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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좋아하다 보면 사진 기술서를 넘어서 사신의 역사를 탐하다가 사진의 인문학적인 접근이나 미학적인 접근을 담은 책을 찾게 됩니다. 저 또한 이런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 기술서인 DSLR로 사진 잘 찍는 법을 읽게 됩니다. 그런 기술서들은 사진이라는 긴 여행의 입구 까지만 셔틀버스를 태워서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카메라 조작법을 다 익힌 후에는 자신만의 사진을 하기 위해서 사진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담은 창의적인 사진을 찍는 방법을 담은 책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만의 사진의 길을 가는 분들은 사진작가가 아니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생활 사진가들은 사진을 왜 찍냐고 묻지 않고 사진을 잘 찍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사진을 왜 찍을까? 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한 다는 자체가 사진에 대한 긴 여행의 빗장을 여는 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동선이라는 사진평론가를 좋아합니다. 
제가 사진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이나 많은 사진작가를 소개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진동선 사진평론가입니다. 이 분의 강의를 2010년인가 2009년인가에 사진영상기자재전에서 들었는데 그때의 인상적인 강의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대부분의 사진관련 강의가 카메라 테크닉이나 촬영기술과 프린팅 기술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진동선 사진평론가의 강의는 우리가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그리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카메라가 아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는 이 진동선 사진평론가는 무려 책을 28종이나 출간 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1년에 한 두권 이상씩 책을 내는데 내는 책 마다 참 사진에 대한 깊이있고 친절한 설명이 무척 좋습니다. 


사진과 철학의 만남을 담은 '사진철학의 풍경들'

이 책은 사진과 철학의 만남을 담은 책입니다. 
이전의 김동선의 책도 철학적인 내용이 있긴 했지만 이 책은 아예 철학자들을 등장시킵니다. 

칸트, 헤겔, 하이데거, 벤야민, 들뢰즈, 롤랑 바르트 같은 철학자들과 수전 손택, 존 버거, 지젤 프로인트, 다이안 아버스, 마이클 케냐 같은 사진평론가과 사진작가의 인터뷰 내용과 그들이 사진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책은 총 4개의 풍경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식의 풍경은  본다라는 사진의 가장 기본적인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릭 같은 눈을 가지고 같은 것을 바라본다고 해도 그 느낌은 각자 다 다릅니다.

눈으로 보는 시선과 마음으로 보는 시선이 다른 이유는 우리의 경험과 우리 마음의 시선이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빈다. 오감을  통한 감각은 비슷하지만 이성과 감성에 의해서 바라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죠. 인식의 풍경에서는 게슈탈트라는 형태심리학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와 오브제(소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2장 사유의 풍경에는 하이데커의 생각이 많이 인용되면서 존재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사진은 시간이 많들어내는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존재 그리고 기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시간의 죽음이 만들어내는 사진, 우리는 사진을 찍음과 동시에 이미 지나간 시간의 주검을 담고 있습니다. 


표현의 풍경에서는 주제, 소재, 대상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심리학과 사진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사진과 환상과 환멸에 대한 이야기와 괴테의 색채론과 차이와 반복 등 사진으로 표현할 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의 풍경에서 눈에 들어오는 챕터가 '다이안 아버스와 사진적 폭력'이라는 챕터입니다. 다이안 아버스는 유명한 여성 사진작가입니다. 백화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부를 가진 이 사진작가는 빈민층과 장애인들을 많이 촬영했는데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면서 사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우울증도 않았던 이 작가에 친한 사람이 바로 '수전 손택'입니다. 
수전 손택은 많은 사진 에세이를 냈는데 그중 하나가 '사진에 관하여'입니다. 이 책은 아버스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서 쓴 책인데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첫 번째로는 '바라본다는 것의 근본 윤리'를 묻는다 요절한 사진가를 향한 윤리문제이다. 그녀가 찍은 사진의 윤리이면서 사진가를 향한 윤리이다

두 번째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카메라의 시전'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진의 시선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카메라만 쥐면 이미지 사냥꾼이 되어버리는가? 왜 그토록 먹이를 찾는 약탈자가 되는가? 허기진 이리 떼처럼, 약탈은 누가 지시하며, 누가 조장하는가? 다이안 아버지의 자기고백처럼 성찰, 반성, 자각을 희망한다. 

이 부분은 이 책이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 일부를 인용한 부분인데요. 새겨들을 이야기들이 있네요
특히 두 번째는 현재 우리가 이미지 사냥꾼이 되어서 그 사진이 사회의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함이나 고발의 목적이 아닌 자신의 사진 영웅주의를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기적인 공명심 때문에 그 사진으로 인해 그 사진 속의 인물이 명예훼손이나 다른 고통을 받는다면 그건 하나의 이미지 사냥꾼일 뿐입니다.

또한 주산지에서 사진의 프레임을 가린다면서 나무를 꺾는 등의 행동을 하는 생활사진가들도 이런 두 번째 부류들이죠. 
사진을 표현함에 있어 그 표현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받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문화가 잘 정착 되었을까요?

사진을 찍고 있으면 기다려주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느끼고 거대한 카메라를 메고 사진 가린다면서 파리 쫒든 손을 휘저으며 거기 아저씨 좀 나오세요 하는 이미지 사냥꾼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풍경에서는 사진이 담지 못하는 사진 이미지 속 혹은 이미지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진을 많이 보고 즐겨찾기 하다 보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도 사진 안에 담겨 있는 피사체는 물론 프레임 밖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이야기를 들춰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됩니다. 

그중 뉴욕 MoMA의 많은 사진전을 기획한 '존 사코우스키'의 거울과 창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 옵니다.

사진은 방이다. 인간이 거주하는 어둠의 방에 하나의 물성, 그러나 성질이 다른 두 개의 '바라봄'의 도구가 있다. 하나가 거울이고 다른 하나가 창이다. 거울은 인간에게 자아를 바라보게 하는 역활이다. 세상의 모든 것울은 거울 앞에 선 자만을 비추는 철학적 인식의 틀이다

반면에 창은 자아 맞은편, 즉 타자, 세상 저편을 바라보게 하는 역활이다. 세상의 모든 창은 자아 반대편의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철학적 인식의 틀이다. 거울이 자아를 향한 내면의 응시라면 창은 타자를 향한 외면의 응시이다. 또 거울이 자아와 마주하는 자아 인식이라면 창은 타자와 마주하는 타자 인식이다. 

... 

카메라게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시선은 거울을 향합니까? 창을 향합니까?

<사진철학의 풍경들 중에서 316페이지중 일부 발체>

여러분의 카메라는 거울입니까? 창입니까? 저는 창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울이라면 제 모습을 담고 가족을 담고 내 위주로 일어나는 일상을 기록하는 게 많았겠지만  대부분은 아니지만 카메라라는 창을 통해서 세상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기록하고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평이한 일상도 창문이라는 카메라를 통해서 보면 그 일상이 객관화됩니다. 마치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모든 풍경을 타자화하는 것이죠

이렇게 일상을 타자와 하고 혹은 내가 낯선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시착한 외국인의 시선으로 생각하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한 우리의 부조리와 우리 주변에 있는 살가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발견의 도구는 바로 카메라였습니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모든 것을 발견해주는 것은 아닌 제 지각능력이 발견하고 카메라는 거들 뿐이겠죠

반면 카메라로 친구를 찍고 가족을 찍고 동료를 찍는 분들은 카메라가 거울이 될 것입니다. 창이 좋다 거울이 좋다라고 하는 것은 무모합니다. 카메라를 창으로 쓰던 거울로 쓰던 그건 각자의 몫이고 선택이니까요


이 책은 추천하긴 좀 힘듭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 책이 술술 읽혀지지 않네요. 아무래도 실질적인 사물에 대한 이야기나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관념적인 글들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형상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겠죠. 사진에 막 입문하는 분들은 어려우니 나중에 읽어보시고 사진 문화와 담론에 큰 관심과 중급자라고 느끼시면 추천합니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게 아닌 사유하는 사람이 찍는 것입니다. 가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카메라는 하나의 도구이지 그 도구를 숭배하면 안되겠죠.  사진 잘 나오면 카메라탓 못 나와도 카메라탓... 그런 분들은 사진에 깊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성의 대상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죠. 반성은 내가 해야지 카메라가 하면 쓰나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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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과 문명 2012.07.30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아하는 블로그입니다. 올라오는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일전 글에 역활이라는 단어가 있어 오타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그런게 있네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중에서 316페이지중 일부 발체> 에서 역활이라고 두번 있네요. 역할이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발체는 발췌로...

  2. 조종현 2019.09.05 0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6 페이지 중 일부 발체 -> 발췌가 맞는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