후퇴를 목도하게 됩니다. 


도장공 칠수와 만수 세상에 고함을 치다


고등학교 때 개봉한 칠수와 만수를 당시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기스타였던 박중훈과 안성기가 나온 영화이고 엄청난 인기를 끈 연극 원작 영화라서 보고는 싶었지만 당시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튜브에서 이 영화가 무료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한국영화들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칠수와 만수'입니다. 



칠수와 만수는 80년대를 그대로 박제한 듯한 80년대 시대상을 잘 그린 영화입니다. 2명의 도장공이자 영화 간판 혹은 광고 간판을 페인트로 그리는 도장공 박만수(안성기 분)과 장칠수(박중훈 분)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장칠수와 박만수는 영화 간판을 그리는 것이 직업인 소시민입니다.
지금이야 영화 간판 그리는 사람이 없고 있어도 대형 프린팅 걸개 그림으로 대처하지만 당시는 개봉관에서도 대형 포스터를 직접 사람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장칠수는 20대 청년이고 박만수는 30대 형님인 듯 합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사회 밑바닥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칠수는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지나(배종옥 분)을 꼬십니다. 자신을 미대생이라고 속이고 미나를 스케치한 그림으로 지나와 친해지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됩니다. 지나는 명문대를 다니는 대학생으로 약혼자도 있는 평범한 중상류층 대학생입니다. 

칠수는 지나와의 계급적 차이를 알긴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접근을 하죠. 만수형을 프랑스에서 유학하다온 화가로 소개하면서 급속도로 지나와 칠수는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그 벽을 실감하게 됩니다. 


둘은 친 형제처럼 지내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 칠수는 미나에게 한 것처럼 만수 형에게 형님이 미국 이민을 갔는데 마이애미에서 초청을 하면 자기도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칠수에게 있어 마이애미는 천국 혹은 일탈의 장소입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서의 이민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잘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둘다 밑바닥 인생은 아니더라도 상위 계층으로 넘어갈 수 없는 서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칠수와 만수'는 초반에는 80년대 고도성장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유쾌하게 그려갑니다. 지나와 칠수의 장난스러운 데이트 장면등은 유쾌함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음악을 담당한 김수철의 O.S.T도 이런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한국 최초의 랩을 구사한 노래가 바로 '칠수와 만수'의 O.S.T에 담긴 노래입니다. 지금은 랩이 일상어가 되었지만 당시인 88년에는 국내 가요에서 볼 수 없었고 김수철이 최초로 한국 최초로 랩을 시도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전반부에서는 유쾌함을 제공하지만 후반부에는 장칠수와 박만수의 과거가 담기면서 급속도로 어두워집니다. 



장칠수와 박만수는 형제 같이 지내지만 서로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둘의 개인사를 꺼내놓게 됩니다. 
칠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지나 앞에서도 만수 형 앞에서도 보여주려고 했지만 번번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칠수는 마이애미에 이민간 형이 있는 것이 아닌 양공주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간 누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동두천 하우스 보이로 매일 술에 찌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각되지 않지만 당시 80년대는 동두천과 양공주 그리고 미군 문화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시절입니다. 그런 동두천에서 살다온 칠수, 

그리고 만수의 아버지는 사상범으로 감옥에서 30년간 살고 있습니다. 
만수나 칠수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어두운 과거나 가족사가 있지만 둘 다 그걸 드러내지도 그렇다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만수 같은 경우는 여동생이 공장에 다니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만 만수는 여동생의 그런 불평불만을 무시하거나 어두운 가족사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인생도 유전일까요? 아버지가 사상범이라서 받는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만수는 아버지 혹은 가족이 싫습니다. 
80년대에 그 많은 한국 노동자들이 중동 건설 현장에 갈 때도 신원 조회에서 아버지가 사상범으로 투옥 되었다는 것 떄문에 중동에 가지 못한 모습을 한스러워합니다. 

칠수는 지나라는 여대생과 친해지려고 하지만 자신의 신분과 출신성분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청춘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둘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 고층 빌딩에서 대형 광고판을 그립니다. 그러다 만수가 소리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대형 광고판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칩니다. 세상 엿 같다고 소리를 칩니다. 소심하게도 아주 소심하게도 그렇게 외치는데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이 신고를 하면서 경찰 출동하고 전경들이 배치가 됩니다. 

영화는 여기서 시대의 소통 부재를 극명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냥 세상 엿 같다고 몇마디 외친 것에 세상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노사문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자살을 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칠수와 만수는 황당해 합니다. 그냥 몇마디 소리 친 것이 전부인데 전경까지 출동하고 방송국 헬기 까지 뜹니다. 

이게 아닌데~~ 그냥 작게 수줍게 세상에 대해서 욕지기를 했는데 사회 불순분자가 되어버립니다. 손사래를 치고 먹던 소주병을 들자 화염병이라고 오해하는 세상. 이런 모습은 현재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냥 정부 비판을 한 것 뿐인데 국정원이 IP를 추적하고 이메일을 감시하며 사회 불만 세력으로 낙인 찍는 세상. 세대는 1 세대가 흘러간 시간이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 되었습니다. 

합당한 정부비판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서 무조건 불순한 세력이라고 몰아세우는 요즘. 어찌보면 88년의 노태우 정권이 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보다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당시는 사회 비판을 해도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사회 비판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홍위병들이 조금만 사회에 비판을 해도 빨갱이라고 도매급으로 매도합니다. 일베 현상. 이게 다 뭡니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영화는 계급에 대한 불만, 연좌제 인생에 대한 불만도 담고 있고 이런 모습은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영화와 연결됩니다. 
철가방이 여대생이라는 넘볼 수 없는 계급 상위의 여성을 흠모하고 좌절하는 모습. 칠수도 지나를 좋아했지만 스스로의 계급에 묶여서 스스로 열패감에 쓰러지게 됩니다. 

영화 칠수와 만수는 80년대의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그렸습니다. 강남의 고층빌딩, 정치비판, 시대의 적응하지 못하는 두 청춘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잘 담은 수작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도 비슷한 고통으로 살고 있지만 현재의 20,30대 청춘들의 고뇌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거의 없습니다. 있어도 예술 영화로 치부되거나 독립 영화로 제작될 뿐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예술이거나 혹은 소수만이 우리의 고통을 돈으로 소비하는 모습으로도 보여지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일상이 고통스럽지만 누구도 그 일상을 담은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제 소비재가 되었지 치유재가 아니니까요. 칠수와 만수. 어쩌면 이런 영화를 다시 만나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시려면 http://www.youtube.com/watch?v=6cmtZ4XYz7E&feature=relove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서는 지난 한국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지난 시대의 우리의 자화상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습니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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