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란 무엇일까? 국가는 왜 서민들에게 무자비한 몽둥이질을 할까? 정작 수천, 수백 억의 비자금을 축적하는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솜방망이 징계나 집행유예를 남발하면서 돈 없고 빽없고 힘 없는 서민들에게는 개패듯 팰까?
국가가 인격체라면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이 아닐까?
국가가 뭘까요? 국가라는 공권력은 과연 사회 정의를 잘 실현하고 있을까요? 아님 재벌과 부자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시큐리티 요원일까요? 요즘 한국이라는 국가를 지켜보고 있으면 무슨 세콤 같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사설 경비용역업체.
그래서 그랬나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과할 정도로 심한 폭력으로 시위대를 체포했고 최근에는 용역들이 경찰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공장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쇠덩어리를 날리는데도 뒤에서 체육복 입고 팔짱끼고 있는 공권력.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담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아주 강렬한 제목이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저자가 박노자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한국인인 박노자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러시아인인 분입니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 특히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정말 뛰어납니다.
제가 박노자 교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단한 지성체에다가 박학다식은 기본 아주 균형잡힌 시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내국인의 한계를 벗어나서 외국인의 시선과 내국인의 시선을 아주 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독창성은 그가 외국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백인이지만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한국 사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박노자의 글이 좋은 이유는 정말 이런 자료는 어디서 구했는지 이런 통계는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꼼꼼한 자료제시입니다. 이런 부분은 한국의 학자들이 좀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뛰어난 정보력과 분석력이 박노자 교수의 인기를 만든 것 같네요.
책은 시작하자마자 국가의 살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007년 7월 4일 부산 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성적이 나쁘다'라는 이유로 오리걸음을 하던 학생이 체벌 도중에 사망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 뉴스를 거의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엄연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지 않나? 하는 시선으로 넘어가죠
체벌로 학생이 죽으면 맞을 짓을 한 학생이 문제라는 시선이 여전히 강합니다. 물론 원인제공은 따져야겠지만 그렇다고 폭력으로 그 죄를 묻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요? 박노자 교수는 전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주면서 설명합니다.
2007년 10월 14일 캐나다 벤쿠버 국제공항에 폴란드 출신의 이주민이 입국장을 안절부절 못하며 배회했습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로버트 지엔칸스키'는 공사장 노동자는 어머니가 사는 캐나다에 운 좋게 이민 비자를 받고 이민을 왔는데 어머니가 공항에 마중 나왔다가 자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는 바람에 낯선 곳에서 안절부절 못 했습니다.
로버트는 수화물이 나오는 쪽으로 나갈려다가 열리지 않는 유리문을 힘껏 열어볼려고 노력했고 그 모습을 본 경찰은 수상한 거동자라고 생각하고 진압봉으로 때리고 테이저건을 쏩니다. 그리고 로버트는 사망합니다. 이런 국가의 살인을 선진국이자 인권 강국인 캐나다가 사과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약간 과잉된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필요했던 진압이라고 결론을 내어 버립니다.
저자는 로버트가 열등한 이민자, 비주류이기 때문에 국가가 살인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서구 사회의 몰상식과 비상식적인 모습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근대 경찰의 폭력성 그리고 부를 보호하는 용역단체인 경찰의 예를 수 없이 들어줍니다.
또한 국가의 폭력을 합리화 사키는데 일조하는 학교라는 시스템과 전쟁하는 기계 국가를 고발합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기류는 박노자라는 평화주의자가 전쟁이라는 시스템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걸 정당화 시키는 과정을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노사이드라고 하는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서구 사회의 지난 역사를 낱낱히 들어내서 비린내가 진동하는 폭력의 향연을 우리 앞에 던져주고 직시하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예를 드는데요
한국의 역사책을 거론하면서 수천번의 외침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남에게 당하기만 하고 남에게 해꼬지를 못하는 천성이 착한 민족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들 반 정도가 장군임을 상기 시킵니다. 특히 광개토대왕 같이 만주벌판에서 흉노족이라는 오랑캐를 초토화 시키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겨움을 숨가쁘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저도 참 공감합니다. 평화주의 민족이라는 듯 말하면서 정작 전쟁을 너무 잘했던 장군들을 우리는 너무 존경하죠. 물론 이런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긴 합니다. 저 또한 한국의 장군들을 비판하는 글에는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저자는 그 마져도 학교에서 배운 이데올레기에 갖힌 생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네요
3부 종교, 전쟁, 국가의 삼각관계에서는 비판의 시선을 기독교로 향합니다.초기 기독교는 절대적인 평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육신이 사자의 먹이가 될 지언정 평화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로마 제국이 국교로 기독교를 지정하면서 기독교가 전쟁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됩니다. 전쟁터에서 군목들이 죽어가는 병사에게 기도를 들이면서 천당에 갈것이라는 약속은 기만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초기 기독교인들의 비폭력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똘마니들이라고 보는 시선의 폭력성을 따져 묻습니다. 얼마전 본 영화 '미운오리 새끼'에서 주인공인 6개월 방위가 '여호와의 증인'을 패는 장면을 보면서 끔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렇게 한 사람이 폭력에 물드는 구나. 폭력집단에 있다 보니 폭력이 상식이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는데요. 이런 지적에 많은 분들은 쓴소리를 할 것입니다. 군대를 폭력집단이라는 지적은 수 많은 예비역들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 있죠.
또한 평화를 지향하는 저에게는 큰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다만 이런 낯선 주장. 즉 국가의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지적하고 모습이 과연 한국인들에게 만연한 폭력적인 시선을 제거하는데는 좀 힘에 부쳐보입니다. 특히 북한과의 전쟁 대치를 꾸준히 하고 있고 국방비 증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이 책은 아프기는 하지만 큰 공감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특히나 진보주의자들 까지도 국가의 폭력을 어느정도 용인하고 있는 모습이죠.
국가를 합법적인 살인자라는 시선은 한국에 만연한 애국주의를 제거하기에는 힘에 부쳐 보입니다.
지배계급의 사무총국,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대량으로 살해하는 기계라는 날선 시선을 통해서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군대를 갔다온 남자분들에게 특히 권해드립니다.
오늘도 보니 전력선 끌어다주는 철탑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공권력이 패대기 치는 사진이 올라오던데요. 과연 우리의 공권력은 합법적인 폭력일까요? 그렇다면 그 폭력은 누구를 위한 폭력일까요? 적어도 서민을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국가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보기엔 몰상식한 그러나 합법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 폭력을 어쩔 수 없지 않나하는 느슨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 폭력이 당신에게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