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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배트맨이 원했던 세상은 모두가 배트맨이 되는 세상

by 썬도그 201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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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을 보면서 눈물이 찡했습니다. 스파이더맨처럼 강력한 하드웨어를 가진 히어로도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수도 괴력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비슷한 재벌 출신의 아이언맨 슈트에 비하면 하키 보호대 같은 배트맨 슈트를 입고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심판합니다. 매일 악당을 처리하고 오면 스스로 상처를 꿰매는 고통을 스스로 느낍니다.

거기에 이 배트맨을 사람들이 영웅이 아닌 악당으로 취급하기도 하죠. 법이라는 룰을 깨면서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는 자경단쯤으로 여기죠. 그리고 가장 치명적이게도 낮에는 활동을 안합니다.

히어로 중에서 가장 능력이 약한 히어로가 배트맨이 아닐까 하네요.  슈트와 배트카등의 신무기가 없으면 배트맨은 큰 능력을 가진 히어로는 아닙니다. 


히어로를 갈망하는 고담시와 영웅 선출놀이에 심취한 한국

배트맨은 피곤합니다. 돈 많은 '브루스 웨인'이지만 영웅의 삶을 산 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인 '레이첼'에게 접근할려고 해도 배트맨 슈트를 벗고 만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필요없는 고담시가 되어야 하죠

그런데 이 고담시에 배트맨이 없으면 하루라도 조용히 지낼 수 없는 범죄의 백화점입니다. 그나마 배트맨이 있기에 악당들이 벌벌 떨기라도 하지 배트맨이 없었다면 공권력을  자기집 애완견 마냥 다룰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배트맨이 있기 때문에 고담시가 저렇게 황폐해지고 범죄 도시가 된것이 아닐까?
제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배트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의를 목도해도 배트맨이 처리해줄것이라는 나약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밤길을 걷는데  골목길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배트맨이 없는 도시에서는 그 비명소리가 난 골목길을 들어가 볼것입니다. 하지만 배트맨이 있는 도시에서는 배트맨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야 라고 생각하면 자기갈길을 갈것입니다. 

불의를 봐도 자기가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그냥 히어로에게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배트맨이 실수라도 하면 온갖 욕설을 다 하죠.  히어로가 힘든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강력한 능력 때문에 인기도 있고 인지도도 높지만 그 높은 인기나 기대감의 높이 만큼의 책임감을 어깨위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또한 사회의 부조리를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직접 고칠려고 하고 고발을 해야 하는데 영웅이 있는 도시는 그 모든 것을 영웅에게 맡길려고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고담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잘살고 못살고는 자기가 가장 큰 원인인데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에게  '먹고 살게 해달라'고 큰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큰 힘이 있지만 개개인의 삶까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다만 흐름은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원합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말은 바로 대통령을 영웅으로 숭배시하는 우리의 습속에 있지 않을까요? 이러니 매번 대선에서 우리는 대통령이라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게 아닌 우리의 삶을 개선시킬 슈퍼히어로를 뽑는 선거로 착각하는 것 아닐까요?

이명박 후보가 747 공약을 할 때 그걸 검증하는 노력보다는  슈퍼히어로라도 되는 양 우리는 너무 쉽게 거대한 권력자에 기대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대통령을 슈퍼히어로로 만들어 놓고 조금만 맘에 안들면 바로 끌어내릴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좌우를 떠나서  계속 될것입니다.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 이게 다 배트맨 때문이다라는 말 뒤에는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가장 큰 책임인데 그 책임을 애먼 사람에게 즉 외부적인 요소로 내 삶이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네요. 


배트맨이 원했던 세상은 모두가 배트맨이 되는 세상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연달아 보면서 느낀것은 이 배트맨이 히어로놀이를 그만 두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다리를 저는 은둔형 외톨이로 무려 8년동안 저택에서 나오지 않는 '브루스 웨인'의 모습이 담깁니다.

배트맨은 다크나이트에서 반쪽짜리 히어로인 가면을 쓴 밤의 기사가 아닌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전천후로 활약할 수 있는 화이트 기사인 '하비 덴틀'검사에게 배트맨의 역활을 넘길려고 합니다. 

다크나이트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비 덴틀 검사와 브루스 웨인의 식사자리 이런 대화를 주고 받죠?

"배트맨은 누가 뽑은 거죠?" 라고 브루스 웨인이 묻자  검사는 "우리가요!"라고 말합니다. 
"악당들이 시를 장악할 때 멍하니 쳐다만 본 우리 모두요"

불의를 보고도 참은 우리들 때문에 배트맨이 만들어진 것아닐까요?  불의를 참으면 참을수록 악은 그 크기를 키워갑니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담배피는 중학생의 보고도 애써 외면하는 어른들이 많을수록 그 지역의 공원은 밤마다 대놓고 담배를 피는 중고등학생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악을 무섭다고 내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록 악은 세력을 키우고 우리는 그런 악에 무덤덤해집니다. 

배트맨은 그런 세상에서 태어나는 어둠의 히어로입니다. 악을 먹고 자라는 히어로죠.  배트맨이 하비 덴틀 검사가 죽은 8년동안 칩거를 한 이유는  하비 덴틀이라는 만들어진 영웅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으로  도시의 범죄자드을 몽땅 교도소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배트맨은 활동을 멈춥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배트맨이 원한 것은 아닙니다.

강력한 공권력으로 악을 박멸하는 모습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강력한 공권력을 잘못 사용하면 한국 처럼 정권을 비판하는 소시민들까지 불법으로 사찰을 하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물론 경찰입장에서는 그게 정의라고 하겠죠. 어차피 정의라는 것은 각자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니까요. 

브루스 웨인은 수시로 이런 말을 합니다. 
배트맨은 하나의 상징이고  우리 마음속에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이 커지면 사라져야할 존재라고요. 
웨인은 그런 세상을 갈망했고 자신이 지고 있는 배트맨이라는 짐을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유럽의 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먹고 싶었지만 고담시민은 배트맨의 바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배트맨은 선의의 상징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선의에 물들어 고담시민들이 범죄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불의와 범죄와 직접 맞서는(맞짱 뜨라는 게 아닌 외면하지 말라는)모습을 바랬습니다. 하지만 고담시는 배트맨을 선의의 상징이 아닌  악당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그 선택을 배트맨 스스로 했고 만들어진 영웅을 내세우게 되죠

"영웅으로 죽거나 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라는 말에서 처럼 거짓이라도 영웅이 필요로 하는 도시에 거짓말로 쌓아올린 가짜 영웅인  '하비 덴틀'검사를 영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류의 역사도 난세에 영웅이 만들어지고 영웅이 있던 시기에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인류역사상 이렇게 평화가 지속된 시절이 있었나요?)는 큰 영웅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어쩌면 틀린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선거를 보세요. 그거 영웅놀이 아닌가요?
이번 연말 대선에 우리의 찌질한 삶을 단박에 해결해줄 영웅을 뽑기 위해 우리는 또 그렇게 대통령이라는 히어로에 많은 기대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히어로가 되어버리면 히어로가 될 줄 알았던 대통령이 조커나 베인 처럼 악당이 되면 엉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큰 고통을 얻습니다.  물론 반대로 진짜 히어로면 다수가 행복한 세상이 되겠죠

이건 모 아니며 도 식인데요. 한국의 대통령은 너무 권력이 막강합니다. 따라서 그 권력을 철저하게 분산하고 견제감시 하도록 해야 하지만 우리 보세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같은 정당으로 몰아주고 있고 그래서 그 결과가 잘 나왔습니까?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모두 한나라당이던 시절 계획한 아라뱃길과 세빛둥둥섬을 보세요 수조억 원과 수천억을 들인 프로젝터들이 부실한 결과로 돌아왔고 그 책임은 서울시민들에게 돌아 왔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흉기와 다름 없습니다. 우리가 그 브레이크를 다 떼어버리고 빨리만(잘 살게만) 달려달라고 한 것 아닐까요? 


그러나 현실은 소영웅주의자가 많아지는 슬픈 현실

요즘은 뜸하지만 올 상반기 지하철 XX녀 는 무슨 유머 씨리즈 처럼 매주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진상 떨고 몰상식한 사람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입니까? 다만 요즘 부쩍 늘어난 것 처럼 느끼는 이유는 많은 국민들이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뭔 사건, 사고가 나면 스마트폰이나 핸드폰으로 현장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그걸  그대로 언론이 증폭해주니 마치 이런 진상극들이 90년대 보다 더 많아 진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입니다. 

90년대도 80년대도 있었습니다. 다만 있어도 멀리 널리 전파되지 않았을 뿐이죠.
저는 이런 진상극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의나 비매너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나 경찰 신고가 아닌 그걸 찍어서 인터넷 동영상싸이트나 블로그나 트위터에 올리는 모습은 소영웅주의로 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사회적 환기나 이슈화 보다는 사진을 올려서 조회수나 유명세를 목적으로 한 다는 느낌입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영상을 담을 용기라면 직접 비매너 진상극을 펼치는 사람에게 제지를 하던가 경찰에 신고를 하십시요. 왜 신고도 직접 말리지도 못하면서 사진을 찍습니까?

그런 동영상과 사진이 제대로 처벌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 처벌이 되었다고 칩시다.  행위자의 동의없이 인터넷에 올리는 그 행위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합법적인 행동입니까? 단 그 동영상과 사진을 경찰서에 가져가면 합법이 될 수 있습니다만 인터넷에 함부로 올리는 것은 명예훼손죄에 걸릴 수 있습니다.

배트맨이 이런 세상을 원했을까요?  골목길에서 여자가 강도를 당했는데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소영웅주의를 원한걸까요? 아님 강도다! 라고 소리쳐서 다른 시민들과 함께 범죄를 신고하고 추적하는 모습을 원한걸까요?

우리 모두가 영웅이되고 우리의 도덕율이 강하면 영웅은 필요없습니다. 또한 영웅이 없는 세상은 강력한 악당도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죠. 우리가 영웅을 탐닉하는 이유는 우리가 짊어져야할 시민으로써의 책무를 모두 영웅에게 덤터기 씌우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영웅을 갈망하는 나라일까요?  제 대답은 네! 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불의를 참고 살아가고 있고 더 큰 문제는 문제인식 조차 못하는 악이 스물스물 우리의 머리를 점령해가는 모습 마져도 느껴집니다. 학원폭력 가해학생 부모가 피해자 학생에게 큰 소리 치는 세상은 제발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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