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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가부장 제도에서 태어난 괴물 김준평을 담은 피와 뼈

by 썬도그 201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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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엄마에게서 오고 뼈는 아빠에게서 온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고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은 메이킹 필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전 첨들어봅니다. 다만, 이런 말은 자주 듣죠

"피는 못 속여"

저는 이 말이 너무나도 듣기 싫습니다. 왜냐하면 전 친할어버지 외할아버지를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복잡한 아버지 가족관계가 참 싫었습니다. 차마 밝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가계도에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 시절은 다들 그렇게 첩을 두고 살았다고 하지만, 전 친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얼굴도 한 번 본적없고 사진도 남은 것이 없어서 사진으로도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복잡한 가족관계에 친가 쪽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잘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김준평은 딱 우리네 할아버지 세대 혹은 증조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부장 제도에서 태어난 괴물 김준평을 담은 피와 뼈.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분)은 1928년 일제시대때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배에 올라탑니다. 그에게 있어 오사카는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사카에서 성실한 청년이 아닌 괴물이 되어갑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김준평의 아내인 이영희를 겁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부 관계이기에 성폭행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김준평은 인사도 없이 아내를 겁탈해버리는데 여기서 부터 이 영화는 참으로 드럽고 화나고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추악한 모습이 계속 나옵니다

김준평은 아내를 패고 겁탈하고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식구들을 위협하는 개망나니입니다. 
2차대전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이 김준평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버립니다. 김준평의 아내 이영희도 참 기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주임과 눈이 맞아서 임신을 해서 쫒겨난 후 아이를 출산한 후에 김준평과 결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무조건 자기 지시대로 해야 성이 차는 아버지 김준평과 항상 도망치려고 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그 김준평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지 이영희 밑에서 영화의 화자인 아들 마사오와 마사오의 누나 하나코가 한 가족을 이루고 삽니다. 

영화 '파와 뼈'는 김준평이라는 인물을 아들인 마사오가 서술하는 형식으로 담긴 영화입니다. 

김준평은 전쟁 후 홀연히 다시 집에 와서는 어묵장사를 한다면서 집을 자기 맘대로 개조를 합니다. 그렇게 어묵공장을 만들어서 어묵 장사가 크게 번창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개망나니는 아니고 그래도 가족을 먹여살리려는 노력을 보면서 아버지가 맞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들게 합니다만 

주체할 수 없는 여성편력의 결과물이 도착을 합니다. 김준평의 싸질러 놓은 아들이라는 청년이 찾아오는데 김준평은 말 없이 받아들입니다. 이 아들이라는 녀석은 여러모로 참 민폐를 끼치지만 김준평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 짓꺼리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망나니이면서도 가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로써의 모습도 보여야 하기에 
참고 또 참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려고 하는 김준평입니다. 

하지만 김준평은 폭발하고 이 아들놈과 비오는날 큰 싸움을 합니다. 아들과 싸우는 아버지, 한마디로 개판5분전인 가족이고 콩까루 집안입니다


넘치는 정력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사랑을 찾았는지 전쟁 과부 키요코를 데리고 옵니다.

어묵장사로 번 돈으로 마사오와 하나꼬 그리고 엄마가 함께 사는 바로 옆집을 사서 거기서 전쟁과부 키요코와 함께 삽니다.
오사카 조선인 동네에서는 이런 모습에 키요코를 손가락질 하며 냉대하고 동네 부끄러워 하지만 정작 누구도 김준평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김준평은 그 동네의 실세이기 때문입니다.  


김준평은 어묵장사로 큰 돈을 벌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내와 아들 딸을 냉대합니다. 
그리고 번 돈을 오로지 새로운 첩인 키요코에 다 쏟아 붓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손가락질 받고 이혼소송감이지만 놀랍게도 이런 모습을 아들, 딸, 엄마 모두 견뎌냅니다. 네! 맞습니다. 견딥니다. 정말 추악한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들 이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참아야 하는 식구들

그러다 키요코가 뇌종양으로 쓰러지자 화가난 아버지 김준평은 딸인 하나코를 때려서 이가 빠지게 하고 하나코는 자살을 하기 위해 쥐약을 먹습니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지만 동생이자 김준평의 아들인 마사오는 이런 아버지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목욕탕에 갔지만 오히려 아버지에게 얻어맞습니다. 

이런 추악한 세상이 계속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김준평이라는 괴물이 누구보다 깡다구가 있고 싸움을 잘 했습니다. 또 하나는 어머니가 집안을 풍비박살나지 않게 참으라고 인내하라고 견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아버지가 밉고 지랄 맞아도 니 아버지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맹목적인 가부장제 옹호도 있습니다.

지금의 10,20대는 이해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아니 조선시대부터 남존여비 사상과 가부장제도가 정착된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계집을 끼고 살던, 바람을 피던 자식들이나 아내가 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첩을 여러명 두고 수 많은 씨를 뿌려도 집안 어른이자 가장이면 다 허용이 되었습니다. 

저 아프리카 추장 말하는거냐고요? 아닙니다. 한국의 100년전 풍경이자 50년전 풍경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엔 아주 흔했습니다. 그런 풍토 즉, 아버지면 부정한 일을 해도 못본 척 하고 대들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나 나이 많은 연장자가 부정한 행동을 해서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이 "어르신 그러시면 안되잖아요"하면 "너 몇살이냐?" 라며 버르장머리가 없다고들 합니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존경받고 아버지면 길거리에서 똥을 싸도 못본척 해야 하는 모습, 이게 얼마 전의 한국의 모습이자 지금의 한국의 모습입니다. 귄위를 움켜진 사람이 잘못을 해서 피지배층이 그건 잘못 된 것 아닙니까? 라고 하면 발로 밟으면서 어디서 버르장머리없게 대들어! 라고 하죠. 


피지배계층. 이 말이 생각납니다. 어머니, 아들, 딸은 김준평을 상전으로 모시는 피지배계층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아버지를 중오하면서 삽니다. 아버지가 싫어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딸은 남편의 구타와 동생이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친척 오빠가 북으로 간 뒤 소식이 없자 자살을 합니다. 

영화는 이 딸의 장례식을 희극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평생을 가족을 거들떠도 안 보던 김준평은 딸을 보겠다고 장례식장에 와서 깽판을 치고 어머니와 마사오는 누나 하나코의 시신을 이불에 싸서 이리저리 피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웃어버렸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요. 

이거 슬랩스틱 코메디도 아니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죠. 딱 그말이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화상. 김준평 언제 디지나 간절히 기원을 했습니다. 영화는 이 김준평이 죽으면서 끝이납니다. 중풍으로 다리를 절면서도 일수를 하면서 돈을 벌고 뛰어난 수단으로 돈을 그러모으는 김준평,  아내마져도 죽고 마지막 남은 가족인 마사오에게 찾아가서 빚을 갚아주겠다면서 자기 밑에서 일수쟁이가 되라고 제안하지만 절대로 자기 돈을 아들에게 줄 수 없다고 하는 고집불통인 김준평,

그는 결국 쓸쓸한 생을 마감하면서 영화는 끝이납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한국인에 대한 비하라고 말합니다. 네 그렇게도 솔직히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더기가 득시글한 돼지고기 삮인 것을 먹는 모습이나 김준평이라는 인물 자체가 악마와 동급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일동포의 삶이나 억울함 분통 터지는 모습이나 핍박을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김준평이라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삶을 재일동포 전체의 삶으로 확대해석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 김준평이라는 괴물이 태어나게 한 것은 한국의 가부장 제도의 헛점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비판도 좀 들어가 있긴 합니다. 

마사오는 아버지가 구더기가 가득한 삮인 돼지고기를 먹는 모습에 토를 합니다. 그 모습에 계집이냐며 핀잔을 주는 아버지, 
이 장면은 어찌보면 이 김준평 아니 김준평 세대에 대한 제 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네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세대의 추악스러운 모습, 비록 그런 모습이 관습이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면서 그 관습을 따라야 하는 모습은 좋게 볼 수 없습니다.

김준평은 토하는 아들 마사오를 보면서 "짜식아! 너도 다 크면 이런 거 자연스럽게 먹게 되어 있어" 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아들 마사오는 아버지와 다르게 아버지 세대와 아버지를 소설로 세상에 고발을 합니다. 원작 소설가인 양석일은 제일교포2세로 이 소설에서 자기 아버지를 그대로 묘사하고 고발해 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폐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가족간의 비판을 할 수 없는 문화 속에서 김준평이 태어나온 것은 아닐까 하네요. 가족간에도 서로 잘잘못은 묻고 따져야죠. 그래야 건강한 가족이 되는 것 아닐까요? 아버지가 뒷돈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그 돈으로 자기 등록금과 유학자금 해외여행 돈이 나오는 것을 알기에 눈감는 아들이 커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피와 뼈는 바로 김준평이라는 괴물을 고발한 아들세대의 고발장 같은 생각이듭니다. 물론, 이 아버지 세대들이 모두 김준평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훌륭한 아버지들 참 많죠. 하지만 김준평이 가진 그 어두운면을 우리네 아버지들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못된 짓을 참 많이하죠. 

솔직히 지금 한국의 아버지 세대들이 건강합니까? 돈만 잘 벌어다주면 밖에서 뭘하고 다니든 신경쓰지 않는 모습들, 내새끼리즘과 먹고사니즘의 2개의 철학만이 현재 한국의 양대 철학이 된 모습들 속에서 오늘도 부정부패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부정한 짓에 손가락질 합니까? 자식 때문에 사기를 쳐도 아버지! 사기 치지 마세요라고 합니까? 김준평이라는 괴물은 흔하지 않지만 아버지라는 절대권력자의 횡포에 지금도 고생하는 수 많은 처자식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전 이 가족사진이 참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자식과 아내를 잡아먹은 김준평이라는 괴물이 여러명의 인생을 풍비박살내는 모습에 서글프기도 하네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가 아니였다면 김준평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로 나온 ''오다기리 죠'를 흠씬 패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일 정도로 대단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무표정한 모습에서 나오는 야쿠자 같은 포스, 그러면서도 첩인 키요코가 뇌종양에 걸리자 버리지 않고 똥오줌을 받아주는 책임감 있는 모습, 이런 양가적인 모습을 기타노 다케시는 잘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고소한 아들의 고소장 같은 영화이자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세대의 각각의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 제도 즉 가부장적인 제도 속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 중 부성애는 전혀 없고 자신의 가부장이라는 절대권력으로 기집질이나 하고 가족에게 주먹질을 한 오발탄들을 고발한 영화 같아 보입니다. 

영화는 김준평의 아역을 연기한 배우를 김준평의 또 다른 아들역으로 배치하면서 묘한 삶의 굴레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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