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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죽음 이후의 현실을 담담하게 담고 있는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by 썬도그 201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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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때 직접 상을 치러봤습니다. 상을 치르는 것은 슬픔과 고통의 연속이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견디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장례식을 직접 겪거나 간접적으로 겪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말은 수시로 하지만 죽음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말을 우리는 잘 하지 않습니다.
두 문장은 이음 동어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먹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밥을 먹으면 보통 
'저 사람은 고독할거야'라는 말을 하죠. 특히 여자가 혼자 술이나 밥을 마시면 무슨 사연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한국은 유난히 고독을 외면하려는 습성이 많습니다. 고독을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버려야 하고 외면해야 하고 더럽고 못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가 버릴 수 없는 한 부분입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떠올리기 싫어하고 외면하고 거론하기 꺼리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우리 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삶을 유지하려면 좋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죽음 이후의 현실을 담고 있는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유품정리인은 좀 낯선 직업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죽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혼자 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유족을 대신해서 고인의 물건과 집 정리를 맡아서 처리하는 전문업자입니다.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는 일본의 유명한 유품정리회사인 '키퍼스(Keepers)'의 대표인 '요시다 타이치'와 키퍼스의 한국지사장인 '김석중'이 키퍼스를 운영하면서 만난 죽음을 목도한 경험담을 담은 책 입니다. 좀 으스스 할 것 같다고 생각들을 하시겠죠.

네 책 내용은 좀 섬뜩하고 으스스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묘사를 미스테리물이나 추리소설식으로 흥밋거리로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담대하고 고인에 대한 존경심과 사무적인(?) 시선등 정말 프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모습을 책에 진솔하고 담고 있습니다

책은 총 53화로 구성되어 있고 1화는 2~3페이지 정도로 짧게 담고 있습니다. 그중 일본인 저자 '요시다 타이치'가 쓴 글이 46화까지이고 47화부터 53화 까지는 김석중 대표가 경험한 경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단순히 유품만 정리하는 직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유품만 정리하는 것이 아닌 시체를 치우고 방 전체에 남겨진 시취(시체 냄새)를 제거하고 굳어버린 피나 썩어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까지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엄청난 시각적인 충격을 묵묵히 참고 일을 하는 이 '유품정리인'들의 프로정신입니다. 
저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인의 가족들도 고개를 돌리는 모습인데 그들은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저는 직접 할머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상조회사 직원분이 안 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아버지만 보셨습니다. 그 상조회사 직원들은 그런 일을 직업으로 하기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아무 감정 없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닌듯하더군요. 그들도 사람이기에 지켜보기가 힘들지만 그걸 참고 견디는 이유는 남은 가족들이 전하는 따스한 감사의 인사 때문이겠죠. 두 저자는 이런 부분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의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책 내용은 충격의 연속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고독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뉴스에서 죽은 지 한 달 만에 혹은 1년 만에 혹은 6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면서 모자이크 처리된 시신이 있든 혹은 시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어도 그 현장의 모습은 끔찍함 그 자체입니다. 

일본인 저자는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를 합니다. 시취는 기본, 처참한 광경들을 목도하고 저자의 충격과 견디기 힘듦도 담고 있지만, 묵묵히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현장의 사방으로 튀긴 핏자구를 제거하며 구더기와 바퀴벌레등을 치우는 일과 부패한 시체를 제거하는 일등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고독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살인사건 현장이나 무연사회의 단면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으나 이웃과의 왕래도 없고 친척이나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서 죽은 지도 모르는 사람의 쓸쓸한 모습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거부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그 모자이크 처리되어 보여주는 뉴스 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죽음 이후의 현실이라고 할까요? 죽으면 그냥 시체만 치우면 끝이 난다고 편하게 생각하겠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은 아주 힘겨운 모습들입니다.  어느 언론도 어느 방송도 혹은 누구도 입으로 함부로 꺼내고 말하기 싫어하는 죽음 이후의 현실을 책에 짧게 짧게 담고 있습니다.  너무 길게 담거나 묘사를 좀 더 심도있게 했다면 책을 읽다가 참 힘들어 했을텐데 일부러 그랬는지 저자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글은 아주 간결하고 사무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 저자가 좀 더 자기 생각과 묘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잘 하더군요


고독사에 관한 경고를 우리에게 해주는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는 유품 정리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전체적인 제 느낌은 고독사에 관한 책이 아닐까 할 정도로 고독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은 덜 하지만 일본은 고독사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웃과의 왕래도 없고 가족과의 연락도 하지 않고 사는 고령의 노인분들이 혼자 사시다가 지병 등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 죽은 후 짧게는 2,3일 길게는 1년 후에 발견되기도 합니다. 일본인 저자는 이런 고독사를 목도하면서 사회가 점점 원자화 되고 가족간의 끈이 느슨해 지면서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 현실에서 고독사가 늘어남을 한탄해 합니다. 

P.58-59 : 고독사가 증가함에 따라 집주인이 겪는 리스크도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고, 같은 이유로 독거노인의 입주를 거절하는 임대인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게 쉽게 상상이 된다. 결국 살 곳을 잃은 노령의 노숙자도 증가할 것이고, 노인 시설의 부족은 더더욱 표면화될 것이다. 고독사는 죽은 사람 본인뿐만 아니라 남은 사람, 그리고 집을 빌려준 측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에 대해, 우리들은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때라고 생각된다.


신기하게도 일본의 사회문제는 꼭 한국의 5년 후에 일어나더군요. 예전에는 한 10년 전의 일본의 모습이 한국에서 보이더니 요즘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도 일본에서 먼저 발생한 사회문제죠.  왕따도 일본의 이지메의 모습을 한국에서 현재 보여주고 있고요.  고독사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지금 일본은 이 고독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한국은 그런 모습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고독사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국이 고독사가 적은 이유는 사회복지사의 노인돌봄서비스인 유케어(U-care)서비스가 있고 점심 도시락을 전달해주는 복지서비스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보다는 가족의 유대가 더 끈끈하다고 볼 수도 있고요. 어제 뉴스를 보니 방에 감지기를 설치해서 며칠 동안 방의 움직임이 없으면 바로 119가 출동하게 해 놓았더군요. 이런 면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휠씬 잘 대처하고 있네요. 이래서 복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런 유케어 서비스등은 65세라는 공식 노인이 되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65세 이하의 고독사는 방지할 수 없습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5화 '쾌활하기 짝이 없는 기묘한 의뢰인'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참혹하게 살해된 중년의 여성이 나옵니다. 남편이 의뢰를 했는데 이 남편 참 이상합니다. 아내가 살해당하던 날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고 저자인 유품정리회사에서 나왔을 때도 농담을 하는 등 너무나 흥겨워 하는 모습에 저자는 불쾌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의뢰인인 남편이었다는 뉴스가 나오게 되죠. 

이 에피소드 말고도 8년간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던 은둔형 외톨이, 가족과의 반목으로 무연고자가 되어 쓸쓸한 마지막을 맞는 사람.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고독을 견딜 수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 사채 때문에 매춘업을 하다가 자살을 한 여자 등 다앙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힘겨운 풍경 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의뢰인이라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나 아무리 미웠어도 마지막 가는 길에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아닌 쓰레기 취급 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한 고인의 지인인 교회 신자가 가짜로 위임장을 써서 집의 보증금을 받으려는 모습과 누군가가 고인의 집에 와서 돈이 될만한 가재도구를 가져가는 모습은 분노가 치밀더군요

반대로 너무 젊은 나이에 죽거나 부모보다 먼저 죽은 고인들은 남은 가족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모습에 저도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일 두 유품정리업을 하는 저자들의 따스함을 느껴지는 책

일본의 유품정리회사인 키퍼스를 차린 요시다 타이치는 5년 전에 일본의 한 다큐에 나오면서 유명해집니다. 그 다큐를 본 저자 김석중은 일본으로 건너가 요시다 타이치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둘은 서로를 형,동생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이후 저자 김석중은 한국에 키퍼스를 차리고 유품정리업을 하면서 고독사에 대한 다큐를 한국어로 더빙해서 배포를 합니다. 

죽음은 죽는 사람들에게는 끝이지만 남아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더라고 남아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죠.  어쩌면 죽음이 없으면 두 저자는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고 고독사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회사의 수입은 떨어지겠죠. 하지만 두 저자는 '고립사 DVD'를 제작해서 고독사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면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고립사 DVD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익보다는 생명이 우선이겠죠.
또한 가족도 지켜보기 힘든 죽음의 현장을 정리하고 냄새를 제거하며 유품을 정리해서 고인을 '천국으로 이사'를 돕고 있습니다. 

시간(時幹), 공간(空間), 인간(人間)에는 모두 '간(間)'이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간격, 틈, 사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시각과 시간의 간격, 장소와 장소의 간격, 사람과 사람의 간격보다 그 '사이'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듭니다. 
같은 시공간에 살아도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서먹한가요. 저는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공감'이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중에서 242페이지 중 일부 발췌>

책 내용은 낯설고 읽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차가운 현실이고 이 죽음을 목도하면서 삶의 의미와 우리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은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책은 절대 아닙니다. 또한 잘 다듬어진 모습도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항해일지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담백함이 이 책을 힘들이거나 감정의 기복을 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죽음 이후 천국으로 가는 항해일지를 지상에서 쓴 책 같습니다.
유품정리인이 본 것은 죽음 이후의 현실과 죽음을 둘러싼 우리들의 추악한 혹은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 우리가 남긴 물건이 우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보여주는 삶과 보여주지 않는 삶의 괴리감을 좁히면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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