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예술공장의 전시회 - 전국 창작공간 네트워크 프로젝트 '그 거리의 창의적인 자세' 의 창고동 전시장을 다 보고 3층으로 올라 갔습니다. 금천예술공장은 1층 창고동과 3층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층에 올라가니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이름이 보이네요
스톤앤워터.
이 말을 처음 들었을때 뭐지?라고 갸우뚱 했지만 한국어로 해석해보니 돌과 물 즉 석수였습니다. 안양에는 석수동이 있습니다. 서울시 금천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죠. 이 석수동에는 석수시장이 있고 이 석수시장에는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가 있습니다.
보충대리공간은 데리다가 말한 대리보충의 개념을 담은 것인데요. 기존의 전시공간인 갤러리나 박물관등 정형화되고 제도권의 전시공간과 제도권 예술을 보충하고 대리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대안공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스톤앤워터는 그 대안공간 마져도 거부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공간인 보충대리공간이라는 독특한 닉네임을 가지고 있네요.
매년 석수예술프로젝트와 만안영화제등 석수동 일대를 예술의 무대 혹은 캔버스로 만들어서 지역주민과 저 같이 옆동네 사는 사람들이 찾아가게 만듭니다. 2010년까지 가봤는데 작년과 올해 정신없이 살다보니 손을 놓고 있었네요.
이 스톤앤워터의 전시와 행사소식은 http://www.stonenwater.org/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해외 작가들과의 교류도 많이 하는데요. 매끄럽고 잘 꾸며진 갤러리에서의 조간과 미술 전시가 아닌 길바닥에서 혹은 시장 골목에서 만나는 예술품들의 즐거움이 아주 좋습니다.
우리는 너무 돈을 내고 예술을 향유할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꼭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하는 유료 전시회만이 유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예술의 전당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곳에서 1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하는 거대한 기획 사진전이나 고흐나 고갱등 한국에서 유독 인기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 보다는 변두리에서 혹은 시장바닥에서 혹은 외딴 후미진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이름 모를 무명작가의 전시회를 더 많이 소개할 생각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을 바꾼 것은 요즘 예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도 아닌 제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모습이 웃기는 모습같기도 합니다만 누군가는 생산하고 누군가는 그 생산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배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그 소액 택배질을 좀 열심히 해볼까 합니다. 또한 무명의 예술작가들도 스스로 자기 포장을 했으면 합니다. 솔직히 한국의 사진작가 중에 자시의 홈페이지 운영하는 사진작가 몇명이나 될까요? 혹은 블로그 운영하는 분 몇분이나 될까요?
자기 전시회 혹은 대중과의 대화창구도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갤러리에서만 보여주겠다는 모습은 좀 옹골차 보입니다. 답답스럽기도 하고요. 자신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려야죠. 그냥 난 전시한다 니들이 와라식이면 안되겠죠.
스톤앤워터와 같은 대안공간이 전국에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대안공간은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역활을 합니다. 금천예술공장 같은 서울시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는 심사를 통해서 선발이 된 예술가들이 시에서 제공한 아뜰리에에서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이나 작업을 합니다. 대신 작가들은 시에게 생산된(?) 작품을 제공하거나 정기전을 통해서 자신들의 작품활동 보고를 하고 그 작품을 시민들과 향유를 하면서 보답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레지던시는 돈 없고 배고픈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나 긴급피난처가 되어야 할텐데 어떻게 된게 중견 화가나 유명 사진작가들이 기거하는 모습에 조금은 뜨악하더군요. 금천예술공장도 그렇습니다. 그 예술공장에 기거하는 예술가 이름 중에는 저에게게도 아주 익숙한 유명화가나 사진작가도 있던데요. 이게 서울시가 운영하는 레지던시의 운영취지와 맞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 할때가 있습니다.
아니! 저 정도 인지도에 TV에서도 많이 소개할 정도로 자생할 수 있을텐데 이런 배고픈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에 있는 것은 염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금천예술공장에서는 그래도 좀 유명한 작가와 계약을 함으로써 인지도를 올리기 위함이라고요. 아무래도 유명한 작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금천예술공장 자체로는 도움이 되죠. 아이러하긴 하네요. 레지던시가 갈곳없는 예술가들을 키워는 공간이 아닌 기존의 유명작가들의 백업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입니다. 뭐 제가 레지던시의 취지가 정확하게 뭔지 모르기에 더 말은 못하겠네요
그런 지자체가 우후죽순으로 만들고 있는 레지던시에도 들어가지 못한 작가들은 대안공간으로 흘러들어갑니다.
한해에 전국의 대학교 예술학과에서 수 많은 예비작가들을 졸업시킵니다. 대부분은 예술의 꿈 혹은 작가의 꿈을 접고 현실적인 타협을 하면서 알바나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취직을 하거나 백수로 지내지만 아주 드물게 작가활동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순수예술 작품활동을 하지만 수입이 없고 작품을 만들어도 팔리지도 않기에 대부분은 알바를 하면서 작품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법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적 허영심 일까요? 자기만족이자 자기최면일까요? 아니면 돈으로 지저분해진 세상을 말끔하게 지워주는 지우개일까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정수일까요?
왜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까요? 좋아서 할까요?
왜 예술은 점점 소수에게만 팔리고 대중에게는 팔리지 않을까요? 왜 잘 팔리는 작가만 더 잘팔리고 안 팔리는 작가는 데뷰도 못하고 사라질까요?
왜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전국의 유명한 미술관과 갤러리는 유명 작가의 전시만 할까요? 가끔 작은 갤러리에서 무명 작가의 전시를 하지만 그건 단지 돈만 받고 작품을 전시해주는 갤러리 렌탈장사치일까요?
돈을 천시하고 멸시하고 죄악시하면서 정작 예술가 자신들은 돈이 없어서 작품활동에 필요한 돈도 전시회 할 전시대금도 구하지 못하는 모습은 뭘까요? 회사원들은 정년 퇴직이라도 있어서 신입들이 들어갈 틈이라도 있는데 이 예술계는 정년퇴임도 없이 죽을 때 까지 작품 활동을 하고 한번 세워놓은 권위는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 권위가 쓰러지지 않아 신입으로 들어가는 신인작가는 들어갈 틈은 없는 모습. 예술 소비자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소비 금액도 줄어들고 있는데 예술가는 계속 공급이 많이 되는 모습.
이렇게 수요가 늘지 않는데 전국의 예술대학교는 조금씩 탄광처럼 합리화사업을 통해서 정리시켜야 할까요?
예술이 수요와 공급과는 무관하다고요? 예술도 돈으로 거래되고 돈 없이는 작품 활동 하기도 힘들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을까요?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제가 이 생각을 한 이유는 스톤앤워터에서 활동을 하다가 2011년 겨울에 지병으로 사망한 (故) 최고은 작가 때문입니다.
위 작품은 최고은 작가가 2009년 석수아트프로젝트를 촬영하고 편집한 단채널 34분짜리 비디오인 '2009 석수아트프로젝트(삽:질)입니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한 20분 정도를 봤습니다. 2009년 석수아트프로젝트에 참여한 외국에서 온 작가들의 인터뷰가 많이 있네요. 크로아티아에서 온 분도 있고 일본에서 온 분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온 작가분은 한국에서 김치를 담궈서는 낯선 거리에서 투척을 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김치를 한국의 아이콘으로 상정하고 지역색이나 국가적인 색채가 없는 무심한 도로나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김치를 투척하고 그 떨구어진 김치를 촬영합니다.
최고은 작가의 유작을 보면서 앞에 있던 A4용지에 적혀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은 작가는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히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 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1층 드림-
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쪽지는 일파만파 신문에 실려서 죽음의 진실을 왜곡하고 맙니다. 그 왜곡된 이미지란 21세기에 배고파서 죽었다는 도시의 괴소문이 되죠. 사실, 이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배고픔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고 얼마전 받은 갑상선 수술 때문입니다. 이에 사실 왜곡을 분노한 작가들도 많고 A4용지의 글에서도 그런 왜곡된 모습을 살짝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인이 배고픔이 아니였다고 해도 최고은 작가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궁핍한 생활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최고은 작가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게 모든 예술가들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취직을 하지 못해서 고시원에서 기거하면서 하루에 컵라면 한 두끼로 끼니를 때우는 20대들도 많죠. 하지만 무명 예술가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보편화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런 고질병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힘들죠. 그나마 지자체나 대기업의 후원이나 갤러리의 후원을 받는 작가들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지만 그런 제도권이 피어놓은 난로 옆에서 볕을 쬐는 예술가는 극히 소수입니다. 대다수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것마져 힘들면 예술활동을 접습니다.
그나마 예전보다 지자체에서 예술활동에 많은 지원을 해주어서 전국에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가 많아지긴 했는데 지자체에서 예술가들을 키우다보니 전시들이 무료로 전시하는 것이 많아졌고 시민들이 전시회하면 무조건 무료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인식이 박히게 되고 이런 무료 인식 때문에 정작 예술가들의 유료 전시는 인기가 없어지게 됩니다.
또한 최근의 예술전시를 보면 인기있는 전시회는 미어터질 정도로 몰려들면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진작가들의 전시회는 사람들이 찾아서 보지도 않습니다. 밴드웨건 효과인가요? 정작 유명 사진작가나 유명 화가를 소화할만한 교양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냥 마냥 유명하니까 덩달아 좋다고 박수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스톤앤워터 전시를 보다가 최고은 작가의 유작을 보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네요.
예술은 돈 없이는 스스로 지속가능할 수 없는 존재인가요? 지금까지의 예술의 역사를 보면 거대한 재력가와 권력자의 후원으로 발전했는데 이제는 거대한 권력자와 함께 대중의 지원이나 후원이나 지지나 방문이 없으면 예술을 지속하기 힘들어진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생각도 듭니다.
최고은 작가법이 곧 발효된다고 합니다. 내년 예산 70억원을 배정해서 모두 2,400명에게 취업 지원 교육 프로그램 1,500명, 사회공헌과 연계한 창작준비금 지원 900명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최고은 작가가 원한 모습일까요?
어쩌면 창작활동비를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하고 늦게 지급 받거나 떼어먹거나 하는 현재의 악덕스러운 시스템의 병폐들이 젊은 창작자들을 더 옥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예술, 창작 이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접 해 줄 때 예술 혹은 창작은 부수적인 돈을 끌어오게 하고 그 돈으로 새로운 창작을 이어갈때 건강한 예술 생태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르겠습니다. 예술도 힘들고 삶도 힘들고 모든 것이 힘든 요즘입니다. 예술도 경제도 삶도 있는 놈들만 더 잘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