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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포토저널리즘의 대가.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 한국에 오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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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즘의 대가.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 한국에 오다

썬도그 썬도그 2013. 7. 25. 11:52


글을 쓸려고 며칠을 벼르고 있었지만 그 어떤 글 보다 잘 쓰고 싶다는 부담감에 쓰지를 못했습니다. 부담감을 느끼는 글이 거의 없지만 이 글을 쓸때는 부담이 되네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를 잘 소개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지요. 

저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 중에서도 다큐 사진이나 보도 사진을 좋아합니다. 이 보도 사진이 좋은 이유는 그 사진이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 때문입니다. 명징하고 단단한 해머 같은 파괴력이 있습니다. 단 10초 만에 사람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이 보도 사진의 힘을 믿기에 제 블로그 이름을 '사진은 권력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는 2명입니다. 1명은  87년 6.10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직격 최루탄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 이한열군을 촬영한 정태원 AP 사진기자와  또 1명은 2차대전 종전의 도화선이 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카메라에 담은 '로버트 카파'입니다.


로버트 카파가 위대한 이유는 누구도 가지 않았던 곳에 갔기 때문

1944년 6월 6일 오마하 해변에서 '로버트 카파' 촬영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살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앞에서는 독일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고 있었고 상륙정에서 내린 미군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참혹하고 비참한 모습이 가득 했습니다

로버트 카파는 제 1 상륙부대와 함께 오마하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다른 연합군도 동시에 상륙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상륙한 오마하 해변만 큰 참상이 일어납니다. 많은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된 오마하 해변은 다른 해변과 달리 탱크 지원이 없었습니다. 원래 작전은 해변가에 다가가면 함선에서 상륙정과 함께 물에 뜨는 탱크를 함께 출격 시키려고 했지만 독일군의 강력한 견제 사격에 놀란 미군은 해변에서 먼 바다 위에 물에 뜨는 탱크를 내 뱉어버립니다. 그 탱크들이 모두 침몰하면서 미군은 다른 지역과 달리 탱크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 미군들은 독일군 기관총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습니다. 참혹한 해변가에 '로버트 카파'도 있었습니다. 
로버트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화약 냄새와 피냄새와 비명소리가 가득한 오마하 해변가는 생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살풍경에 어느 누가 떨리지 않겠습니까?  로버트 카파도 수 많은 전쟁을 목격했지만 오마하 해변의 참혹함 앞에서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그래서 초점이 나갔습니다. 심하게 흔들리는 손으로 인해 초점이 나간 사진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흔들린 사진이 오히려 현장감이 더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고 그를 세계적인 보도 사진작가로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이 사진을 실은 라이프지는 이렇게 캡션을 답니다. "카파의 손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1944년 6월 6일 오마하 해변에서 '로버트 카파' 촬영

사진 자체로 미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초점도 나갔고 구도도 완벽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버트 카파 사진이 위대한 이유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것도 가장 격전이었던 오마하 해변 현장을 카메라로 담은 유일한 사진작가였기 때문입니다. 몇몇의 사진기자들이 함선에 있었지만 상황이 너무 위험스러워서 상륙정에 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파'는 그 위험천만하고 화력 지원도 충분치 않은 오마하 해변으로 가는 상륙정에 탔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촬영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유일한 사진, 유일하게 오마하 해변 현장에 있었던 사진작가. 그가 로버트 카파입니다. 로버트 카파는 함선으로 돌아가는 상륙정을 다시 얻어타고 오마바 해변에서 빠져 나온 뒤에 필름을 조수에게 맡기는데 이 조수가 현상 과정에서 필름을 망가트려서 겨우 10장만 남게 되었습니다. 목숨과 바꿀뻔한 사진들인데 한 순간의 실수로 다 날릴 뻔 했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더 애잔한 느낌도 듭니다. 

사진작가들 얼굴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만. 전 로버트 카파를 보면 남성미가 넘치는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짙은 눈썹에 미남형 얼굴은 세계적인 여배우와 염문을 흘리기도 했죠. 




그를 세상에 알린 어느 공화국 병사의 죽음의 논란


로버트 카파를 세상에 알린 사진은 이 사진입니다. 사진은 잘 몰라도 이 사진은 아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만큼 아주 유명한 사진인데요. 이 사진은 총알을 맞아서 뒤로 쓰러지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 병사의 죽음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어느 공화국 병사의 죽음, 1936년 스페인 

로버트 카파를 알려면 이 카파의 성향을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죽음의 순간을 잘 잡았다고만 생각하고 맙니다. 그럴 수 밖에요 스페인 내전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잘 알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이 쓰러짐은 스페인에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쓰러짐 혹은 스페인 국민들이 파시스트에 의해 쓰러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스페인 내전을 알아야 합니다. 글의 성격과 맞지 않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1936년 부터 39년까지 벌어진 전쟁입니다. 스페인은 20세기 초 까지 봉건사회였다가 1936년 2월 총선거를 통해서 시민들이 정권을 잡습니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아닌 농민, 시민들의 이름 없던 사람들이 연합해서 인민전선 정부를 만들죠. 당연히 좌파 성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익 세력인자 반정부세력인 프랑코 장군이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 같은 악마에게 전폭 지원을 받으면서 이 인민전선 정부를 와해 시킵니다. 

당시 이런 무자비함과 파시즘을 헤밍웨이, 피카소 등의 사회주의 성향의 소설가와 예술가들이 세상에 고발합니다. 
로버트 카파도 좌파 성향의 사진작가입니다.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쪽 시선을 담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쇼정권인 프랑코의 입장도 담을 필요가 있을까요?  세상이 기울어져 있으면 곡선을 달릴 때 자전거를 기우는 것처럼 사진작가도 시선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듯 사진도 정확한 세상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연출 논란입니다. 연출한 사진이라는 소리인데 이 소리는 너무나도 완벽한 구도와 순간 포착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런 논란에도 로버트 카파가 위대함에는 누구도 부인을 하지 않습니다. 로버트 카파가 비록 이 사진으로 세상에 유명해졌지만 이 사진 한 장만 찍은 것이 아닌 엄청난 퀄리티의 사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1937년 파리 빌바오. 공습 사이렌 소리에 대피소로 향하는 시민들


1944년 파리. 공습경보에 광장에서 웅크리고 있는 파리 시민들


로버트 카파는 대표적인 전쟁 보도사진작가입니다. 2차대전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연합군은 로버트 카파를 보면 행운의 상징이라고 좋아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의 사진들을 보면 전쟁을 좋아하기 보다는 전쟁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보세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도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전쟁을 전혀 모르고 전쟁을 만화로 배우고 배달의 기수나 국방 홍보용 영화로 배운 철부지들이 전쟁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부모가 죽고 형제가 죽고 삶이 파괴되어 봐야 전쟁의 무서움과 참상을 알죠. 



1945년 4월 18일 독일 라이프지히, 독일군 저격수 총탄에 쓰러진 미군 병사 


이런 사진들을 보면 전쟁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내 가족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은 해야겠지만 일부러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종군 기자 대부분은 반전주의자라고 하잖아요. 

 


1948년 8월 프랑스, 피카소와 그의 아들 클로드

로버트 카파는 비록 최후의 순간에도 전쟁터에 있었고 그 전쟁터에서 지뢰 때문에 사망 했지만 평생 전쟁 혹은 분쟁 사진만 찍은 것은 아닙니다. 이 사진처럼 재미있는 사진 혹은 밝은 사진도 찍었습니다.

위 사진은 친구인 피카소와 그의 아들의 사진을 촬영 했는데 정말 귀여운 사진 아닌가요?
카파는 당대에 인기 많았던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 피카소 , 마티스와도 예술적 교감을 나눈 사진작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들은 앵글이나 구도가 남다르고 멋집니다.  분명 화가의 붓놀림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한 구도가 보여집니다. 

세심함은 브레송이 더 좋지만 힘은 카파 사진이 더 좋습니다

로버트 카파는 언론사에 소속된 사진작가가 아니였습니다. 이점은 무척 중요합니다. 수 많은 사진기자들이 많은 사진을 촬영하지만 언론사 성향에 따라서 사진이 짤리거나 편집되어지거나 이런 사진을 찍어오라고 종용 당합니다. 자신이 목격한 사실 그대로를 사진에 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데요. 사진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로버트 카파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 입사 원서를 낸 한 유럽 언론사는 그들을 모두 불합격 처리합니다.

이에 카파와 친구들은 사진 애이전시를 만드는데 그 사진 에이전시가 바로 그 유명한 '매그넘'입니다.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등이 있었던 전설적인 사진집단입니다.

카파이즘을 창조한 이 위대한 사진작가가 한국에 옵니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과 한국 전쟁 종전 60주년 기념으로 로버트 카파 사진전이 개최됩니다.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

뉴욕 국제 사진센터 ICP는 로버트 카파의 동새이며 보도 사진계의 선구자인 코넬 카파가 설립한 곳입니다. 이 ICP가 소장한 소장품이 한국에 처음으로 옵니다. 이전에도 로버트 카파 사진전이 국내에서 있었습니다. 그 로버트 카파 사진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은 코넬 카파가 형의 사진 중에 160점을 직접 셀렉트 했습니다. 셀렉트도 아주 중요한 작업이고 어떤 것을 보여주고 안 보여주고가 그 사진전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줍니다. 

또한 2007년 12월에 발견 된 멕시칸 수트케이스 속의 담겨진 필름 속 사진도 한국에서 최초로 보여집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로버트 카파.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피사체를 촬영할 때 마음의 거리를 충분히 좁히면 그 피사체의 본질과 만날 수 있습니다. 

8월 2일 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지하 1층에서 개최 하는데요. 지하 공간이 아주 커서 규모가 상당할 듯 합니다. 너무나 기대되고 설레이는 전시회입니다.


전시 기간 :  2013년 8월 2일 ~ 10월 28일
전시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지하1층)
관람 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9시
입장료 : 성인 1만 2천원, 청소년 8천원, 어린이 7천원 (단쳬 20인 이상 2천원 할인)
문의 : 0505-300-5117, 02-3701-1216
홈페이지 : 
http://www.robertcapa.co.kr


이벤트도 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카파 따라하기 사진 콘테스트인데 피사체와 다가간 나만의 사진을 올리면 됩니다. 피사체외의 거리가 좁혀진 사진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접사 사진 올릴 듯 하네요.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사진을 올려보세요. 인물사진이 더 큰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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